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문항 킬러 킬러
이기호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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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 킬러 문항 킬러 킬러 (이기호 외, 한겨레출판, 2024, 초판 1쇄)

제목과 표지 모두 인상적이다. 우선 대통령에 의해 새롭게 정의된 ‘킬러 문항’은 우리의 교육 현실을 바로 보여준다. 우리 교육의 최대 지상 목표는 최상위권을 변별해내기 위한 평가로 좌지우지된다. 킬러 문항의 존재는 항상 돈이든 실력이든 최상위권 학생들만을 위해 존재하고, 대다수 학생은 소외된다. 그런 킬러 문항을 없앤 대통령은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일부 사교육 업체와 담합한 출제 교사들의 비리였을까. 아니면 최상위권을 위해 평가에서 좌절해야 했던 수많은 학생의 현실이었을까.

둘째, 표지 배경이 고3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 답안지다. 하지만 이 답안지에는 엄청난 오류가 있다! 한국사와 탐구 과목 답안지가 분리된 지 꽤 지났고, 심지어 탐구 선택과목 코드를 입력하는 란이 없다!! 내가 고3 담임을 오래 해서 이런 게 보이는가 보다. 어찌 되었든 우리 교육의 현실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라는데는 동의한다. 고3 첫 학력평가가 곧 수능 점수라고들 말하니까. 이 점수를 시작으로 고3은 수험 레이스에 돌입한다. 담임교사는 학생이 수시를 지원해야 할지, 정시로 지원해야 할지를 상담하기 시작한다.

 

 

-14명, 소설가의 눈에 비친 우리 교육 현실-

 

쟁쟁한 소설가들이 뭉쳤다. 짤막한 소설 속에 우리 교육에 대한 묵직한 그들의 생각이 담긴다. 소설가들은 우리 교육을 어떻게 바라볼지 매우 궁금했다. 각양각색 그들의 소설만큼이나 작가들은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그들이 모두 동의하는 것은 우리 교육 현실이 슬프고, 괴롭고, 기괴하다는 사실(7쪽)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14가지 이야기들은 우리 교육 현실을 담담하게 바라본다. 냉철하게 원인을 분석하고 비판하며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시도는 당연히 없다. 하지만 이 혼란스러운 현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작가들은 우리에게, 미래 세대에게 아주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당대를 다루는 작가의 의무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 바로 그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쓸 때 그의 글에서 단순한 생상함 이상의 어떤 불꽃이 튀는 것 같다. 1920년대에 바이마르공화국과 조선 땅에서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에 대해 쓰는 것과 2020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주제에 대해 쓰는 일은 완전히 다르다. 비교할 수 없다.”(8쪽, 기획의 말)

 

작가들이 마주한 현실은 하나같이 지금 우리 아이들이 처한 현실이다. 자퇴하는 아이, 입시 경쟁에서 반칙을 거부하는 아이, 비교당하는 아이, 학교 폭력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아이 등등 수많은 학생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학생들 곁에는 가르치는 교사와 보살피는 학부모가 등장한다. 찬찬히 그들의 곁으로 다가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킬러 문항 킬러 킬러 킬러-

 

“사교육 시장을 이길 수 있는 정부는 없다고 했다.”(33쪽, 킬러 문항 킬러 킬러)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우리 교육은 자본주의와 능력주의, 신자유주의를 닮았다. 개인의 재산과 능력과 자유를 극대화하기 위해 우리는 공동체를 포기한다. 타인과의 연결, 협력, 공조를 버린다. 생존 경쟁을 통해 모든 자원을 독점하는 자가 승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공정과 상식을 운운한다고 하는 것이 어쩌면 더 아이러니한 것은 아닐까.

