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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 - 분단인의 거울일기
노순택 글.사진 / 오마이북 / 2013년 12월
평점 :
2010년 11월의 연평도 폭격사태가 벌어진 지 벌써 3년. 당시 많은 사상자를 낸 이 비극을 어처구니없이 희극으로 바꾼 이가 있었다. 개그맨도 아닌 정치인 안상수였다. 당시 그의 보온병 발언은 아직도 종종 언급되는 장안의 화젯거리이다. 현장에 버려진 낡고 녹슨 보온병을 포탄으로 착각했던 것은 그렇다 치자. 근데 동행한 같은 당 대변인이 ‘이것이 몇 밀리미터냐’고 묻고, 이것을 다시 또 옆에 있던 육군 중장 출신의 모 의원이 ‘76밀리 포탄’으로 확인해 주면서 한편의 희극이 만들어졌다. 이것은 그들의 말처럼 단순한 실수였을까?
사진작가 노순택은 이를 하나의 해프닝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지나간 한국전쟁이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어떻게 살아 숨쉬는 지를 다년간 탐색해 왔다. 그동안의 많은 개인전 중에서 분단의 향기(2004), 비상국가(2008), 거울정치(2009), 좋은 살인(2010), 망각기계(2012) 등을 통해 남과 북에서 작동하는 분단권력의 광기와 국가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그는 2005년에 펴낸 첫 사진집 <분단의 향기>에서 이미 앞으로의 작업 공간이 한국 현대사이며, 주제는 제도화된 폭력임을 명시했다.
분단상황을 이용한 남북한의 분단권력이 남과 북에서 작동하는 동시에 오작동하는 현실에 주목한 것이다. 남과 북은 모두 분단 상황을 빌미로 예외상태를 발동시켜 체계를 유지해 왔다. 오늘날까지도 남은 북을 북은 남을 괴물로 만들어 놓고 대항을 핑계로 종종 스스로 괴물이 되곤 한다. 그 와중에서 민주주의와 인권은 실종되어 버렸다. 분단권력이 빚어낸 진영논리에 빠지면 누구든지 호모 사케르가 될 수 밖에 없다. 양 진영은 모두 많은 호모 사케르를 양산해 왔다.
이 책은 ‘잃어버린 보온병을 찾아서’란 제목과 ‘분단인의 거울일기’라는 부제가 연상시키듯, 포격 현장을 ‘분단’이라는 프레임으로 조용히 보여준다. 연평도 사태가 일어난 2010년 11월부터 2012년 12월까지의 약 2년간을 기록하고 있다. 일기 형식의 글로써 사진에 좀 더 많은 비중이 실렸으며, 포격 직후 연평도의 참상이 250여 쪽 책의 곳곳에 배치되어 있다.
각각의 이미지들은 그날의 참상을 그 어떤 설명보다 단번에 보여준다. 포탄에 맞아 검게 그을린 집, 갖가지 가재도구들, 그리고 그 위로 저물어가는 석양이 만든 긴 그림자가 한결 충격감을 더해주었다. 민가의 깨어진 창문과 방바닥의 유리조각, 널브러진 이부자리는 그날의 다급함을 그대로 보여준다. 깨어진 유리창은 오고간 포탄과 함께 파탄지경에 이른 남북관계와 다를 바 없었다. 사람뿐만이 아니다. 개도 옆구리에 상처를 입은 채 돌아다니고 있었다. 깨어진 식당 수조 속에는 물고기들이 허연 배를 드러내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죽어있다. 그들의 눈에는 이 상황이 과연 어떻게 비쳤을까?
이 책은 분단상황이라는 큰 틀에서 연평도 포격사건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연평도라는 나무로 시작된 그의 사진 프레임은 분단권력이라는 큰 숲을 잘 조명했다. 한국 현대사에서 벌어진 제도화된 폭력에 장기간 천착한 그의 날카로운 렌즈는 폭격 현장의 물상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역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다만 세 줄 이내의 짧은 일기가 30여 쪽 이상인 것은 아쉬운 점이다. 기고를 염두에 두지 않았다고 에필로그에서 밝혔으나 출판을 결심했을 때 좀 더 보완할 수 없었을까? 그렇지만 사진작가라는 직업을 의심케 하는 유려한 문장은 내용적인 충실함과 읽는 재미를 같이 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