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의 세계사 - 문명의 거울에서 전 지구적 재앙까지, 2025 우수환경도서
로만 쾨스터 지음, 김지현 옮김 / 흐름출판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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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 쓰레기의 세계사 (로만 쾨스터, 흐름출판, 2024, 초판 1쇄)

지은이 로만 쾨스터는 독일의 역사가로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쓰레기 경제의 전문가이다. ‘쓰레기 경제’라는 말이 생소했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인류가 있는 곳에는 당연히 쓰레기가 발생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수거하고 처리할 것이냐의 문제에서 경제적 힘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간단한 예를 들자면, 물자가 부족할 때는 쓰레기의 양을 줄일 수 있는 재활용과 재사용이 증가하는데, 물자가 풍부한 시대에는 오히려 쓰레기를 늘리는 방향으로 과잉생산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모두가 단순히 쓰레기를 줄이고 환경 오염을 일으키지 않는 방향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지은이는 ‘쓰레기 경제적 관점으로’ 쓰레기의 시작부터 쓰레기의 미래까지를 살펴본다. 1부에서는 근대 이전 인류가 정착하면서부터 시작된 쓰레기 문제를 다룬다. 우리가 버린 쓰레기가 자연적으로 처리될 수 없는 수준까지 쌓이면서 쓰레기를 수거하고 처리하는 방법이 등장하는 역사적 과정을 설명한다. 2부에서는 산업 시대 등장한 다양한 발전이 쓰레기 문제에 끼친 영향을 살펴본다. 마지막 3부에서는 대량 소비의 시대에 폭발하는 쓰레기에 대해 살핀다. 이 책은 쓰레기 문제가 우리의 삶 속에 매우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밝히고, 우리 스스로 쓰레기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만들어졌다.

 

“이 책의 목표는 쓰레기의 역사를 통해 교훈을 얻고,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해결 방안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368쪽, 에필로그; 바다로 밀어낸 쓰레기)

 

 

-역사적 교훈-

 

지은이는 쓰레기를 ‘버려지는 물건’(13쪽)으로 설명한다. 하지만 이것도 우리가 생각하는 쓰레기를 적절하게 정의하는 것이라고 보긴 어렵다. 이 책에 등장하는 ‘버려지는’ 것 중에는 쓸모없고 더럽지 않은 것도 있기 때문이다. 고고학 유물 중에서 지배자의 무덤에 함께 들어가는 부장품이나 전쟁, 사고 등에 의해 어떤 지역에 매장되는 물건 등은 쓰레기라고 보지 않고 유물이라고 생각한다. 반대로 현대 사회에서 상품으로 생산된 것 중에는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버려지는 물건들이 있다. 이건 쓸모가 없어서 버려지는 경우다. 이처럼 쓰레기를 어떻게 정의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논쟁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신기했다.

현대 사회에서는 다양한 종류의 쓰레기가 존재할 수 있지만, 근대 산업 사회가 등장하기 전에는 대부분 분뇨와 같은 생활 폐기물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인류가 정착한 곳 중 쓰레기로 문제가 된 곳은 ‘도시’였다. 농촌에서는 대부분 쓰레기가 자연 분해될 수 있었고, 도시에서 발생한 쓰레기의 대부분이 주변 농촌으로 이동하여 처리될 수 있었다. 그래서 도시 쓰레기는 물에 흘려보내거나 수거하여 주변으로 이동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이른바 쓰레기 수거와 처리가 시작된 것이다. 빠른 물살이 있는 주변이거나 경사가 급한 해안가의 경우 쓰레기 처리가 쉬워서 도시가 발전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도시의 발전이 쓰레기 처리와 관련이 있다는 관점은 처음 접한 것이기 때문에 매우 놀라웠다. 중세의 유럽 도시나 18세기 한양 거리가 매우 더러웠고, 그 오물을 처리할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다양한 전염병이 창궐했다는 사실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 문제를 처리하고자 한 당대 사람들의 노력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경험이 없었다.

 

“19세기 이후 도시 위생 담론은 전근대 도시의 지저분함을 강조했다. 하지만 외교 관계로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도 시민들은 도시를 깨끗하게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53쪽, 도시의 시작, 그리고 지저분한 발전)

 

도시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쓰레기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지금껏 간과하고 있었다. 전근대 유럽의 도시가 더러웠던 것은 성벽에 가로막힌 채 전쟁으로 인해 교외가 파괴되면서 쓰레기를 처리할 수 없었다는 저자의 설명은 그야말로 신세계를 발견한 느낌을 주었다. 그들이 무지해서, 위생적이지 못해서 더러웠던 것이 아니라, 강제적으로 더러움을 경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들이 오히려 동양보다 청결한 도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것일지도 모른다.