정부가 칼을 빼 들었다. 사교육 시장과 출제 교사의 비리와 입시 카르텔을 뿌리 뽑고 공정한 입시를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과연 경쟁 체제에서 공정함이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시험을 보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인이 모든 것을 독점하는 것을 장려하는 사회에서 상식이 통할 수 있을까.(배불리 먹는 지배층과 굶어 죽어가는 피지배층이 공존하는 세상이 상식적인가) 특히 저 사교육 시장은 개인의 경쟁에 뿌리내리고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보다 더 많은 자원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천재적인 머리와 우연한 행운으로 성공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그렇게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결국, 사교육 시장은 경쟁 위주의 입시 교육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번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누구도 경쟁 위주의 입시 교육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 병폐가 만천하에 드러나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데도 그러지 못한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은 세력이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서열화를 없애려면 서울대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서울대 출신 기득권은 무어라고 반응할까. 대한민국의 정상화를 위해, 우리 교육의 백년지대계를 위해 기득권 세력이 스스로 양보하고 특권을 포기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점이 가장 안타까웠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은 “킬러 문항 킬러 킬러 킬러”(38쪽)가 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다시 하면 되죠.”-

 

고등학교엔 매우 진귀한 현상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이 수업 활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것도 1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만이다. 시험을 보면 볼수록, 성적이 쌓여갈수록 서서히 수업에서 떨어져 나가는 학생이 늘어난다. 이건 비단 성적이 낮은 하위권 학생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상위권 학생들도 본인이 원하는 내신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나 버린다.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선택하는 최상위권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학교는 더이상 예전처럼 학창 시절의 추억을 쌓는 곳이 아니고, 평생 함께할 절친을 만나는 공간도 아니다. 경쟁을 위한 발판, 짓밟고 올라갈 희생자들만 가득한 공간이다. 학생들은 주변 친구들과 무언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교사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나갈 생각은 더더욱 없다. 3학년 2학기가 되면, 학교는 사실상 멈춘다. 우리 교육이 대학 입시에 매몰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특히나 고3 담임을 오래 했다. 학생들에게 점점 더 다가가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 그럴수록 나는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지, 학생들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필요할지 고민이 많아진다. 그래도 아직은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존재라 받아들여지고 싶다. 그 ‘무엇’이 무엇인지 아직 명확히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런 순간 이 책에서 힌트를 하나 얻었다.

 

(아이가 묻는다.)“만약에 실패하면 어쩌죠?”

(미지의 존재‘무제’가 답한다) “…… 다시 하면 되죠.”(157~158쪽, 민수의 손을 잡아요)

 

일단 나는 학생들에게 ‘무제’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 좋은 교사는 학생에게 그 어떤 강제를 하지 않는 교사다.” 마치 노장사상에서 이야기하는 가장 좋은 임금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금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태평성세를 누리는 백성. 교사가 권위를 지니지 않고 학생에게 그 어떤 위압감도 주지 않는 평온한 상태. 나는 그런 모습이 교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식의 독점과 우위를 통해서, 평가권을 바탕으로 학생을 위협하고, 강제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 생각한다. 교사와 학생은 서열이나 우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존재로 나아가야 한다. 학교를 구성하는, 교육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동등해져야 한다.

또한, 학생이 실패를 인정하고 재도전하도록 격려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즉, 학생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실패에 대한 피드백을 더 열심히 해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음부터 만점을 받고, 언제 어디서나 완벽한 평가를 받는 학생은 사실, 교사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스스로 할 수 있고, 교사는 방향만 제시해주면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잘하지 못하는 학생이다. 이런 학생에게는 정말로 교사가 필요하다. 교사에게 실패를 보여주고 도움을 요청하는 학생이 많을수록 그 교사는 제대로 된 교육자다. 실패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 그것이 교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교육이라고 나는 믿게 되었다.

 

 

여러 작가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단편 소설집은 참 매력적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단연 최영, ‘대치골 허생전’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허생전의 내용에 우리 교육 현실을 녹여 넣을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놀라웠다. 허생전 자체가 당대의 문제와 부조리를 강하게 비판하는 소설이 아니던가! 그 형식을 그대로 가져오기만 해도 충분히 목적에 부합하는 소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되었다. 이런 것이 문학이나 독서 수업에서 수행평가로 활용된다면 어떨까. 이런 참신한 생각을 학생들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했다.

