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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 - 탈레스에서 비트겐슈타인까지, 위대한 철학자 34인의 생애와 사상
빌헬름 바이셰델 지음, 안인희 옮김 / 김영사 / 2024년 9월
평점 :
나만의 글쓰기 – 철학을 만나는 지름길, 철학의 뒷계단 (빌헬름 바이셰델, 김영사, 2024, 1판 1쇄)
서양 철학, 그것도 철학자 34인의 생애와 사상을 다룬 책이라 처음부터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하지만 ‘재미와 깊이를 겸비한 철학 입문서’라는 말을 믿고 그 ‘재미’가 어느 정도일지 경험해보고자 도전해보았다. 일단 이 책은 ‘철학자의 생애’를 다룬 점에서 ‘재미’가 있다. 그리고 그 철학자의 생애로부터 만들어진 ‘철학’은 역시나 이해하기 어려운 ‘깊이’가 있었다. 그래서 이 책은 재미와 깊이 모두를 겸비한 책으로 손색이 없다는 점을 인정할 수 있었다.
일단 표지에서부터 이 점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인 빌헬름 바이셰델은 “철학자들의 사상이 연유한 근본 경험을 연구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인”(표지, 저자소개) 연구자로 소개되어 있다. 또한, 이 책의 제목에도 담겨 있듯, 철학은 정문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뒷계단”으로 들어가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뒷계단은 보통은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아니다. …… 그냥 생긴 대로 등장해 생긴 대로 보여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앞계단을 통한 것과 같은 목표를 달성할 수도 있다. 그러니까 뒷계단을 통해서도 이 집의 거주인(철학자)에게 갈 수 있는 것이다.”(7쪽, 프롤로그)
저자는 뒷계단으로 들어가는 것이 철학자의 사상에 가려진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것으로 생각한 모양이다. 하지만 솔직히 한국에는 뒷계단이 없다. 그래서 나는 그가 의도한 바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머릿속으로 그려볼 수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점점 그 의미에 다가갈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뒷계단”이란 표현을 “등산”이라고 바꾸어 불러보면 더 좋겠다고 생각했다.(물론 “철학의 등산”이란 제목은 좀 이상하긴 하다.)
어떤 철학자와 함께 등산한다고 생각해본다. 저 멀리 높은 산이 보이고, 아직은 길이 평탄하다. 주변에는 잔잔한 시내가 흐르고 꽃과 나무들이 있는 넓은 들판이 있다. 나는 찬찬히 철학자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두서없이 편안하게 나눈다. 그러면서 점점 그의 삶에 다가간다. 그러다 이제 산이 시작된다. 점차 숨이 가빠지고 산 중턱 즈음에서는 고뇌와 번민에 가득한 경험을 하게 된다. 점차 말은 없어지고 사유가 시작된다. 견뎌야 한다. 견뎌내는 자만이 산 정상에 다다를 수 있을 테니까. 온몸에 비가 오듯 땀이 흐르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겨우 산 정상에 도착했다. 이제 깨달음에 이른다. 시원한 바람이 온몸을 감싸고, 무언가 해냈다는 뿌듯함이 가슴에 가득 찬다. 하지만 깨달음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산에서 내려오면서 정상에서 느꼈던 그 감정의 여운이 계속되고, 순간을 가득 채웠던 깨달음이 다시 재구조화되며 완성된다. 이제 산에서 완전히 내려와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왔지만, 예전의 내 모습이 아니다. 산 정상에 이르기 위해 거쳤던 모든 과정이 내 안에 오롯이 자리 잡는다. 경험과 기억이 이제는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발판이 된다.
어쩌면 “철학하기”는 등산을 닮아 있다.
-철학은 어렵다.-
그렇다. 나는 이 책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 철학은 완전히 어렵다. 철학을 정문으로 들어가 온전히 맞닥뜨렸다면, 나는 이 책을 그대로 덮고 포기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저자는 친절하게도 “뒷계단”을 통해 철학자의 생애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보여준다. 그는 이 책에 등장하는 34인의 철학자를 따뜻한 어조로, 약간은 유머를 섞어서 소개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철학자의 삶에서 이런저런 감정을 읽어낼 수 있었다. 어떤 사람은 부유했고, 어떤 사람은 똑똑했으며, 어떤 사람은 우울했다. 그리고 그런 감정에서 출발한 그들의 삶이 어떻게 “철학하기”로 이어졌는지를 볼 수 있었다. 다만 그들의 철학 사상을 이해할 수 없었다는 점은 좀 아쉽다. 내 공부가 부족했다. 하지만 분명히 깨달은 것은 있었다.
“철학은 인간이 용기를 낼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다.”(292쪽, 볼테르)
철학은 매우 가치 있는 일이란 점이다. 그래서 누구나 다 살아가면서 한 번은 다 경험해야 할 일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철학은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철학자들이 철학을 해낸 위대한 경험자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철학은 절대성, 확정성, 무한성, 불변성을 찾아 나가는 여정이다. 그것들이 불확실하고 유한한 우리 삶에서 쉽게 찾을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마치 바다 위에서 오랫동안 표류하고 있는 배가 단단한 육지를 찾듯 필요하지만 쉽게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고, 너무나도 똑똑한 철학자들은 그들을 붙잡아줄 단단한 지지대를 찾으려 몸부림쳤다. 그들 덕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버틸 수 있다고 믿는다. 철학자들은 부서진 채 표류하고 있는 배 위의 고독한 선장이다. 하지만 그들은 선원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무한한 권능을 가진 자들이다. 그 권위를 바탕으로 선장(철학자)은 무지한 선원들을 망망대해에서 건져 풍요로운 땅으로 옮겨줄 수 있었다.(하지만 무지한 선원들은 그들을 비난하거나 모욕하거나 무시하기 일쑤였을지 모른다.)
