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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파이
이예찬 지음 / 발해 / 2008년 8월
평점 :
품절
이 작가님의 책은 처음이지만 평이 좋아서 읽게 된 '큐티파이'는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재밌고 만족스러웠던 소설이었습니다. 학원물에서 시작되는 소설임에도 가볍지 않으면서 안정적인 흐름, 그리고 세심한 표현력과 흡입력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어 읽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열여덟의 한주는 어른스럽고 완벽을 추구하며 하나에 빠지면 쉽게 헤어나오지 못할 정도로 집중을 하는 소녀입니다. 제빵, 뜨개질, 십자수 등, 남들이 보기엔 취미로 하는 것에 왜 그리 집착을 하는 냐 이상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녀가 그렇게 집중했던 이유에는 외로움이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딸인 자신에게 너무 냉정한 어머니와 떨어져 살면서 홀로 지내는 시간이 많은 그녀는 그 외로움을 잊기 위해 무언가에 몰두해야만 했습니다. 남들과의 관계에 의지해서도 자신을 보여서도 안된다는 교육을 받고 살아왔던 그녀, 그러했던 어머니에 의해 세뇌당하다시피했으면서도 그녀는 외롭고 사람의 정이 그리웠습니다. 그녀는 아직은 열여덟밖에 안된 어린 소녀였고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한 인간이었기에.
그런 그녀가 자신을 외롭지 않게 해주겠다는 한 소년, 진휘를 만납니다. 자신이 만든 빵을 평가받기 위해 찾았갔던 그였지만 어느 새 그녀에게는 그것이 일상이 되었고 그와 함께 하는 동안은 외로움을 잊게 됩니다.
또래에 비해 어른스러워 보이지만 멋지게 보이는 것이 좋고 예쁜 여자에게 고백을 받으면 괜히 으쓱하는, 아직은 어린 열여덟의 진휘의 평범했던 일상에 손을 내민 한주. 진휘, 손수 만든 빵을 내밀며 평가해달라는 그녀 또한 자신을 좋아하는 여자애들 중 한명으로 알고 귀찮아했던 그지만 매번 손을 내밀며 자신을 바라보는 반짝이는 눈빛에 끌려 자신도 모르게 빠져들게 되어버립니다. 다른 남자들과 있는 모습에 질투도 하고, 자신에게만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던 그는 어느새 자신의 심장에 한주를 담고 있었던 것입니다. 서로를 알아가면서 그는 알게되었습니다. 송한주 그녀가 외로움으로 똘똘 뭉친 소녀라는 것을. 그녀가 무언가에 집중하는 이유가 외로움을 견디는 그녀만의 방식이라는 것을. 그래서 그는 그녀를 외롭지 않게 해주리라 결심합니다.
그렇게 풋풋한 시간을 보내던 한주와 진휘, 수줍은 첫키스의 아른한 느낌이 사라지기도 전에 그들이 함께 했던 세계는 무너지고 맙니다. 한 순간에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진 한주로 인해.
아무 말 없이 사라진 한주를 걱정하며 찾았던 진휘, 갑작스런 한주의 전학소식과 함께 그는 한주에게 배신감을 느끼지만 그래도 그는 한주를 잊지 못했습니다. 급기야 영장을 받은 어느 날, 그는 한주를 찾기 위해 그녀의 어머니가 강의하던 대구의 대학교를 찾지만 그녀를 만나지 못합니다. 그저 그녀가 어느 외국에서 잘 살고 있으리라 생각을 하며 그녀를 잊고자 마음 먹습니다.
그렇게 그들이 헤어진지 10년 후, 그들은 다시 만났습니다. 진휘의 어머니가 자주 가는 마트의 푸드코트 '주 하우스'에서 매운낚지볶음을 만들며 환하게 웃고 있는 한주와 재회하게 된 진휘는, 갑작스레 사라졌던 그녀가 마치 아무일도 없었단듯이 웃으며 악수를 청하는 것에 배신감이 들고 마음이 상합니다. 그리고 10년전과는 전혀 다른 그녀의 모습에 또 한번 놀랍니다. 남들과 관계맺는 것을 극도로 피하고 자신을 내보이지 않던 그녀가 남들과 서슴없이 친해지는 모습에 놀라며 그녀가 사라지고 힘들었던 자신과 달리 그녀는 잘 살았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에 그녀가 곱게만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의 가습 속은 벌써 풍랑이 불고 있었습니다. 한주를 사랑했던 풋풋한 옛감정이 불러 일으키는 회오리바람속에서.