그리고 서윤빈 작가의 발견도 내게는 소득이다. 과학과 문학이 이토록 부드럽게 만나는 문장이라니. 생소하면서도 너무나 매력적이다. 앞으로 이 작가의 소설을 더 찾아 읽어보게 될 것 같은 간지러운 기분이 든다.

 

“여자들이 데이트를 할 때면 유독 파스타를 찾는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았다. 입맞춤의 맛은 그날 먹은 음식에 따라 물리적으로 결정되는 거였다.”(89쪽, 소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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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공익 - 왜 어떤 ‘사익 추구’는 ‘공익’이라 불리나
류하경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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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 불온한 공익_왜 어떤 ‘사익 추구’는 ‘공익’이라 불리나 (류하경, 한겨레출판, 2024, 초판 1쇄)

찐 변호사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로 가득 한 책이다. ‘공익, 인권 변호사’라 불리는 저자는 변호사가 된 이래 마주쳤던 다양한 사건들 속에서 일반인들은 볼 수 없었던 세상을 만났고, 그 경험을 매우 진솔한 이야기로 풀어냈다. 우선 저자의 진솔함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고, 다음으로 재미난 이야기로 풀어내는 능력에 감탄했다. 나 같은 사람은 평생 전혀 만날 일 없는 헌법과 법률을 구체적인 현실 장면에 어떻게 쓸모 있는지 설명하면서도, 법으로는 절대 풀 수 없는 일도 있다는 점을 가르쳐준다. 또한, 법정 드라마에 나오는 차갑고 논리적인 변호사의 이미지와는 전혀 다른 인간적이고 따뜻한 변호사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저자는 결국 법이든, 정치든, 삶이든 모든 것은 인간이 하는 것이기에, 모두가 인간적인 대우를 받을 수 있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공익(公益) Vs 사익(私益)-

 

제목 ‘불온한 공익’은 우리 사회의 현실을 매우 잘 반영한다. 저자에 따르면 ‘공익’은 절대 불변의 보편적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사회에서 통용되는 ‘공익’이라는 개념은 ‘사회적 약자의 사익 중 현재의 공동체 다수가 위험하지 않다고 보아 그 추구 행위를 허용하는 사익’이다. …… 역사의 관점에서 보자면 인류의 투쟁은 이 ‘공익의 범위’를 확장하면서 계속되어 왔다. 만들어진 경기장 안에서의 경기를 넘어서 경기장 자체를 더 넓히는 공사.”(6쪽, 들어가는 글)

 

공익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것을 목표로 하다 보니 실제 현실에서는 사회적 약자의 ‘사익 추구’를 위해 타인의 사익이 침해되는 모습으로 연출된다. 예를 들자면, 흥선대원군이 호포제를 실시해 양반에게 세금을 걷게 된다면, 결국 사회적 약자인 백성의 세금 부담이 줄어든다. 하지만 문제는 오랜 세월 내려온 양반의 면세 혜택이 사라지면서, 양반가의 체면에 심한 손상을 준다. 공익을 위한 개혁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지만, 실제 양반과 백성의 관계에서 보자면 백성의 사익 추구가 양반의 사익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그러니 ‘공익’의 영역을 넓히는 과정은 결국 사회적 강자들로부터 “불온(不穩)하다.-온당치 못하다!”라는 평가를 받게 될 수밖에 없다.

