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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놀이
크리스토프 하인 지음, 박종대 옮김 / 작가정신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목적은 오직 지루함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지루함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는 것은 놀이뿐이다. 만일 돈이 부족하고 필요할 때는 돈을 버는 것이 목표가 되고 이 목표에 다가가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그러나 목표에 도달하는 순간 그 즐거움은 사라지고 오로지 지루함만이 남는다. 이때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하고 다시 그 목표에 다가가는 것에서 삶의 긴장과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끊임없이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에 힘을 쏟아야만 살아가는 의미, 살아간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다.
만일 그 목표를 상실했을 때 남는 지루함은 차라리 죽으면 죽었지 견디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의당 어떤 놀이에서처럼 두 번째의 목표는 첫 번째의 목표보다 달성하기에 더 어려워야만 한다. 달성하기 쉬운 목표는 놀이로서 자격이 없는 것이다. 또한 같은 목표를 반복하는 것도 목표가 없는 것과 같다. 이것에는 오로지 상투성과 타성만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표를 성취하고, 또 다른 목표를 설정할수록 그 목표는 달성하기 어려워야만 한다. 이것이 진정한 놀이꾼이 놀이를 즐기는 방법이다.
나폴레옹이 전 유럽을 점령하였을 때 거기에 안주하지 않고 모스크바를 향해 진군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바로 끊임없는 놀이만이 그의 삶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비록 패배를 할지라도 그것을 그만둘 수 없다. 왜냐하면 진정한 놀이꾼인 나폴레옹에겐 출정의 포기는 곧 죽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제 변호사놀이, 금융놀이, 정치놀이 등 할 수 있는 놀이를 다 하고 남은 놀이가 남지 않았을 때 주인공 뵈를레에게는 오직 죽음과도 같은 지루함만이 남았다. 이제 그에게 남은 것은 모스크바로 출정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므로 모스크바로 출정하는 것은 ‘불가피한 행위’인 것이다. 그가 살인이 아니라 ‘불가피한 살해’라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그에겐 죽음에 대항한 정당방위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은 매우 다면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정면에는 자신의 삶의 의미라고 주장하는 놀이로써 살인도 마다하지 않는 주인공의 독백이 있지만, 그 주변에는 현대 사회와 현재를 살아가는 현대인에 대한 조소가 깔려있다. 주인공은 자신의 놀이를 당구와 비유를 많이 하고 있는데, 현대인 대부분은 그 당구알처럼 놀이꾼이 큐로 치는 대로 굴러가고 회전하는 노예적 존재라고 하였다. 이것은 순간 순간 인생의 가치와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오직 시간의 노예가 되어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을 비꼬는 것이다. 그가 말하는 현대인에 대한 표현을 보면, ‘그러나 대중은 둔감합니다. 눈에 보이는 자잘한 이득만 취하고, 그것이 어떤 불가피한 결과에 이를지, 혹은 이를 수밖에 없는지 판단할 능력이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이는 사회에 매몰되어버리고, 진정한 자신의 개성을 찾지 못하는 현대인을 비꼬는 것이라고 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리고 대중은 안전을 위해서 자유를 버렸다고 말한다. 그래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야 하는 위험에서 벗어나려면 이 자유로운 시간을 죽여야만 한다.’고 말한다. 또 어렵게 얻은 자유에 대한 권리마저도 스스로 그 자유를 만끽하지 못하고 서둘러 레저 산업에 넘기고 만다. 그 결과 레저 산업의 명령에 종속된다는 것이다.
놀이꾼은 승패의 결과와 무관하게 오로지 그 순간의 긴장감과 짜릿함을 즐긴다. 이른바 ‘바로 지금 여기’에 자신의 존재를 몰입시키는 것이다. 놀이의 결과로 얻어질 수 있는 이득에는 관심이 없다. 이것이 진정한 놀이꾼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보통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할 때 그 행위를 즐기지 못하고 행위의 결과에만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일을 해서 돈을 버는 까닭은 나중에 그 돈을 가지고 풍족한 삶을 누리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은 곧 ‘당구알’적 존재이다. 우주선을 타고 우주로 날아가는 것에 대해서만 재미와 의미를 가져야지 지구로 돌아온 후에 스타성을 이용하여 CF로 돈을 벌려는 생각이 바로 당구알이라는 말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불가피한 살해’를 나폴레옹의 모스크바로 출정한 것에 비유하고 있다. 나폴레옹이 모스크바로 진군하여 40만의 병사들이 죽었는데, 이것에 대해 살인 행위라고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자신의 불가피한 살해 역시 살인 행위가 될 수 없다고 항변한다. 여기에서 저자의 역사를 꼬아보는 시각을 느낄 수 있다. 개인의 살인 행위와 위정자들이 일으킨 전쟁에서의 살인, 정치적 살인이 과연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인간 역사에 대한 통렬한 지적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처음 기대했던 데로 ‘사이코패스’에 관한 책이 아니었다. 이것은 현대 사회와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 대한 조소이다. 그리고 ‘지금 순간을 살아가는 것이 곧 삶이다’라는 교훈을 던져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