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킬러 문항 킬러 킬러
이기호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평점 :
나만의 글쓰기 – 킬러 문항 킬러 킬러 (이기호 외, 한겨레출판, 2024, 초판 1쇄)
제목과 표지 모두 인상적이다. 우선 대통령에 의해 새롭게 정의된 ‘킬러 문항’은 우리의 교육 현실을 바로 보여준다. 우리 교육의 최대 지상 목표는 최상위권을 변별해내기 위한 평가로 좌지우지된다. 킬러 문항의 존재는 항상 돈이든 실력이든 최상위권 학생들만을 위해 존재하고, 대다수 학생은 소외된다. 그런 킬러 문항을 없앤 대통령은 무엇이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일부 사교육 업체와 담합한 출제 교사들의 비리였을까. 아니면 최상위권을 위해 평가에서 좌절해야 했던 수많은 학생의 현실이었을까.
둘째, 표지 배경이 고3 3월 전국연합학력평가 답안지다. 하지만 이 답안지에는 엄청난 오류가 있다! 한국사와 탐구 과목 답안지가 분리된 지 꽤 지났고, 심지어 탐구 선택과목 코드를 입력하는 란이 없다!! 내가 고3 담임을 오래 해서 이런 게 보이는가 보다. 어찌 되었든 우리 교육의 현실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그림이라는데는 동의한다. 고3 첫 학력평가가 곧 수능 점수라고들 말하니까. 이 점수를 시작으로 고3은 수험 레이스에 돌입한다. 담임교사는 학생이 수시를 지원해야 할지, 정시로 지원해야 할지를 상담하기 시작한다.
-14명, 소설가의 눈에 비친 우리 교육 현실-
쟁쟁한 소설가들이 뭉쳤다. 짤막한 소설 속에 우리 교육에 대한 묵직한 그들의 생각이 담긴다. 소설가들은 우리 교육을 어떻게 바라볼지 매우 궁금했다. 각양각색 그들의 소설만큼이나 작가들은 다른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그들이 모두 동의하는 것은 우리 교육 현실이 슬프고, 괴롭고, 기괴하다는 사실(7쪽)이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14가지 이야기들은 우리 교육 현실을 담담하게 바라본다. 냉철하게 원인을 분석하고 비판하며 해결책을 모색하려는 시도는 당연히 없다. 하지만 이 혼란스러운 현실을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작가들은 우리에게, 미래 세대에게 아주 막중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주할 수 있다는 것이 당대를 다루는 작가의 의무이자 특권이라고 생각한다. …… 바로 그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 쓸 때 그의 글에서 단순한 생상함 이상의 어떤 불꽃이 튀는 것 같다. 1920년대에 바이마르공화국과 조선 땅에서 나치와 일본 군국주의에 대해 쓰는 것과 2020년에 같은 장소에서 같은 주제에 대해 쓰는 일은 완전히 다르다. 비교할 수 없다.”(8쪽, 기획의 말)
작가들이 마주한 현실은 하나같이 지금 우리 아이들이 처한 현실이다. 자퇴하는 아이, 입시 경쟁에서 반칙을 거부하는 아이, 비교당하는 아이, 학교 폭력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아이 등등 수많은 학생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학생들 곁에는 가르치는 교사와 보살피는 학부모가 등장한다. 찬찬히 그들의 곁으로 다가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킬러 문항 킬러 킬러 킬러-
“사교육 시장을 이길 수 있는 정부는 없다고 했다.”(33쪽, 킬러 문항 킬러 킬러)
무한 경쟁을 부추기는 우리 교육은 자본주의와 능력주의, 신자유주의를 닮았다. 개인의 재산과 능력과 자유를 극대화하기 위해 우리는 공동체를 포기한다. 타인과의 연결, 협력, 공조를 버린다. 생존 경쟁을 통해 모든 자원을 독점하는 자가 승자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공정과 상식을 운운한다고 하는 것이 어쩌면 더 아이러니한 것은 아닐까.
정부가 칼을 빼 들었다. 사교육 시장과 출제 교사의 비리와 입시 카르텔을 뿌리 뽑고 공정한 입시를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과연 경쟁 체제에서 공정함이 존재할 수 있을까. (우리 사회에서 모두가 같은 조건에서 시험을 보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개인이 모든 것을 독점하는 것을 장려하는 사회에서 상식이 통할 수 있을까.(배불리 먹는 지배층과 굶어 죽어가는 피지배층이 공존하는 세상이 상식적인가) 특히 저 사교육 시장은 개인의 경쟁에 뿌리내리고 있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남들보다 더 많은 자원과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 천재적인 머리와 우연한 행운으로 성공할 수 있겠는가. 아니다. 그렇게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것이 공정하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결국, 사교육 시장은 경쟁 위주의 입시 교육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번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누구도 경쟁 위주의 입시 교육을 없애야 한다고 말하지 못한다. 그 병폐가 만천하에 드러나 썩은 내가 진동을 하는데도 그러지 못한다. 그 경쟁에서 살아남은 세력이 대한민국의 기득권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 서열화를 없애려면 서울대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서울대 출신 기득권은 무어라고 반응할까. 대한민국의 정상화를 위해, 우리 교육의 백년지대계를 위해 기득권 세력이 스스로 양보하고 특권을 포기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점이 가장 안타까웠다. 하지만 작가는 우리에게 희망을 잃지 말라고 이야기한다. 우리의 미래를 이끌어갈 학생들은 “킬러 문항 킬러 킬러 킬러”(38쪽)가 될 준비가 되어 있으니 말이다.
