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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으니, 말해야 해요 - 베트남전쟁 아카이브 시집
한베평화재단 엮음 / 사회평론 / 2026년 9월
평점 :
#베트남전쟁 #한국군 #파병 #학살 #과거사 #진실 #화해 #아카이브 #창화 #시집
살았으니 말해야 해요(송 데 케 라이)_베트남전쟁 아카이브 시집(한베평화재단, 사회평론, 2026, 초판 1쇄, 198쪽)
솔직히 진실을 마주하기 두려웠다.
제주, 거창, 광주에서의 핏빛 역사는 그나마 죄책감이 덜했다. 나쁜 한국인 악당과 선량한 한국인 시민 사이의 대립 속에 나를 숨길 수 있어서다. 나는 그 시기에 태어나지도 않았고, 직접 폭력을 행사하지도 않았으며, 가해자와는 다른 한국인일 수 있다는 가능성에 위안을 삼기도 했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 학살 문제에서는 그럴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가해자 측에 서야만 했다. 참혹한 그들의 흔적을 보며, 그들의 절규를 마주해야했다. 잔혹한 한국인 군인의 행위를 보며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그들이 선량한 한국인이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말할 수 없었다. 빨리 가해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해야만 했다. 그것만이 이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진실은 너무 가혹했다.
"내 몸이 증거다."라고 외치던 위안부 할머니의 절규가 들리는 듯 했다. 가족을 잃고, 장애를 딛고 살아야 했지만, 그 누구도 위로할 수 없었던 가혹한 삶이 시와 함께 다가왔다. 생존자가 우리나라 법정에서 증언을 하기까지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을까. 그들의 삶을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 것인가. 시를 읽으면서 나의 무지와 무관심에 깊은 좌절을 느꼈다. 나는 베트남 전쟁을 피상적으로 소비하는 제3자에 불과했다. 게다가 나는 역사 선생이지 않은가. 지금껏 진심을 다해 가르쳤다고 생각했던 제주 4.3 사건, 거창 양민 학살 사건, 5.18 광주 민주화 운동마저도 그저 교과서의 개념어로만 다뤘다는 사실도 깨달을 수 있었다.
가혹하고 잔인한 폭력 속에 수많은 생명이 꺼져갔고, 그 기억을 품고 여태 살아온 생존자가 있었다는 사실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다.
폭력 행위에 가담했다는 죄책감을 토해낼 수조차 없었던 '솜털이 보송보송한 갓 스물의 청년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생각하지 못했다.
한국군을 증오하며 시를 남기거나, 적비(赤碑)를 세우거나, 사당에 향을 올리는 베트남 사람이 있을거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내가 이 가혹한 진실을 물리적으로 알 수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애써 외면하고자 했던 것이다. 죄책감이라는 진창에 빠져 영원히 헤어나올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베평화재단은 나와 다르게 진실을 마주했다. 그리고 그것을 기록, 기억하고자 했다. 이들이 만든 이 "아카이브"는 가치있는 기록을 체계적으로 수집하여 안전하게 보존하는 작업이다. 그들이 주목한 '가치'는 무엇인가.
"과거를 제대로 여미는 일이 때로는 내일을 제대로 여는 일에 다름 아닐거라는 생각."(100쪽, 송경동, 만약에 우리가, 우리가 아는 우리가 아니었다면)
하나, 가해자로서 과거의 죄책감을 넘어 평화를 위해 미래로 나아가는 것, 이 책은 우리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한 책이다.
"나 하난 줄 알았는데, 나 하나면 됐는데."(110쪽, 김현아, 겨울골짜기)
둘, 아픔을 공유하고, 함께 연대하여 그들을 위로하는 것, 이 책은 피해자를 위한 위한 책이다.
진실을 마주하자 앞으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우리들 아버지와 삼촌들이 야만과 광기의 청춘을 보냈던 이곳에 와서 어찌 관광과 유람으로만 소일할 수 있겠는가."(59쪽, 이재무, 베트남에서 돌아온 P 시인에게)
베트남으로 여행을 갈 기회가 주어진다면, 나는 편안한 호텔과 유흥 시설을 뒤로한 채 적비를 찾아갈 것이다. 한국군 증오비 앞에 서서 피해자들이 그린 가해자의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 보고 싶다. 나는 그 얼굴을 직접 마주한다면 어떤 생각에 잠기게 될까. 항일 독립운동 영화에 그려진 간악한 표정의 일본군을 떠올릴 것인가. 아니면 내 안에 숨겨진 악마를 발견하게 될 것인가.
최소한 베트남전쟁을 경제적 관점에서, 기출 문제의 유형 분석으로만 가르치던 내 모습에 대한 반성을 제대로 하고 올 수 있지 않을까. 베트남 양민을 학살한 군인들을 악마화했던 내 미숙한 발언을 진심으로 사과할 수 있지 않을까.
이제는 조선과 안남의 사행단이 연경에서 만나 서로 시를 주고받던 창화의 전통을 따라할 수 없지만, (나는 한자를 모른다. 그렇다고 베트남어를 아는 것도 아니다.) 내가 베트남어를 공부해서 그들과 소통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들과의 우애를 통해 과거를 반성하고 미래를 새롭게 열 수 있다면 좋겠다.
덧, 표지 한 가운데 붙어 있는 단란한 가족 사진. 그들은 한국군에 의해 희생되었다. 오른쪽 엄마의 손에 안겨있는 작은 아이는 이제 생후 1개월 된 아기였다. 그 아이는 학살 사건 직후 병원에 후송되었지만 곧 세상을 떠나아만 했다. 아마도 이 시집은 이런 의미를 담고자 했던 것 같다. 위 이야기를 전혀 알지 못했을 때는 그저 표지의 한 장식일 뿐이었던 이 사진이, 기억과 기록을 통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그 의미를 생생하게 전하고자 엮은이들은 '시'를 기록 방법으로 선택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이 선택한 방법은 매우 효과적이다. 다만 조금 아쉬운 점은 기록을 '체계적'으로 남기지 못했다는 사실. 사진이나 유물, 인물의 이야기가 조금은 자세히 나와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가슴으로 절절하게 느꼈지만, 아직 무언가 더 남아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