이 책의 1, 2장은 이런 ‘불온한 공익’을 다룬다. 1장에서는 국가가 공익보다 사회적 강자의 입장에 서는 사례를 보여주고, 2장에서는 아직 ‘공익’이라고 인정받지 못한 사회적 약자들의 사익 추구 사례를 제시한다. 1장에서는 국가와 공무원이 손쉽게 사회적 강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이해하면서 그 권력을 어떻게 감시하고 통제할 것인지를 공부하게 된다. 2장에서는 우리 주변에 있는 사회적 약자들이 고통받고 있는 현실에 대해 내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고, ‘불온한 사익 추구’가 ‘공익’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나와 같은 일반인들이 그들과 연대해야 한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찐 변호사-

 

“변호인은 업무와 관련된 조언 말고는 의뢰인의 말을 들어줄 뿐이다. 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되는 때가 많다. 대부분 의뢰인은 접견이 끝나면 감사하다고, 도움이 되었다고 인사한다. 변호사는 하나하나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그저 진심으로 들어주는 시간이 더 길다.”(230쪽, 변호인을 위한 변호)

 

나는 저자가 “찐 변호사”라고 느꼈다.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위 장면에서 저자의 진정성을 가장 크게 느꼈다. 드라마에서처럼 열변을 토해내거나 냉철한 계산과 분석, 전략을 세우는 모습은 그냥 평범한 변호사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변호사는 의뢰인에게 재판의 승소보다 행복해질 방법을 제시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뭣이 중한디!? 결국은 사람이다. 저자는 의뢰인을 진심으로 대하는 변호인이었다.

 

““많이 기대들 하셨을 텐데”라고 말하고 나니 울음이 터질 것 같아서 잠시 가만히 있었다.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왜냐하면 다음에 하려고 했던 말이 “변호사가 능력이 부족해서 죄송합니다.”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말하고 울어버렸다.”(50쪽, 살려달라 말하니 공무집행방해가 됐다.)

 

이 책에서 나도 함께 울컥했던 부분이다. 저자의 솔직함 때문에, 그리고 그가 억울한 사람의 심정을 깊이 공감하고 함께하고자 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얼마나 힘이 될 것인가. 내 억울함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이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얼마나 힘이 되는지는 힘겨운 순간에 부딪혀보면 바로 깨닫게 된다. 그래서 내가 이 대목에서 울컥했는지도 모른다. 이런 사람이 내게도 필요해서.

 

 

-법이 다가 아니다!?-

 

저자는 법을 잘 알기 때문에 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같은 법조인 출신인 현 대통령님은 그걸 잘 모른다는 게 참 큰 문제다. 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너무 많다. 그렇다면 그걸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결국은 우리와 같은 일반인들이 나서야 한다. 시민 사회가 나서서 공론화시켜야 하며, 그것에 대해 계속해서 토론하고 항의해야 한다. 저자와 같은 사람들이 나서서 활동할 수 있도록 관심과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결국, 우리가 나서지 않으면 높으신 분들은 절대 바뀌지 않는다. 저자는 그 점을 매우 강조한다. 또한,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회적 약자들에 관심을 두고 작은 지원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침묵과 방관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고, 그 피해가 결국 우리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상황에서 누구 편을 들 것인가 선택해야 할 때가 있다는 말이다. 침묵은 중립이 아니다. 강자가 지배하는 현 상태를 용인하는 것에 불과하다.”(10쪽, 들어가는 말)

 

“인간 대접을 받게 된 게 제일 좋다.”(160쪽)고 말하는 노동자를 보면서 과연 우리는 상대를 인간으로 대접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교사로서 앞에 앉아 있는 학생을 인간으로 대접하고 있는가. 맞은 편에 앉은 교사를, 전화 통화로 만나는 학부모를 인간으로 대접하고 있는가. 나도 다시 한번 반성하게 된다.

 

물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이 책의 뒷부분에 “꿀팁-수사기관편(?)”이 하나 있어 흥미로웠다. 수사기관에 방문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결국, 기세가 그 사람이 받게 될 대우를 결정하는 것일지 모르지만, 핵심은 ‘아는 것’이었다. 모르면 당하는 것이다. 모른다고 상대방을 ‘인간 대접’하지 않는 사람들이 문제긴 하지만, 결국 모르면서 당하는 것도 문제라 생각했다. 내가 알려 하고, 인간으로 대접받고자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 강자들은 절대로 그것을 내게 떠먹여 주지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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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서 춤추다
낸시 크레스 지음, 정소연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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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 (중단편선) 스페인 거지들 (낸시 크레스, 폴라북스, 2024, 초판 2쇄)

