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 - 책에 살고 책에 죽은 책벌레들의 이야기
김삼웅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십 수년 전에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라는 영화가 있었다. 기억이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그 영화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배를 곯으면서도 참고 소리 공부를 하는 송화를 보고 그 동생이 '소리를 하면 쌀이 나와, 밥이 나와!'하고 불만스럽게 소리치자, 그 아비가 '꼭 쌀이 나오고 밥이 나와야 소리를 하냐. 제 소리에 제가 미쳐서 득음을 하면 부귀공명보다도 좋고, 천금만금보다 좋은 것이 이 소리 속판이여, 이놈아!'라고 대답한다.

 

아마 책을 읽는 것도 이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책을 읽는 것이 꼭 무엇을 위해서, 무엇이 얻어지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책이 좋아서 책을 읽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여러 책을 읽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글을 쓴 사람, 그 책에 나오는 사람들, 그 글과 얽힌 역사적 사람들 등.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시공을 초월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인생은 한정된 시간과 일정한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책이라는 창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고금의 시간을 통달하고, 동서남북의 공간을 초월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책을 읽는 본원적 즐거움이며 진정한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수많은 '책벌레'라고 일컬을 수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책과 책읽기에 대한 생각과 글쓰기에 관한 주장들이 실려있다. 그들을 엿보자면 태산처럼 우뚝하여 감히 곁에 서볼 수도 없을 것 같다.

 

'책을 대할 때는 하품을 하지 말고, 기지개를 켜지도 말고, 졸지도 말아야 하며, 만약 기침이 날 때는 머리를 돌려 책을 피해야 하며, ... 그리고 책을 베고 자서는 안 되며, 책으로 그릇을 덮지 말고, 권질을 어지럽게 두지도 말고,...'

 

이 글은 연암 박지원이 책을 대할 때의 자세에 관해 쓴 글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웃음이 나오면서도 괜히 마음이 꺼림직해지면서 부끄러웠다. 책 앞에서 하품, 기지개는 예사로 하고, 베고 자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컵라면 덮어놓기는 책만큼 좋은 것이 없잖은가. 컵라면을 먹으려다가 문득 이 부분이 생각이 나서 슬그머니 책을 내려놓고 접시를 가져와 덮었다. 이것도 이 책을 통해 한 가지 배운 것인가!

 

이 책의 한 장인 <책 읽는 사람의 얼굴은 다르다>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사람의 얼굴은 변한다. 사람들의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 그것은 책을 읽으면 말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보다 많은 책을 읽으면 보다 많은 말을 알게 되고 보다 깊은 인생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깊이 있는 생활에서 깊이 있는 얼굴이 나타난다.'

'남녀를 막론하고 아무리 잘생긴 얼굴이라도 꾸준히 책을 읽고 교양을 쌓지 않으면 천박하게 변해간다. 바꿔 말해서 지성미가 없는 미인은 진정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책을 읽고 특히 느낀 점이라면, 바로 '지성미'가 풍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 안의 수많은 인물들의 노력과 천재성은 따라할 수가 없겠지만,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책을 사랑하고, 책읽기를 즐겨한다면 그 만큼의 지성미가 얼굴에 풍기는 '작은 책벌레'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스트 고조선으로 - 고조선을 딛고서 - '한단고기' 우리 역사 되짚기 프로젝트
박병섭 지음 / 창과거울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참으로 애석한 것 중 하나가 우리는 반만 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졌다는 자부심에도 불구하고 상고와 고대에 관한 역사서가 너무 적다는 점이다. 특히 삼국 이전의 역사에 대해서는 대부분 <삼국지>나 <후한서> 등 중국의 역사서를 참고해서 짐작할 뿐이다. 또한 삼국에 대해 정사로 인정되는 <삼국사기>도 삼국이 끝난지 200여 년이나 지난 후에 쓰여진 것이고, <삼국유사>는 그보다도 더 후대에 쓰여진 것이기 때문에 정확한 기술을 했을 것인가에 대한 의심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때 등장한 <한단고기>는 가뭄에 단비와 같다고 할 것이다. 또한 그 동안 단군이 처음 우리나라를 개창했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보다 무려 5000년 전부터 한민족이 중심이 된 나라가 존재했다고 하는 놀라운 사실이 쓰여있었다. 이는 세계사적으로 가장 오래되었다는 수메르 문명보다도 수 천년이나 앞선 나라이다. 그리고 그 강역이 무려 남북 5만리, 동서 2만이라고 하니 입이 딱벌어질 일이다.

