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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살아보고 할까요?
서연 지음 / 파피루스(디앤씨미디어) / 2008년 9월
평점 :
품절
'결혼, 살아보고 할까요?'는 제목을 통해 예상했던 스토리와는 다른 느낌의 소설이었습니다. 동거를 소재로 했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전혀 가볍지 않고 현실적이면서 매끄러운 스토리 전개가 몰입을 이끌었던 아주 만족스러웠던 소설이었습니다. 예전에 나온 적 있던 책을 개정판으로 냈다고 하는데 앞서 나온 책을 읽지 않은 저로서는 모든 것이 신선했고, 분명 시간적으로도 봤을 때 처음 출간됐을 당시와 시대의 변화가 있었음에도 그러한 차이를 거의 느낄 수 없었습니다. 물론 요즘에는 하나의 트렌드가 되어 버린 연상연하 커플이 책 속에서는 쉽게 인정받지 못하긴 하지만, 그외에는 공감이 가는 이야기들이었습니다.
세살 차이의 연상연하 커플인 연우와 태준은 선후배관계에서 시작된 연인이었습니다. 연우의 실연 뒤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시나브로, 점점 서로에게 젖어든 두 사람은 어느 새 연인관계가 되었고 4년이라는 시간 속에 깊은 관계로 발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연우의 독립과 더불어 동거에 이르게 됩니다. 선후배관계때와는 다른, 그리고 연인때와는 또 다른 생활 속에서 티격태격하기도 하지만 서로의 몰랐던 모습을 알아가며 사랑이 더 깊어지는 연우와 태준의 관계를 아는 사람들은 거의 없습니다. 표면적인 그들의 관계만을 봤을 때는 남들에게 있어 선후배 사이일 뿐인 두 사람. 의도적으로 숨긴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도 모르는 사이에 서로에게 익숙해졌던 두 사람이 갑작스레 누군가에게 두 사람의 관계를 공표한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어렵게 다가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로 인해 겉으로는 내색을 잘 하지 않는 연우가 불안감을 느끼기고 하고 그 불안감을 홀로 삭이면서 마음에 멍울이 지기도 합니다. 분명 사랑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어딘가 아슬아슬하게만 느껴지는 두 사람. 그것은 아마도 그들의 관계에 대한 정의, 그리고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미래, 무엇보다도 태준의 상처때문은 아니었을 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태준, 연우를 사랑하지만 사랑하는 법을 모르는 그는 유년시절을 고통스럽게 보내야만 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성인이 된 순간까지도 고통과 두려움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폭력적인 아버지 아래 살면서 신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상처 입었던 그는, 폭력으로 얼룩진 어머니의 죽음을 지켜봐야 했고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는 홀로 그 폭력을 견뎌내야만 했습니다. 그러한 가정 속에서 자라 사랑하는 법을 몰랐던 태준은 연우를 사랑하면서도 그렇기에 함께 하고 그녀를 지켜주고 싶었음에도 자신의 상처를 내 보이지 못했고 확신도 주지 못했습니다.
태준이 연우의 품에 안겨 자신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내고서야 두 사람이 하나로 되어 가는 길에 한 걸음 더 전진하게 됩니다. 그들의 사이를 알고 있던 몇 안되는 연우의 친구들에게 자신들의 동거 사실을 밝히는 것 또한 그 하나의 걸음이었고 막연히 자리잡고 있던 연우의 불안감을 떨쳐낼 수 도 있었습니다.태준에게 있어 여전히 두려운 존재인 아버지. 그런 아버지와 민교수, 혜린이 놓은 덫 속에 숨이 막혀 하면서도 발버둥을 치면서도 제대로 대응조차 못했던 태준은 자신의 여자는 연우를 위해, 자신을 지켜주겠다고 말하는 사랑스런 '내여자'를 위해 용기를 내기로 합니다. 망상과 집착으로 똘똘 뭉친 혜린이라는 여자에게서, 탐욕으로 일그러진 민교수와 강압적인 아버지에게서 연우를 지키면서 그녀와 함께 하기 위해, 유년의 상처로 자라다 만 반쪽 어른의 모습을 버리기로 마음 먹는 태준. 비로소 그는 진정한 어른이 되었고 한 여자의 온전한 남자가 되었습니다. 말로는 그리고 상식적으로 통하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 헤어나오기 위해 두 사람이 선택한 것은 달걀로 바위치기를 하는 무모함이 아니라 치밀한 작전이었습니다. 신혼집을 장만하고 혼인신고를 하고 007작전을 방불케 하는 두 사람의 하나되기 과정. 결국 승자는 그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두 사람의 사랑을 지켜냈고 새로운 관계의 재정립을 이루어 냈습니다. 한 남자의 아내,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그들의 사랑은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우선 상처를 가진 태준이 과거의 상처에서 나오는 과정이 힘들었습니다. 분명 체격적인 면에서 아버지보다 뛰어나면서도 무자비한 폭력에 힘없이 당하기만 하던 태준이 그러한 아버지를 이겨내는 것이 쉽지 않았으며 태준이 자신의 남자라는 망상으로 그의 곁에 있는 연우를 보잘 것 없는 여자로 모욕하는 혜린의 집착과 광기를 책을 읽는 내내 혀를 내두르게 했습니다. 그러한 딸의 사랑을 위해 그리고 자신의 욕심을 위해 태준을 몰아 붙이는 민교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외롭지 않았던 것은 사랑과 함께 였기도 했지만 그들을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태준의 선배인 석환과 영원부부는 태준과 연우의 사랑을 응원하고 위로하며 물심양면으로 도왔고 친구를 위한답시고 연우에게 상처를 줬던 민재도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요즘의 시대에서도 보기 드문, 출간 당시에는 정말 획기적으로 다가왔을 어머니상인 연우 어머니와 가족의 지지, 피한방울 안 섞였지만 이번 시련을 통해 진정한 모자관계로 거듭난 태준의 새어머니의 인정 속에서 그들은 모든 시련을 이겨내고 모두의 축복 속에 진정한 부부가 됩니다. 그리고 티격태격의 연속이지만 너무나 닮은 태준과 그의 아버지의 관계도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이면서 상대를 이해하고 용서하는 게 어떤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서연작가의 '결혼, 살아보고 할까요?'는 건조한 문체지만 섬세한 감정묘사와 현실적이면서도 감성적인 전개로 읽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자아내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하는 감동과 따스함을 느끼게 하는 소설이었습니다. 최연우, 강태준이라는 두 인물의 사랑을 통해 사랑뿐만 아니라 가족의 재정립을 보여주는 소설이었으며 여자에게 있어 결혼이 전부가 아니며 능력이 된다면 혼자서 사는 것이 결혼이라는 제도에 갇혀 지내는 것보다 훨씬 행복하다는 의식을 가진 연우 어머니의 생각은 대개의 어머니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점에서 신선했고 그러면서도 딸의 행복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는 점에서는 정말 역시 모정의 깊이를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두꺼운 책두께에 비해 시간가는 줄 모르고 빠져 들어 읽었던, 재밌고 만족스러웠던 소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