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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에서 춤추다
낸시 크레스 지음, 정소연 옮김 / 폴라북스(현대문학) / 2015년 11월
평점 :
나만의 글쓰기 – (중단편선) 스페인 거지들 (낸시 크레스, 폴라북스, 2024, 초판 2쇄)
낸시 크레스는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로 이번 중단편선 중 대부분이 생명공학과 유전공학을 소재로 한다. “스페인 거지들”은 낸시 크레스의 중단편 소설 13편 중 첫 번째 작품이다. 대략 100여 페이지 정도의 짤막한 분량이라 금방 읽을 수 있다. 작가는 이 작품으로 스타작가의 반열에 올랐다고 한다. 게다가 왕성한 작품 활동으로 SF 분야에서 모두 수상했다고 하는데, 그의 작품이 그만큼 인정받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제목으로 사용된 “스페인 거지들”은 17~18세기 스페인의 성당 주변에서 구걸하던 거지 이야기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제목이 매우 독특해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그 당시 스페인 거지들은 매우 당당하게 구걸을 했고, 사람들도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그들을 도와주었다고 한다. 그 어떤 대가나 보상도 바라지 않고 순수한 선의로 거지를 도운 것이다. 작가는 이 이야기가 사회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생각했다. 지극히 개인주의가 발달한 서구 사회에서는 동양 공동체 문화권과는 달리 이런 생각 자체가 매우 신선한 설정이었을 것이다.
-SF 설정, 유전자 조작-
이 작품은 ‘유전자 조작’을 소재로 시작한다. 가까운 미래 유전자 조작이 가능해진다면, 당연히 부자들은 아기에게 우월한 유전자를 물려주려고 할 것이다. 긴 다리에, 작은 머리, 금발에 푸른 눈동자 등 외모와 우월한 성향을 결정하는 유전자를 쇼핑하듯 고른다는 설정은 사실 그다지 새롭지 않다. 하지만 작가는 여기에 충격적인 요소를 하나 더 추가한다.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아이를 원합니다.”(16쪽)
잠을 잔다는 행위를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나머지, 나는 이 설정에 충격을 받았다. 물론 고등학생 때 잠을 줄여가며 공부를 했던 시기에는 잠이 공부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했던 적은 있었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때의 경험 때문에 반드시 잠을 충분히 자야 한다고 생각했다. 잠을 줄여가며 공부하는 것을 절대로 학생들에게 권하지 않는다. 그런데 작가는 그 반대였다. 심지어 잠을 자지 않는 ‘불면인(소설 속에서 잠을 자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 이 소설을 썼다고 한다. 그래서일까. 이 소설 속 불면인들은 잠을 자는 사람에 비해 매우 건강하다. 수백 년을 살 수 있을 정도다. 게다가 그들은 이성적이고 논리적이며, 공부도 잘하고, 몰입도 잘한다. 마지막으로 가장 결정적인 장점은 그들이 매우 행복하다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도 괜찮을까 싶을 정도로, 이 소설 속 불면인은 우월하다. 아니 너무 탁월해서 잠을 자야만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보기에 두려울 정도다.
-계급과 혐오-
유전자 조작으로 태어난 아이들, 불면인은 수면인에 비해 월등하다. 게다가 그 월등함이 자연 선택에서도 우성 유전이 된다. 자연스럽게 불면인은 그 누구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사회 최고 계급에 진입한다. 너무도 당연한 결과다. 우월한 불면인들은 당연히 평범한 수면인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든 신경 쓰지 않을 정도로 그들은 우월하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수면인들에게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 된다.
“우리는(불면인) 그들을(천재적인 수면인) 질투하지 않아. 우리가 더 나으니까.”(65쪽)
그런데 이게 참 이상하다. 대체로 우리 사회에서 혐오의 대상은 너무 우월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열등해서였다. 그래서 열등한 자들은 무차별 폭력에 노출되고, 차별받으며, 격리당했다. 하지만 불면인들은 반대였다. 스스로 자신들을 격리했다. 그들은 보통 사람들에게 혐오의 대상이었지만, 우리 사회의 최상층 계급이었다. 비밀 연락망을 구축했고, 엄청난 부를 축적했으며, 문명 발전에 꼭 필요한 위대한 기술을 개발했다. 게다가 소수는 변호사, 회계사, 의사로 성장했다. 그래서 그들은 세상 사람들의 혐오에도 불구하고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우월해서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갈등은 전혀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아이러니였다.
-겐조 요가이와 스튜어트 서터-
주인공 리샤는 겐조 요가이의 강연을 듣고 바로 그의 추종자가 된다. 우월한 불면인은 매우 이성적이기 때문에 그의 주장에 쉽게 동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리샤는 아주 쉽게‘요가이스트’능력주의와 자유주의를 숭배하는 전형적인 미국인이 된다.
“인간의 숭고함, 인간으로서의 유일한 존엄성은 자신의 노력에 달려 있습니다. …… 인간에게서 성취할 기회와 자신의 성취를 타인과 거래할 기회를 빼앗는 일은 그에게서 인간으로서의 숭고한 존엄성을 빼앗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50~51쪽)
하지만 리샤는 위기에 빠지고, 그 위기를 헤쳐나가는 과정에서 수면인인 동생 앨리스와 스튜어트 서터의 도움을 받는다. 리샤가 오래전부터 열등하다고 생각했던 동생 앨리스, 그리고 자신과 같은 요가이스트라고 믿었던 수면인 스튜어트의 도움을 받으며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그것은 불면인과 수면인 사이의 갈등과 불신을 해결할 방법이었다.
“거래는 항상 선형으로 이루어지지 않아요. …… 그것은 순환이에요. 네, 거래의 순환이죠. 모두는 계약으로 묶이지 않아도 서로에게 필요한 존재예요.”(146쪽)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성취와 자유로운 계약은 선형이다. 우월한 자와 열등한 자를 나누고, 우월한 자가 열등한 자에게 그 성취를 나눠주는 대가를 받는 것이 모두에게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아무것도 다른 이에게 제공할 수 없는 ‘거지’는 이 선형적 관계 속에서 소외된다. 우월한 자들이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길 기대하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스페인 거지들”은 그렇지 않았다. 거지들도 당당한 사회의 구성원이고, 사람들은 그것을 인정했다. 그들의 구걸에 도움을 주는 것을 우월함과 열등함의 선형적 관계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모두가 공동체를 구성하는 일원이었고, 거지를 구하는 일이 곧 나를 돕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리샤는 스스로 요가이스트가 되었다가 주변인의 도움으로 벗어날 수 있었다. 불면인과 수면인은 이제 우월과 열등의 선형적 관계에서 벗어나 평등한 대상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