-“다시 하면 되죠.”-
고등학교엔 매우 진귀한 현상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이 수업 활동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것도 1학년 1학기 중간고사가 시작되기 직전까지만이다. 시험을 보면 볼수록, 성적이 쌓여갈수록 서서히 수업에서 떨어져 나가는 학생이 늘어난다. 이건 비단 성적이 낮은 하위권 학생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최상위권 학생들도 본인이 원하는 내신 성적이 나오지 않는다면, 미련 없이 학교를 떠나 버린다.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선택하는 최상위권 학생이 늘어나고 있다. 학교는 더이상 예전처럼 학창 시절의 추억을 쌓는 곳이 아니고, 평생 함께할 절친을 만나는 공간도 아니다. 경쟁을 위한 발판, 짓밟고 올라갈 희생자들만 가득한 공간이다. 학생들은 주변 친구들과 무언가 함께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심지어 교사와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나갈 생각은 더더욱 없다. 3학년 2학기가 되면, 학교는 사실상 멈춘다. 우리 교육이 대학 입시에 매몰되는 전형적인 모습이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특히나 고3 담임을 오래 했다. 학생들에게 점점 더 다가가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 그럴수록 나는 어떤 교사가 되어야 할지, 학생들과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는 것이 필요할지 고민이 많아진다. 그래도 아직은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존재라 받아들여지고 싶다. 그 ‘무엇’이 무엇인지 아직 명확히 찾아내지는 못했지만. 그런 순간 이 책에서 힌트를 하나 얻었다.
(아이가 묻는다.)“만약에 실패하면 어쩌죠?”
(미지의 존재‘무제’가 답한다) “…… 다시 하면 되죠.”(157~158쪽, 민수의 손을 잡아요)
일단 나는 학생들에게 ‘무제’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장 좋은 교사는 학생에게 그 어떤 강제를 하지 않는 교사다.” 마치 노장사상에서 이야기하는 가장 좋은 임금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임금이 있는지도 모를 정도로 태평성세를 누리는 백성. 교사가 권위를 지니지 않고 학생에게 그 어떤 위압감도 주지 않는 평온한 상태. 나는 그런 모습이 교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식의 독점과 우위를 통해서, 평가권을 바탕으로 학생을 위협하고, 강제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 생각한다. 교사와 학생은 서열이나 우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평등한 존재로 나아가야 한다. 학교를 구성하는, 교육을 운영하는 주체로서 동등해져야 한다.
또한, 학생이 실패를 인정하고 재도전하도록 격려하는 교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즉, 학생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실패에 대한 피드백을 더 열심히 해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처음부터 만점을 받고, 언제 어디서나 완벽한 평가를 받는 학생은 사실, 교사가 필요하지 않을 것이다. 충분히 스스로 할 수 있고, 교사는 방향만 제시해주면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잘하고 싶은 마음은 있는데, 잘하지 못하는 학생이다. 이런 학생에게는 정말로 교사가 필요하다. 교사에게 실패를 보여주고 도움을 요청하는 학생이 많을수록 그 교사는 제대로 된 교육자다. 실패의 두려움을 극복하고 성공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 그것이 교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교육이라고 나는 믿게 되었다.
여러 작가를 동시에 만날 수 있는 단편 소설집은 참 매력적이다. 그중에서도 나는 단연 최영, ‘대치골 허생전’이 인상적이었다. 우리가 잘 아는 허생전의 내용에 우리 교육 현실을 녹여 넣을 생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매우 놀라웠다. 허생전 자체가 당대의 문제와 부조리를 강하게 비판하는 소설이 아니던가! 그 형식을 그대로 가져오기만 해도 충분히 목적에 부합하는 소설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처음 깨닫게 되었다. 이런 것이 문학이나 독서 수업에서 수행평가로 활용된다면 어떨까. 이런 참신한 생각을 학생들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했다.
그리고 서윤빈 작가의 발견도 내게는 소득이다. 과학과 문학이 이토록 부드럽게 만나는 문장이라니. 생소하면서도 너무나 매력적이다. 앞으로 이 작가의 소설을 더 찾아 읽어보게 될 것 같은 간지러운 기분이 든다.
“여자들이 데이트를 할 때면 유독 파스타를 찾는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았다. 입맞춤의 맛은 그날 먹은 음식에 따라 물리적으로 결정되는 거였다.”(89쪽, 소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