-철학은 역사다.-
34인의 철학자들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그들의 삶은 그들이 살아가고 있던 당대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들의 삶을 연결해보았더니 그것이 곧 역사가 되었다. 그리스적 사유가 탈레스로부터 시작하고, 기독교적 사유가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해 유럽에 자리 잡았다. 데카르트로부터 근대 이성과 계몽의 시대가 도래하였으며, 루소와 흄에 의해 이성의 한계가 폭로되었다. 그들의 삶을 이렇게 순서대로 살펴보는 것이 매우 재미있었다. 철학자의 삶은 곧 시대상을 반영했다. 이런 역사성을 바탕으로 철학을 읽어본 경험이 이제까지는 없었다.
“그(토마스 아퀴나스)는 대립하는 두 개의 세계관을 서로 화해시키고, 그것도 두 세계관의 어느 쪽도 정당성을 잃지 않도록 화해시키는 것을 자신의 과제로 삼았다.”(166쪽, 토마스 아퀴나스)
또한, 서양 철학사를 보면서 하나 인상적인 점이 잘 드러났다. 서양 철학자들은 그들의 시대에 가장 부합하는 시대 정신을 만들어내면서 선배 철학자의 사상을 계승 발전시켰다. 하지만 그들은 온순하고 착실한 제자의 지위에 머무르지 않았다. 스승과 선배의 사상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었지만, 최소한 그들에게서 벗어나려 시도했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래서 조금 더 위대한 철학자들은 인정받기보다 욕을 먹었고, 화려한 삶을 누리기보다 은둔을 택했다. 나는 이런 모습이 동양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동양에서는 스승과 선배의 말씀은 곧 경전이었고, 그것은 학습과 숭배의 대상이었지 비판의 대상이 된 적은 드물었다. 과거 위대한 지성을 본받고 그대로 실천하는 데 주력했지, 새로운 시대 정신을 만들어내는 데는 부족했다. 그래서 서양은 직선형 역사 발전이, 동양은 순환형 역사 반복이 주로 나타났다고 생각했다. 매우 흥미로우면서 인상적인 점이었다.
-철학은 현재에도 필요한가.-
철학은 필요할까. 철학은 우리 현실에 어떤 쓸모가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며 계속 고민했다. 내겐 왜 이 책과 같은 철학 입문서가 필요할까.
“본질과 바탕에 대한 질문이 그 이후로 오늘날까지 철학의 핵심 관심이기 때문이다.”(17쪽, 탈레스)
탈레스가 별을 관찰하느라 위를 쳐다보다 물에 빠지자 그의 하녀가 제 발치에 있는 것은 알지 못한다고 그를 비웃는다. 기본적으로 철학은 형이상학을 다루고 있어서 현실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기 쉽다. 게다가 본질이 무엇인지가 왜 중요하단 말인가. 현실에 기반하지 않는 학문이 우리네 인생에 어떤 쓸모가 있을지, 우리가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내내 고민했다. 그래서 내린 결론. 나는 철학이 누구에게나, 어떤 분야에서든 필요하다고 본다. 소위 ‘개똥 철학’처럼 말이다.
내 나이가 이제 불혹을 넘겼다. 현재의 삶에는 어느 정도 익숙해졌고, 나보다 인생에 익숙한 사람들도 많지만, 어리숙한 사람도 주변에 많다. 그래서 어른처럼 행동해야 하고, 무언가 조언을 해줄 상황이 벌어진다. 하지만 난 아직도 내 삶에 대해 만족한다고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한다. 앞으로 무엇을 해야 옳은지 정확히 판단할 수 없다. 그것은 내 삶에 철학이 없어서 그런 것이다. 내 불확실하고 위태로운 삶에 명확한 목표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하는지, 무엇이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들 것인지는 모두 “철학하기”에 달렸다. 내 비록 위대한 서양 철학자처럼 본질에 대한 형이상학적 물음에 답할 능력은 부족하지만, 그래도 내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할 수 있는 기준과 내 삶의 방향성에 대해서는 명확한 결론을 가지고 살아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철학은 지금 내 삶에 가장 필요한 도구다.
이 책을 읽으며 약간 흥미가 더 생겼던 부분이 있었다. 바로 “언어와 철학”이다. 철학은 형이상학의 영역이 많다. 그러다 보니 현실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추상적 개념을 많이 사용하게 된다. 그래서 나는 철학과 언어가 매우 밀접한 관련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고대 그리스어는 “구체적 현실에서 출발해서 극단적으로 추상적인 개념에 이르는 사유 과정”이 드러날 수 있는 특별한 문법적 장치(73쪽, 플라톤)가 있다고 한다. “우리 말에는 부정(否定)의 낱말이 있어” 서양의 주요한 형이상학 개념에 헷갈리지 않고 접근할 수 있다고 한다.(201~2쪽, 니콜라우스 쿠자누스) 그래서 어떤 특정한 언어를 사용할 줄 알면 철학에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저자처럼 철학자의 생애와 역사를 통해 철학에 쉽게 접근하고자 했던 것처럼, 언어를 통해서도 “철학하기”의 길을 쉽게 열어줄 수 있는 선지자가 나타나길 기대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