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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너라서 고마워 - 장애아 가족들의 슬픔과 기쁨 그리고 사랑
김혜원 지음 / 오마이북 / 2014년 2월
평점 :
“쯧쯧, 어쩌다 이렇게 되었소?” 지하철에서 가끔씩 들리는 소리이다. 대개 중년 여성이나 노인들이 장애 자녀와 함께 탄 엄마에게 물을 때가 많다. 그러나 느닷없이 질문을 받은 이의 표정은 좋지 않다. 측은한 표정의 동정 투 말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영 마뜩찮을 것이다. 부질없이 남의 일에 간섭하는 이러한 물음은 관심이기는 커녕, 지극히 개인적인‘호기심’일 뿐이다. 상대의 아픈 상처만 되살리는 무책임하고 생각 없는 행위이다. 관심이란, 상대방에게 도움을 주고자 하는 행위이지, 개인적인 궁금함을 충족시키려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는 장애아 가족들의 힘든 육아 과정에 대한 이야기들을 담았다. 오마이 뉴스 시민기자 출신의 김혜원씨가 <나같은 늙은이 찾아줘서 고마워>에 이어 두 번째로 펴냈다. 전작에 이어 그의 관심은 계속 우리 주변 이웃들에게 있었고, 그들의 아픔과 가족들의 고충을 조명했다. “앞으로 또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 사회가 낯선 시선을 거두고 사랑과 관심을 보여줄 때까지 그들에 대한 나의 관심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고 작가는 말한다. 그의 관심 방향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뇌성마비, 자폐, 뇌병변 등 누구나 한번쯤은 들어보았을 병명들. 이 책은 이러한 병을 가진 11명의 청소년들과 그 보호자에 대한 취재기이다. 그들의 일상은 대부분 어머니의 희생과 봉사로 이루어졌고, 나아가 가족들 모두의 노력이 들어가 있었다. 어머니는 자신의 24시간을 고스란히 바쳐야 하고, 그 때문에 다른 형제들은 어머니의 사랑을 포기해야 했다, 아버지 역시 아내의 내조를 잊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이웃들은 어떠한가? 한 어머니는 “엄마들도 말로는 사이좋게 놀라고 타이르지만 이내 하나둘 자기 아이를 데리고 가버립니다”고 서러움을 토해냈다. 아마도 교육 수준이 높은 인텔리 대중의 이중적 모습이리라. 사회적 약자의 어려움을 잘 알고 이해하는 척 말하지만, 자신과 직접 연관될 때 그 관계의 끈을 지속시키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그 속에서 모든 어려움은 고스란히 가족의 몫이었고 개인의 짐이었다.
‘통합교육’을 내세우는 현행 교육제도도 혹평의 대상이었다. 장애아가 일반 학생과 같이 교육받을 수 있게 한 특수학급이 오히려 서로를 분리시키고, 놀림과 차별의 원인을 제공했다는 비판이다. 물론 제도나 교사가 모든 것을 다 알아서 해주리라는 생각은 지나친 기대이다. 일반 법조인들이 고시에 출제되지 않는 노동법을 잘 모르듯이, 장애인 교육은 일반 교사들에게도 사각지대인 경우가 많다. 학교는 사회의 작은 축소판이다. 사회에서 제대로 보듬지 않는 아이들을 학교가 알아서 잘 해줄것이라는 기대는 처음부터 무리였다.
물론 장애아 양육을 위해선 일차적으로 가족들의 애정과 노력이 필요하다. 이웃들의 관심과 사랑도 있어야 한다. 저자처럼 휴일에 자녀와 함께 장애인 복지시설에 가서 자원봉사를 하는 모습도 아름답다. 그러한 활동은 단순한 여가활동이 아니다. 아렌트(H. Arendt)의 시각으로 보면 진정으로 공동체에 기여하는 인간의‘행위(action)'이다. 그렇지만 그것만으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가족이나 주변인들의 사적인 노력은 모두 개인적 차원의 활동이기 때문이다.
공적 부문은 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가족들, 그리고 사회의 많은 선량한 개인들에게만 그러한 역할을 떠 넘긴 체 우리 사회는 이들을 방관하고 있는 게 아닐까?‘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사회 전체의 노력이 필요한데 말이다. 보통 사람과 다르다는 것은, 보통 사람보다 더 많은 정신적, 물질적 지원을 필요로 한다. 장애인 문제가 개인적인 차원의 노력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되지 않음을 알 수 있게 한다.
모든 것을 가족에게 맡기는 나라. 철저히 공적 부조를 외면하는 나라. 그러면서 그 여력으로 경제발전을 추구해야 한다는 나라. 대체 누구를 위한 성장이며 발전인가? 이미 선진국에 들어섰다는 바로 오늘날 우리 한국의 민낯이다. 사회구성원에 대한 보호와 의무를 모두 개인에게 떠맡기는 사회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합계출산률 1.17명이라는 통계수치가 잘 말해준다.
<특별한 너라서 고마워>는 장애인 자녀와 부모의 얘기이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에서 그 대상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다. 소수 종교인, 성적 소수자, 소수 인종 등등 장애인 못지않은 소수자는 얼마든지 있다. 이 땅에서 이들은 모두 약자이며 타자이다. 그 존재와 정체성을 인정받지 못하기 십상이다. 한 엄마는 이렇게 털어 놓았다. “정작 힘들고 괴로운 건 위태롭고 느리게 커가는 아이가 아니에요. 비장애인들의 불편한 시선이죠. 편견도 동정도 싫어요. 그냥 있는 그대로의 한 사람으로 받아들여 주면 고맙겠어요.”이 엄마의 말처럼 나와 다른 존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회를 염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