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합본 특별판)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민음사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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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그 무엇보다 중요한 나 자신, 그걸 지켜낼 수 있는 것 또한 나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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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간혹 구멍을 파요." 노인이 말했다. "내가 체스에 몰두하는 것과 원리적으로는 같은 거겠지. 의미도 없고, 어떤 결과가 있는 것도 아니야. 그러나 의미나 결과 따위는 아무 상관 없어. 아무도 의미 따위는 필요로 하지 않고, 또 어떤 결과를 바라지도 않거든. 우리는 모두 이곳에서 각자의 순수한 구멍을 파고 있어요. 목적이 없는 행위, 진보가 없는 노력, 목적지가 없는 보행, 멋지지 않은가.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아무도 상처 입지 않아. 아무도 앞지르려 하지 않고, 승리도 없고 패배도 없지." - P617

"불완전한 부분을 불완전한 존재에게 떠넘기고, 그리고 그 웃물만 홀짝거리면서 사는 거라고.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 너? 그게 진정한 세계냐고. 그게 존재의 진정한 모습이냐고, 잘 들어, 약하고 불완전한 쪽의 입장에서 봐. 짐승과 그림자와 숲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말이야." - P655

그러나 내가 내 인생을 다시 한번 시작한다 해도, 나는 역시 지금 같은 인생을 보내지 않았을까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 계속 잃어 가는 인생이 —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내게 나 자신이 되는 길 외에 다른 것은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를 버리고, 또 내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버리고, 갖가지 아름다운 감정과 뛰어난 자질과 꿈이 소멸되고 제한되었다 해도, 나는 나 자신이 아닌 무엇이 될 수 없다. - P666

그러나 나는 내 인생을 비틀린 채로 내버려 두고 소멸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걸 마지막까지 지켜볼 의무가 있다. 그러지 않으면 나는 나 자신에 대한 공정함을 잃게 된다. 나는 내 인생을 이대로 두고 갈 수는 없다. - P7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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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자네는 지금, 다른 세계로 이동하는 준비를 하고 있어. 그래서 자네가 지금 보고 있는 세계도 그 속도에 맞춰 조금씩 변화하는 게야. 인식이란 건 그런 것이야. 인식 하나로 세계는 변화하는 법이지. 세계는 틀림없이 여기에 이렇게 실재하고 있어. 그러나 현상적 레벨에서 보면, 세계는 무한한 가능성 중 하나에 불과해. 더 축소해서 말하면 자네가 발을 오른쪽으로 내미느냐 왼쪽으로 내미느냐에 따라 세계가 달라진다는 말이야. 기억이 변하는 것에 따라 세계가 변화하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지." - P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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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요." 그녀가 말했다. "이건 다 지나가는 거예요. 나쁜 일은 겹칠 수는 있어도, 언젠가는 끝나요. 영원히 계속되지 않아요." - P456

"하지만 그건 잘못된 생각이야." 그림자는 원 옆에 의미없는 도형을 그리면서 말했다. "우리가 옳고, 그들이 그른 거야. 우리가 자연스럽고, 그들이 부자연스러운 거야. 그렇게 믿어. 있는 힘을 다해서 믿어. 그러지 않으면 너는 너 자신도 모르게 이 마을에 동화되고, 그런 다음에는 어떻게도 할 수 없어." - P485

"나는 생각이 복잡할 때는 늘 새들을 봐." 그림자가 말했다. "새를 보면 내가 잘못되지 않았다는 걸 잘 알 수 있어. 마을의 완전함 따위는 새들에게 아무 상관 없는 일이야. 벽도, 문도, 뿔피리도, 아무 상관이 없지. 너도 그런 때는 새를 보는 게 좋을 거야." - P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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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지, 그렇지 않아. 친절함과 마음은 전혀 다른 것이야. 친절함이란 독립된 기능이야. 더 정확하게 말하면 표층적인 기능이지. 그건 그저 습관일 뿐, 마음과는 달라. 마음이란 것은 훨씬 더 깊고, 훨씬 더 강한 것이지. 그리고 훨씬 더 모순된 것이고." - P312

사다리를 내려가는 내내 나는 스카이라인에 탄 남녀와 듀란듀란의 음악을 생각했다. 그들은 전혀 모른다. 내가 주머니에 손전등과 대형 나이프를 넣고, 아픈 상처를 껴안은 채 어둠 속으로 내려가고 있다는 걸, 그들의 머릿속에는 속도계의 숫자와 섹스의 예감이나 기억과 히트 차트에 올랐다가 내려가는 무해한 팝송밖에 없다. 그러나 물론, 나는 그들을 비난할 수없다. 그들은 그저 아무것도 모를 뿐이다. - P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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