한주를 잊었다고 생각했던 순간까지 한번도 한주를 잊어본 적 없던 그는 운명처럼 다시 한주를 가슴에 담게 됩니다. 물론 처음에는 그 감정을 무시해 보려하기도 하고 소개를 통해 만난 경애와 잘해 보려고 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는 자신의 마음이 가는대로 굴복하고 맙니다. 그렇게 한주와 다시 시작하게 됩니다.
진휘가 알지 못했던 한주의 10년, 그녀의 삶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갑작스레 전학을 가야 했던 이유, 아무말없이 떠나야 했던 이유는 그녀의 어머니때문이었습니다. 대구의 대학교수로 재직중이던 어머니께서 쓰러졌다는 갑작스런 소식에 대구로 내려가야만 했던 그녀는 처음에는 이별이 이렇게 길어길지 몰랐습니다. 어머니의 건강이 괜찮아지면 다시 올라가야지하고 막연히 생각했던 그녀엾지만 어머니의 병세는 심각했고 결국 그녀는 어머니의 곁을 지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뇌출혈로 큰 고비를 넘기고서도 불편해진 몸에 무력감에 자해하는 어머니를 지켜야 했고 병수발을 해야 했으며 가장이 생계를 꾸려 나가야 했습니다. 똑똑했던 그녀지만 대학을 포기하고 생업전선에 뛰어들어야만 했던 그녀, 고된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그녀가 얻은 것이 있다면 자신과 어머니 사이에 있던 벽을 허물고, 세상을 한발 내딛은 것.
어머니의 제자였던 동주의 어머니 밑에서 음식을 배우고 서울로 올라와 동주와 함께 시작한 '주 하우스'. 그렇게 열심히 일하면서 그녀는 종종 꿈꾸었습니다. 진휘를 만날 수 있기를. 그랬던 그녀의 바람이 우연처럼 이루어졌지만 자신에게 냉랭할뿐더러 그의 곁에 있는 경애로 인해 가슴 아파합니다. 하지만 다른 곳을 보는 듯 했지만 같았던 두 사람의 마음이 닿아 결국 그들은 지나온 시간이 무색하게 따뜻한 사랑을 이어갑니다.
10년이라는 오랜 시간 속에 첫사랑의 아련함을 간직하며 서로 다른 삶을 살아돴던 한주와 진휘, 두 사람의 학창시절 이야기부터 재회, 그리고 다시 사랑하기에 이르기까지 그 잔잔한 스토리를 자연스럽게 표현한 덕분에 갈수록 몰입하면서 읽었던 따뜻한 소설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한주는 한주 나름대로, 진휘는 진휘 나름대로 성숙해지고 성장한 모습이 참 보기 좋았고 그러한 그들의 시간의 흐름이 무색하게 여전한 사랑이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갑작스레 이별하고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으면서도 막연히 가슴 속에 담고 꺼내보았던 두 사람의 예쁜 사랑에 미소가 지어지면서도 그들이 이별하고 살았던 시간들이 안쓰러워 눈물을 짓게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이별했던 10년 속에서 잃었던 것만큼 얻은 것도 많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머니에서 엄마로, 어머니를 대하는 마음도 행동도 변한 한주와 딸과 티격태격하며 지내게 된 나여사. 그들은 어느 새 진정한 가족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와 더불어 한주의 생부의 등장은 한주 가족내에 자리잡고 있던 앙금들이 풀리며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며 가족다운 모습을 찾아가기에 이릅니다.
이렇듯 한주와 진휘의 풋풋한 사랑에서 안타까웠던 이별, 그리고 다시 찾은 따뜻한 사랑과 가족애를 통해 따스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던 '큐티파이'는 정말 간직하고 싶은 기쁨과 만족감을 주는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