낸시 크레스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로 이번 중단편선 중 대부분이 생명공학과 유전공학을 소재로 한다. “스페인 거지들”은 낸시 크레스의 중단편 소설 13편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대략 100여 페이지 정도의 짤막한 분량이라 금방 읽을 수 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스타작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게다가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SF 분야에서 모두 수상했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이 그만큼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제목으로 사용된 “스페인 거지들”은 17~18세기 스페인의 성당 주변에서 구걸하던 거지 이야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제목이 매우 독특해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그 당시 스페인 거지들은 매우 당당하게 구걸을 했고, 사람들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그들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 어떤 대가나 보상도 바라지 않고 순수한 선의로 거지를 도운 것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가 사회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지극히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 사회에서는 동양 공동체 문화권과는 달리 이런 생각 자체가 매우 신선한 설정이었을 것이다.

 

 

-SF 설정, 유전자 조작-

 

이 작품은 ‘유전자 조작’을 소재로 시작한다. 가까운 미래 유전자 조작이 가능해진다면, 당연히 부자들은 아기에게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주려고 할 것이다. 긴 다리에, 작은 머리, 금발에 푸른 눈동자 등 외모와 우월한 성향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쇼핑하듯 고른다는 설정은 사실 그다지 새롭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충격적인 요소를 하나 더 추가한다.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아이를 원합니다.”(16쪽)

 

잠을 잔다는 행위를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머지, 나는 이 설정에 충격을 받았다. 물론 고등학생 때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했던 시기에는 잠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때의 경험 때문에 반드시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고 생각했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는 것을 절대로 학생들에게 권하지 않는다. 그런데 작가는 그 반대였다. 심지어 잠을 자지 않는 ‘불면인(소설 속에서 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 속 불면인들은 잠을 자는 사람에 비해 매우 건강하다. 수백 년을 살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그들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공부도 잘하고, 몰입도 잘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결정적인 장점은 그들이 매우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이 소설 속 불면인은 우월하다. 아니 너무 탁월해서 잠을 자야만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 두려울 정도다.

 

 

-계급과 혐오-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아이들, 불면인은 수면인에 비해 월등하다. 게다가 그 월등함이 자연 선택에서도 우성 유전이 된다. 자연스럽게 불면인은 그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사회 최고 계급에 진입한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우월한 불면인들은 당연히 평범한 수면인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든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우월하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수면인들에게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불면인) 그들을(천재적인 수면인) 질투하지 않아. 우리가 더 나으니까.”(65쪽)

 

그런데 이게 참 이상하다. 대체로 우리 사회에서 혐오의 대상은 너무 우월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열등해서였다. 그래서 열등한 자들은 무차별 폭력에 노출되고, 차별받으며, 격리당했다. 하지만 불면인들은 반대였다. 스스로 자신들을 격리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었지만, 우리 사회의 최상층 계급이었다. 비밀 연락망을 구축했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며, 문명 발전에 꼭 필요한 위대한 기술을 개발했다. 게다가 소수는 변호사, 회계사, 의사로 성장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 사람들의 혐오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우월해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갈등은 전혀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아이러니였다.

 

 

-겐조 요가이와 스튜어트 서터-

 

주인공 리샤는 겐조 요가이의 강연을 듣고 바로 그의 추종자가 된다. 우월한 불면인은 매우 이성적이기 때문에 그의 주장에 쉽게 동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리샤는 아주 쉽게‘요가이스트’능력주의와 자유주의를 숭배하는 전형적인 미국인이 된다.

 

“인간의 숭고함, 인간으로서의 유일한 존엄성은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 인간에게서 성취할 기회와 자신의 성취를 타인과 거래할 기회를 빼앗는 일은 그에게서 인간으로서의 숭고한 존엄성을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50~51쪽)

 

하지만 리샤는 위기에 빠지고, 그 위기를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수면인인 동생 앨리스와 스튜어트 서터의 도움을 받는다. 리샤가 오래전부터 열등하다고 생각했던 동생 앨리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요가이스트라고 믿었던 수면인 스튜어트의 도움을 받으며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것은 불면인과 수면인 사이의 갈등과 불신을 해결할 방법이었다.

