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행복할 수 있을까 - 행복지수 1위 덴마크에서 새로운 길을 찾다 행복사회 시리즈
오연호 지음 / 오마이북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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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언론에 일제히 한국의 30-50클럽 가입이 보도되었다. 한국이 내년도에 세계 7번째 가입 국가가 될 것이라 한다. 30-50클럽은 국민소득이 3만 달러가 넘는 인구 5천만 명 이상의 국가군이다. “그런데 내년도 뉴스를 왜 뜬금없이 지금 내보내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국정홍보냄새가 물씬 풍기는 생뚱맞은 뉴스였다. ‘20-50클럽’이란 조어가 난무하던 게 불과 얼마 전이었다. 대체 언제나 ‘국민소득’ 타령 좀 그만할 런지. 국민소득을 4만 달러로 올린다는 ‘747 전국민사기극’이 아직도 생생하다. 소수의 사람들이 재화를 독점하는 양극화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이런 판에 소득수준이 3만 달러가 아니라 30만 달러가 된들 대중의 ‘행복’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소득수준이 늘어난다고 행복해 질 수 있을까? 그렇다면 왜 자살률은 세계 최고수준이고 출산율은 세계 최저수준일까? ‘살기 싫고, 자식 낳기 싫은 나라’ 이게 한국 사회의 민낯이다. 도저히 행복한 사회의 자화상이라고는 보기 힘들다.

 

그럼 행복한 나라, 걱정거리가 없는 나라는 어떤 나라일까? 오마이뉴스의 오연호씨가 <우리도 행복하 수 있을까>에서 덴마크 모델을 제시했다. 인구는 한국의 1/9, 면적은 1/5에 불과하지만 UN행복지수 1위 국가이다. 41위인 한국과는 도저히 비교가 되지 않는다. “요즘 걱정거리가 있다면 무엇입니까?”라는 오연호의 질문은 여러 덴마크 사람을 곤궁에 빠뜨렸다. 응답할 만한 걱정거리가 없어서였다. 그만큼 “행복하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나라가 바로 덴마크였다. 복지시스템이 잘 구비된 국가, 북유럽의 행복지수가 높은 것은 사실 잘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복지’가 사람들에게 미친 효과는 생각보다 컸다. 무엇보다 심리적인 ‘여유’를 주게 되었고, 그 여유 덕분에 우리와는 판이한 ‘삶의 가치관’이 확산되어 행복지수가 높아진 것으로 보였다.

 

물론 덴마크도 처음부터 이렇게 행복한 나라는 아니었다. 바이킹 시대에 번성했던 덴마크는 1801년 영국의 공격으로 끝없는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19세기 전반에 노르웨이를 스웨덴에 뺏겼고, 후반에는 독일에게 국토의 1/3을 다시 잃었다. 14세기 전후에 스칸디나비아 3국을 통합했을 때보다 영토가 1/19로 줄어들었다. 강대국에서 군소국가로 전락해 버렸다. 행복은커녕 울화병의 나라가 되어야 했다. 그 역경을 이기고 일어선 비결로 오연호는 두 명의 지도자를 소개했다. 그룬트비(1783-1872)와 달가스(1828-1894)였다.

 

그룬트비의 교육철학은 시민의식을 개혁시켜, 오늘날 행복사회의 정신적 기틀을 다진 것으로 평가된다. 그 결과 오늘날 덴마크의 교육제도는 한국과 달라도 너무 달랐다. 7학년까지 점수를 매기는 시험이 없고, 8학년부터 시험을 보지만 등수는 매기지 않는다. 당연히 성적우수상이 없으며, 성적우수자를 특별히 대하지도 않는다. 이들에게 한국의 왕따는 낯선 얘기였다. 초등 입학 뒤 9년간의 교육과정 이후 주어지는 1년간의 ‘에프터 스콜레(인생학교)’와 ‘시민 자유학교’는 독특한 교육제도이다. 이 과정은 단순한 지식습득보다는 인생 전반을 설계하고, 또 재설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은 이런 교육제도를 생각이나 해 보았던가? 한국인의 높은 물질적 가치관, 덴마크인의 드높은 공동체적 가치관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교육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학교에서 성적우수자에게 더 많은 혜택을 주는 것을 당연시하는 사회와 그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회는 결국 자살률과 행복지수로 판가름 났다.

 

“그룬트비가 교육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갈아엎었다면 달가스는 국토 개척으로 다시 한 번 사람들의 마음을 갈아엎었다(258쪽).” 스웨덴과 독일에 국토의 대부분을 뺏긴 상황에서 달가스는 ‘밖에서 잃은 것을 안에서 찾자’고 부르짖었다. 남아있는 땅의 대부분이 황무지였는데, 그는 2대에 걸쳐 이를 경작지로 개간했다. 덕분에 덴마크의 황무지가 60%나 줄어들었다. 달가스의 노력은 그룬트비의 교육으로 의식이 깨인 농민들이 있어 가능했다. 새마을 운동처럼 관주도의 운동이 아니었다. 농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황무지 개간은 아래로부터 시작되었고 계속 그렇게 진행되었다. 단순히 애국심에 호소하지 않고 개간한 땅을 농민들에게 나눠주는 실질적인 이득이 있었기에 ‘달가스 드림’으로 불리어졌다.

 

행복사회 덴마크의 오늘은 그룬트비의 정신혁신과 달가스의 국토개척이 있어 가능했다. 그리고 시민들의 깨인 의식이 한몫했다. 농민들의 도전이 농촌 혁신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혁신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농민의 당이 그것인데, 그 결과가 현재 덴마크 1당인 ‘벤스트레’이다. 이 당은 중도우파이지만 사회복지시스템 구축에 협력을 아끼지 않았다. 결국 깨어있는 시민이 그룬트비와 달가스의 토대 위에서 오늘의 행복사회를 완결시켰다. “결국 시민이 관건이다(306쪽)”는 저자의 말처럼, 복지사회의 키는 시민이 쥐고 있다. 각자 개인적인 차원에서 양적성장보다 질적향상을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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