 

예전부터 사람들은 청결함과 불결함에 대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청결한 문화를 가진 대상을 만나면 그들에 대한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대체로 17세기 이전까지는 유럽인들이 동양의 도시들을 여행하면서 그들의 청결함을 칭송하는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자신이 사는 곳을 맹렬히 더럽다고 비난하는 때도 있었다. 청결함을 좋아하는 것은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청결이 자신을 남과 차별화하려는 욕구가 반영된 우월함의 표상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타인에게 위생(청결)을 강요하는 것이 일종의 폭력이 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지은이는 16세기 후반 유럽 내 종교 분쟁에서 가톨릭과 개신교 사이의 문명 차이를 보여주는 논쟁의 주제로 ‘위생’이 등장하는 것을 지적하고, 19세기 서양 탐험가들이 아시아나 아랍에서 불결한 도로를 묘사함으로써 자신들의 문화적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을 살핀다. 위생이 “분화를 만드는 논리”(117쪽)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산업 혁명이 가져온 변화-

 

산업화는 도시 구조의 변화를 가져왔으며, 그에 따른 쓰레기 처리 기술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쓰레기 수거와 처리에 관한 기술 발전은 전근대 사회에서 발전시켜 온 재활용과 재사용을 활성화하기도 했지만, 동시에 전통적 처리 방식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게다가 도시가 더욱 거대해지면서 쓰레기 발생량과 처리 비용도 동시에 급격히 증가했다. 엄청난 기술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쓰레기를 처리하는 방법은 크게 변화하지 않은 듯 보였다. 도시에서 쓰레기를 수거하고, 교외 지역으로 이동하여 매립하거나 소각하는 방식은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게다가 더 중요한 문제가 추가되었으니, 그것은 바로 쓰레기 처리 문제를 바라보는‘경제적 관점(자본주의 방식)’이었다. 쓰레기 처리를 ‘비용’의 관점으로 보면, 쓰레기 처리 과정보다 공영화, 민영화 논쟁이 우선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계획경제 하 소련이나, 전시 체제 하 영국이나 독일에서는 정책적으로 쓰레기 분리수거와 재활용이 강조되었지만, 이마저도 대량 소비 시대로 넘어가면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위생이 곧 권력이 되는 구조도 계속되었다. “백인 거주 지역과 흑인 거주 지역을 분리하는”(190쪽) 형태의 식민지 지배 방식도 등장했다. 전근대 사회의 쓰레기 처리 방식에서 얻은 교훈은 산업 시대에 제대로 작동할 수 없었다.

 

 

-쓰레기의 종착지, 라스트 씽크-

 

자본주의의 발달과 대량 소비의 시대는 쓰레기 문제에 더 큰 변화를 가져왔다. 쓰레기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이다. 쓰레기가 증가한 원인은 누구나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매우 간단하다. 바로 과잉생산, 과대포장, 일회용품의 증가다. 하지만 문제는 쓰레기 처리 방식은 전근대 도시의 방식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바로 1차적 수거와 2차적 처리 방식이다. 쓰레기가 급격히 증가하면서 이제는 도시 밖으로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다. 전근대 사회와 달라진 새로운 쓰레기가 새로운 위협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제는 쓰레기 문제를 새롭게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쉬운 일이 아니었다.

현재 우리는 도시에서 발생하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허덕이고 있다. 쓰레기 문제의 가장 큰 핵심은 모든 쓰레기를 처리할 역량이 없다는 점이다. 대량 소비 시대의 쓰레기 문제는 이제 태평양 위의 거대 쓰레기 섬(GPGP)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 거대한 쓰레기 인공 구조물은 자본주의적 논리에 따라 ‘의도적’으로 버려지는 위험한 폐기물과 ‘관리에 실패한’ 쓰레기의 결과물이다. 대량 소비의 편리함과 자본주의적 성장의 관점에서 의도적으로 감춰진 이 결과물에 대해 우리는 관심이 없다. 지금 당장은 우리 곁에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언젠가 이 거대한 쓰레기 섬이 우리 지구를 완전히 뒤덮는 날이 올 것이다.

 

 

영화 엘리시움(2013)은 2154년 지구가 쓰레기에 뒤덮인 모습을 묘사한다. 마치 필리핀 마닐라의 쓰레기 매립지에 형성된 쓰레기 도시 스모키마운틴을 보여주는 듯 하다. 지구에 사는 사람들은 쓰레기로 삶을 연명한다. 그들이 선망하는 ‘위생적이고 청결한’ 세상은 그들로부터 격리된 우주 공간, 엘리시움이다. 그곳으로 가기 위한 주인공의 분투는 눈물겹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2154년까지 채 100년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과 같은 방식으로 생산하고, 소비하며 쓰레기 문제를 도외시한다면 그와 같은 미래에 곧 도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말은 매우 허무했다. 엘리시움이 지구인들에게 점령되면서 ‘격리된 위생 공간이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위생과 청결의 문제는 격리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도시 공간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다른 곳으로 밀어낸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그 같은 깨달음을 영화보다 더 충격적인 현실을 통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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