 

“거래는 항상 선형으로 이루어지지 않아요. …… 그것은 순환이에요. 네, 거래의 순환이죠. 모두는 계약으로 묶이지 않아도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예요.”(146쪽)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성취와 자유로운 계약은 선형이다. 우월한 자와 열등한 자를 나누고,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에게 그 성취를 나눠주는 대가를 받는 것이 모두에게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것도 다른 이에게 제공할 수 없는 ‘거지’는 이 선형적 관계 속에서 소외된다. 우월한 자들이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스페인 거지들”은 그렇지 않았다. 거지들도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이고,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했다. 그들의 구걸에 도움을 주는 것을 우월함과 열등함의 선형적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일원이었고, 거지를 구하는 일이 곧 나를 돕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리샤는 스스로 요가이스트가 되었다가 주변인의 도움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불면인과 수면인은 이제 우월과 열등의 선형적 관계에서 벗어나 평등한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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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인터넷 - 지구를 살릴 세계 최초 동물 네트워크 개발기
마르틴 비켈스키 지음, 박래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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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가쇄본이다. 제목 자체가 매우 흥미로워서 서평단을 신청했다.


처음 "동물 인터넷"이라는 제목을 보고 동물들 간 정보를 주고 받는 네트워크가 형성된 이미지를 떠올렸다. 불가능한 상상의 영역이겠지만, 동물들이 자유롭게 컴퓨터로 인터넷에 접속하여 정보를 주고 받으며 상호작용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하지만 이 책은 "인터넷"의 초기 역사와 비슷한 생물학 연구 과정을 보여준다. 1950년대 컴퓨터들이 점과 점으로 연결되어 있다가 그것이 거대한 정보망으로 발전한 것처럼, 각각의 동물이 점으로 존재하며 정보를 제공하고, 그것을 연구자가 수집하여 거대한 정보망을 형성하는 생물학의 한 분야였던 것이다. 이것 또한 새로운 세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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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 전만 해도 조지는 전파천문학 분야에서 환상적인 경력을 쌓고 있었고, 빌은 생물원격측정법 분야를 개척했다. 그렇게 다른 길을 걷고 있던 둘은 이제 같은 곳(동물 인터넷)을 바라보고 있었다."(가쇄본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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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미 생물학 분야에서 모든 연구가 끝났다고 평가받은 동물들에게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있었다. 나는 이 점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이미 모든 것이 알려져 있다고 생각되는 곳에서 새로움을 발견해내는 것, 나는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창의력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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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모든 것이 이미 알려져 있다"고 말하면, 이는 분명 더 큰 그림을 놓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전통이 진정한 혁신을 낳는다."(3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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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새롭게 발견해내고자 한 영역은 바로 동물들 간, 그리고 동물과 환경 간 상호 작용이다. 우리와 시간과 공간을 완전히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동물들은 사실 우리와 전혀 다른 시간과 공간을 경험한다. 가장 단적인 예를 들어보자면, 우리가 잠들어 있는 시간에 활동하는 동물들이 있다. 그들이 그 시간에 무엇을 하는지는 그 동물들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이 책에서 많이 다뤄지는 철새도 있다. 그들은 우리와 달리 엄청나게 먼 거리를 비행한다.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그 먼 거리를 이동하는지를 우리가 알긴 어렵다. 그들만큼 이동하는 것 자체가 매우 힘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은 드넓은 자연을 인위적으로 경계지어두기 때문에 국경을 넘는 것도, 동물을 따라 이동하는 것도 자유롭게 할 수 없다. 저자는 바로 그 지점을 미지의 영역으로 설정하고 그것을 탐구하고자 한다. 그 탐험과 실패의 역사를 찬찬히 따라가보는 재미가 있다.