 

<포스트고조선으로>는 <한단고기>의 내용을 기본으로 하여 <산해경>, <후한서>, <삼국지>, <삼국사기>, <삼국유사> 등의 내용과 비교하여 한웅 시대를 조명하고, 자오지 한웅이 곧 치우천왕이며, 우리 한민족의 조상이라는 것을 증명하였고, 단군 시대, 즉 고조선 시대를 조명하면서 중국의 은나라가 망하고 주 무왕이 기자를 조선에 봉하였다는 '기자조선설'에 관한 사서의 내용이 조작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또한 단군의 역년이 <삼국유사>, <제왕운기> 등에서 각기 다른데, 그 이유를 밝히고 있으며, <삼국사기>에 따르면 광개토대왕이 13세손인데 <호태왕비문>에 의하면 17세손이라 하여 서로 다른데, 그 이유를 밝히고 있다.

 

우리가 우리 고대사를 공부하면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의문점들을 문헌적 근거를 가지고 해소시켜 주고 있다. 또한 세계사를 보면 기원전 7세기에 갑자기 나타났다가 갑자기 사라져버린 스키타인이 동아시아에 끼친 영향을 서술하는 내용에서는 매우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 다만 실제 문헌적 근거는 없기 때문에 당시 정황을 들어 설명할 수밖에 없고, 그로 인해 대부분이 추측으로 마무리한 것에 대해서는 미흡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현재 중국이 강행하고 있는 '동북공정'의 내용을 보면 고조선, 부여, 고구려, 발해를 중국의 역사에 포함하고 있다. 이것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역사는 신라, 백제, 고려, 조선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계가 힘이 좌우한다고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분명히 우리는 적어도 고조선 때부터 유구하게 그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포스트고조선'이란 고조선 이후의 역사를 분명하게 우리 역사로 기술하고 소유한다는 의미이며, 또한 고조선, 부여의 일파일 수밖에 없는 거란의 요, 선비의 북위, 여진의 금과 청도 '포스트고조선'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앞으로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며, 이것이 또 중국과의 역사 분쟁의 주제가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한단고기>는 매우 논란이 많은 책이다. 더구나 그 내용이 너무나 엄청나서 상식적으로는 믿을 수 없는 것들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위서 논쟁의 한복판에 놓여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내 자신이 어떤 확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이 책을 엮었다는 계연수라는 인물이 미상이고, 이 책의 원본을 분실한 후 암기해서 복원하고 발간했다는 이유립이라는 인물의 석연치 않은 과거 행적을 비춰보았을 때 이 책이 위서라는 측으로 내 맘이 기울어있는 것도 사실이다.

 

저자는 머리말에서 '역사란 사실 자체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라는 관점하에서 역사적 사실이 형성'된다고 말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사실(史實)을 무시하고 역사를 기술할 수는 없다. 사실(史實)을 무시하면 그것은  역사라는 학문에서 벗어난 '판타지 소설'일 뿐이다. 만약 판타지 소설을 가지고 자신의 역사를 기술한다면 전 세계인의 비웃음거리를 면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진위가 완전히 해명되지 않은 <한단고기>와 같은 책을 저본으로 해서 역사를 기술하는 것은 매우 성급하고 위험하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 저자도 '<한단고기>는 개인의 사상적인 경향에 편향하여 진실된 옛 사서라고 주장되기 이전에 앞으로 발견되고 해석될 유물과 유적, 비문 등과 그 내용이 부합되느냐가 따져져야 하고, 그것이 '진실'이라고 일일이 입증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저자는 또한 '따라서 <한단고기>는 위서이다, 아니다를 두고 감정적인 논쟁을 벌리기 이전에 바로 세워야 할 우리의 역사의 한 부분을 다룬 책으로서 먼저 세밀하게 검증, 연구되어야 할 저작이다'고 말하고 있다. 문제는 '감정적인 논쟁'이 아니라 '학문적이고 과학적인 검증'을 통하여 진위를 먼저 판가름해야 한다고 생각한는데, 저자는 그 이전에 우리 역사를 연구하는 자료로써 연구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무엇인가 앞뒤가 도치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잘못하면 하루 종일 땀을 뻘뻘 흘리며 벽에 낙서하는 노력을 면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한단고기>는 매우 정밀하게 쓰인 책이기 때문에 그  진위를 쉽게 판별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많은 관련 학자들이 열린 마음을 가지고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할 것이다. 단지 내 생각을 한가지 제시하자면, <한단고기>가 몇 사람의 저작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하는데, 사람은 각각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단고기>의 문체를 분석해서 한 사람이 저작한 것인가, 정말 여러 사람의 저작을 모아놓은 것인가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고고학적으로 갑골문과 은주대의 금문을 분석해서 당시 조선에 대해 기술한 내용을 밝혀 증명하는 방법도 있을 수 있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센코노믹스, 인간의 행복에 말을 거는 경제학 - 아마티아 센, 기아와 빈곤의 극복, 인간의 안전보장을 이야기하다
아마티아 센 지음, 원용찬 옮김 / 갈라파고스 / 2008년 6월
평점 :
품절


