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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아무도 가지 않은 길 - 초대 공수처장이 말하다
김진욱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9월
평점 :
나만의 글쓰기 – 공수처, 아무도 가지 않은 길 (김진욱, 알에이치코리아, 2024, 1판 1쇄)
2021년 1월 21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출범했다. 문재인 정부 때 검찰 권력을 견제하고 고위공직자의 부패를 수사할 권력기관이 새로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이 기관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 벌써 30여 년이 지났다는 것이다. 오랜 기간 논의와 협상, 입법 과정을 거쳐 어렵게 등장한 만큼 사람들의 관심은 매우 뜨거웠다. 나도 공수처가 권력의 시녀인 검찰의 기능을 적절히 견제해주길 기대했다.
“오랜 역사를 가진 대법원과 1988년 신설된 헌법재판소 간에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잘 작동하여 국민의 자유와 권리가 잘 보장되는 것처럼 검찰과 공수처 역시 향후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결국 견제와 균형의 상생 관계가 되리라고 생각했고, ……”(11쪽, 머리말)
저자는 ‘공수처와 검찰’의 관계를 ‘헌법재판소와 법원’의 관계로 비유했다. 헌법재판소가 1988년에 등장했으니 그 관계가 제대로 자리를 잡는 데 거의 30여 년이 걸린 것이다. 당연히 3년이 지난 지금까지 공수처가 어떤 역할을 한다거나 검찰과의 관계를 확립하는 데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첫 시작이니까. 그래서 나는 ‘초대’ 공수처장이 쓴 이 책에 관심이 갔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처음으로 걸은 사람이니까.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생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 궁금했다. 앞으로 이어질 공수처의 행보가 그의 머릿 속에서 시작된 것일테니까.
-법조인의 생각-
이 책은 저자가 판사, 변호사, 헌법재판소 연구관, 초대 공수처장으로 일하면서 공부한, 고민한 결과물을 담고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법이란 무엇인가.’, ‘정의와 공정이란 무엇인가.’, ‘대한민국은 법의 지배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에 대한 저자의 생각으로 시작한다. 그래서 추천사에 보면 법에 관심을 가진 일반인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란 표현이 등장한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며 저자가 법에 대해, 정의와 공정에 대해, 그리고 우리나라의 사법 체계의 현실에 대해 가진 생각과 그 근거를 알 수 있었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법과 정의, 공정, 대한민국 사법 체계 그 자체를 논하려는 것보다 ‘초대 공수처장’의 활동과 목표를 설명하기 위한 기본 바탕으로 제시하다 보니 내용이 중복되거나 흐름이 어색해지는 예도 있었다.
저자가 법조인으로 오랫동안 일하면서 공부하고 고민한 내용을 따라가다 보니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법이 논쟁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법대에 진학한 친구가 두꺼운 법전을 들고다니며 암기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나는 법이 절대적 기준이고, 법조인은 그것을 단순히 적용해 판결을 내리는데만 관심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저자는 법이 절대적 규칙이 아니라 “가상의 실제”(81쪽)라고 설명한다. ‘정의’, ‘공정’이라는 개념도 시대에 따라 충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그의 설명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대한민국의 법과 공수처-
저자는 제6장에서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 체계가 구성되는 역사를 살핀다. 나는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 근대 이후 서양의 사법체계와 우리의 전통적 법 체계가 어떻게 다르고, 그것이 현재 대한민국을 구성하는데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정리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모든 기반이 (헌)법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나는 그동안 법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보거나 고민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물론 내가 이런 부분에 대한 기본적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저자의 설명을 모두 온전히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현재 논쟁과 앞으로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문제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이런 기본적 지식을 익혀둘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정치적 갈등과 이해득실의 문제만으로 공수처의 활동과 의미를 판단한 것은 매우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다.
매우 쉽게 생각하고 시작했지만, 뭔가 어려운 결론에 도달한 것 같은 기분이다. 나와 먼 세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우리 모두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걸었던 저자 덕분에 앞으로 우리의 미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가야 하는지 약간의 그림을 그려볼 수 있었다. 부드러운 모피 가죽처럼 짙은 갈색으로 된 앞표지에서 느꼈던 감정이, 책을 덮을 때 나오는 푸른 뒤표지에서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짙은 갈색에서는 법에 대한, 공수처에 대한 막연한 불만과 거부감이 있었다면, 푸른색에서는 부드러운 감촉처럼 법과 공수처가 우리의 일상을 감싸는 친숙함을 느끼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