저자의 탐구 과정을 따라가다보면 마주치게 되는 동물들이 있다. 그런데 저자는 그 동물들이 주체가 되어 저자를 비롯한 인간과 교감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우선 태평양 한 가운데 무인도에 사는 바다사자 수컷 우두머리가 서문에 등장한다. 저자는 그 수컷 우두머리가 "자신이 해변의 주인이고, 저자가 캠프의 주인이라는 서로의 합의"를 이해하고 있다고 서술한다. 심지어 그 바다사자가 살아남기 위해 그 합의를 이요하는 것까지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또한, '한지'라고 불리는 유럽 황새는 심지어 농부 가족을 직접 입양하고, 음식을 달라고 부탁한다고 보았다. 놀라움 그 자체다.


저자의 연구 과정을 보면 동물에 얼마나 세심한 관심을 기울이는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한,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어떻게 그들의 연구에 영향을 끼치게 되는 지도 알 수 있다. 인간이 일으킨 전쟁이 동물 세계에, 전 지구에 상호 영향을 주고 받게 된다는 것이 딱 이 책의 내용과 들어맞는다고 생각했다. 저자가 꿈꾸는 이카루스 프로젝트는 그렇게 하나씩 단계를 거쳐 완성되어 가고 있었다. 그 완성된 모습이 어떨지 매우 궁금하다. 이 책의 결말이 어떤 미지의 세계로 나를 데려가줄 수 있을 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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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로 읽는 동남아 - 동남아시아의 어제와 오늘을 이끈 16인의 발자취
강희정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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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의 글쓰기 – 인물로 읽는 동남아 (강희정 외, 한겨레출판, 2024, 초판 1쇄)

“서강대학교 동아연구소의 동남아 연작, 그 두 번째 이야기”이다. 동남아시아는 가깝지만 낯선 곳이다. 세계사, 동아시아사 수업에서도 제대로 배울 수 없다. 하지만 그곳의 역사는 우리와 많이 닮았다. 그래서 이들을 통해 우리가 배울 점이 더 많다고 생각했다. 또한, 동남아시아의 오늘을 만든 근현대사의 주요 인물 16명을 읽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한국 근현대사의 인물들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내가 익숙하게 아는 한국사의 인물들과 이 책의 인물들이 비슷한 시대, 상황, 문화 속에서 살아갔기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비슷한 선택을 하기도 했고, 어떤 경우에는 전혀 다른 선택을 하기도 했다.

 

“동남아시아 근현대사를 조망하다 보면 오랜 식민지 역사를 만나게 된다. 제국주의 식민지가 곳곳에 건설되면서 현지인들을 착취했고, 이에 반제국, 반식민을 표방하는 저항이 다양한 사상적 배경하에 각지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들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민족의 영웅’들이 떠오르면서 민족주의 열풍을 주도했다. 이들은 식민지를 넘어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고 전통을 계승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서, 스스로 국가 및 민족의 정체성을 대표하는 상징이 되었다.”(174~175쪽)

 

식민지배를 받고, 그에 저항하면서 독립 국가를 건설했던 우리의 아픈 역사와 겹친다. 그래서 그들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다. 그들의 성공을 통해 우리의 실패를 반성하고, 그들의 실패를 통해 우리의 성공을 위한 노력이 무엇이었는지 파악할 수 있다.

 

 

-동남아, 다양한 문화의 교차점-

 

동남아시아는 다양한 문화가 만나는 교차점이다. 그래서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공존하기도 하고, 갈등을 일으키기도 한다. 게다가 풍부한 자원 덕분에 전 세계의 침략자들이 이곳으로 몰려들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동남아시아는 토착 민족뿐만 아니라 공통으로 유럽, 중국의 이민자들이 큰 발자취를 남긴 곳이다. 이 책에 소개된 인물 중 많은 이들이 이민자의 혈통을 가진 이들이다. 혼혈이라는 조건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상징하는 ‘민족의 영웅’이 될 수 있다는 점과 공동체로서의 국가를 이끌 수 있었다는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반면에 우리는 상대적으로 문화적 다양성이 부족한 편이다. 대륙과 해양 세력의 틈새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유의 문화를 고집하고 다른 문화에 대해 배타적 태도를 견지한 덕분이다. 그래서 우리는 민족적 상징이나 국가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외세에 의존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인지한다. 중국인 또는 일본인과 피가 섞인 혼혈이 국가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힘들다. 그래서 우리보다는 동남아시아가 더 다문화 사회와 세계화에 적합한 문화적 자산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최소한 혈통과 민족, 언어에 대한 다양성을 기본적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동남아시아의 역사를 통해 이런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는 태도를 학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 전통을 지켜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세계 속에서 다른 문화와의 관계를 제대로 설정할 수 있는 태도를 배워야 하기 때문이다. 배타적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나라가 세계 그 어디에서도 환영받을 수 없다. 그리고 현재 동아시아의 갈등과 대립은 배타적 역사 교육과 대외 인식에 기인하는 것이 크다고 생각한다.

 

 

-낯선 땅, 동남아시아-

 

일단 이 책을 이해하는 데 가장 큰 어려움은 동남아시아의 지리와 역사에 대한 지식이 거의 없어서 발생했다. 일단 각 국가의 위치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데, 이 책에는 인물들이 태어난 도시나 활동한 공간을 언급한다. 그래서 나는 어쩔 수 없이 동남아시아의 주요 도시가 표시된 지도를 구해 그것을 보면서 하나하나 대입해가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어디가 어딘지 모르면 인물이 어떤 경로로 이동을 했으며, 그것이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정확히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지도를 보면 그 문제가 조금은 해소될 수 있었다.

그리고 지도를 참고해 책을 읽으면서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동남아시아는 아프리카와 달리 현재 국경이 유럽 열강의 영향도 있지만, 지형과 민족, 주변 세력과의 갈등 덕분에 그려진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물론 인도네시아의 경우는 네덜란드가 식민지배를 하던 공간을 물려받은 경우라 예외일 수 있지만 다른 나라들은 민족 운동을 통해 독립하거나, 자체적인 노력을 기울여 독립 국가가 된 경우들이 있었다. 특히 싱가포르와 동티모르의 경우가 매우 놀라웠다. 동티모르는 21세기에 독립했다는 점이 놀라웠는데, 실제로 비슷한 이탈리아의 사례가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있어 더욱 흥미롭게 읽었다. 로즈 아일랜드 공화국(2020)이란 영화다. 누구든 국가를 세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것을 국제 사회가 인정하면 독립 국가가 될 수 있다는 점은 학생들에게도 매우 흥미로운 수업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을 가지고 독립 국가의 요건 같은 것들을 학습한다면 더 오래 기억에 남을 수 있을 것이다.

 

 

동남아시아는 세계 주요 제국의 변방이었다. 그들의 침략을 받았지만, 다양한 제국의 충돌 속에서 오히려 민족의 운명을 지킬 수 있었다. 또한, 식민지배를 받았지만, 우리와 달리 열강을 선택할 가능성도 존재했었다. 그래서 동남아시아는 한반도와 달리 강대국의 영향력이 오히려 적은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동남아시아에는 엄청난 가능성을 가진 지리적 이점과 자원이 있지 않은가. 비좁고 내세울 것 없는 한반도에 비해 조건이 더 좋아 보였다. 물론 한반도에 사는 약소국 국민의 푸념일지 모른다. 하지만 우리도 그들처럼 다양성을 인정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 역사를 이끌어나갈 수 있다. 이주자들에게도 평등한 기회를 부여하고,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민족 문화의 전통을 지켜나가며, 보편적 종교의 정신을 세계에 전파하는 운동을 해 나갈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을 인정할 수 있기만 하면 말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16명의 인물은 모두 동남아시아를 이끈 인물들이다. 그들에 대한 후손들의 평가가 어떤지, 지금 우리나라를 이끌어가는 사람들이 보고 느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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