인도 출신 경제학자인 아마티아 센의 경제학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의 생존, 생활, 행복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우선 제도적으로 모든 사람이 참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가 보장되어야 하고, 자신의 처지를 이해하고, 정당한 요구를 주장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또한 우선적으로 '기초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한다.

센의 주장을 들어보면 오로지 통계와 숫자의 함정에 빠져서 어느샌가 사람은 사라져버리고 숫자만 남아있는 보통의 경제학과는 전혀 다르다는 느낌이다.

 

센의 이런 주장의 기저에는 자신이 어렸을 때 경험이 바탕이 되고 있다고 한다. 9세 때인 1943년에 벵골에 대기근이 일어나서 수 백만 명이 아사하게 되는데, 이때 굶주린 사람들을 목격하여 충격을 받았고, 이 기억이 그를 인간 위주의 경제학으로 이끌었다는 것이다.

기아에 대한 센의 관점은 이렇다. 어느 나라라도 자연 재해 등으로 인해 흉작이 발생하여 기근 문제를 일으킬 수는 있다. 그러나 대규모 아사자는 오로지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않는 나라에 한정된다. 즉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그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데, 그것은 그 문제에 신속하게 반응하는 정부가 존재하기도 하지만, 우선 기아의 희생자가 될 수 있는 극민층의 생활을 안정시키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센의 다섯 개의 강연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이 강연들은 주로 2000년 전후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때는 1997년 아시아 금융 위기 직후라서 이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우리나라도 그 안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관심이 더 갈 수밖에 없다. 이 문제에 대해 센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한국, 태국, 인도네시아를 포함한 국가들에 나타난 심각한 금융위기는 비즈니스에서 투명성의 결여, 특히 금융이나 상거래체계를 점검하는 공적 참여시스템이 부재했던 것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효과적이고도 민주적인 공공논의가 없었던 까닭에 이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기아 문제뿐만 아니라 다른 여타의 경제적 문제의 근원에는 민주주의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당시를 기억해보면 메스컴에서 '아시아적 가치'가 '서구적 가치'에 무너졌다는 표현을 많이 썼던 것 같다. 아시아적 가치는 특히 싱가포르의 '리콴유'에 의해서 많이 알려졌는데, 주로 '유교적 권위주의'를 내포하고 있으며, 2차 대전 이후 아시아의 급속한 경제 발전은 바로 '아시아적 가치'의 효과에 의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센은 강한 부정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아시아적 가치'라고 하는 것이 상당부분 민주주의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시아의 급속한 경제발전은 아시아적 가치때문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광범위하게 보급된 '기초교육' 덕택이라고 주장한다. 교육은 인간 개발을 이끌고, 많은 사람들이 경제 활동과 사회 변화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기술적으로는 숙련도를 향상시킨다. 바로 이런 이유로 아시아에서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아시아적 가치와 비슷한 말로 70년 대에 '한국적 민주주의'라는 말이 있었다. 한국만의 독특한 사회, 문화, 경제적 여건에 맞는 민주주의를 시행하자는 것인데, 그 실상은 '개발독재주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한국적 민주주의'만이 경제 성장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센의 말을 들어보면 그 주장이 얼마나 허구적이고 기만적인가를 알 수 있다.

 

지구상에서 인간의 성장 전망을 결정하는 가장 큰 문제는 바로 '인구문제'라고 할 것이다. 각종 자원 고갈, 공해, 식량문제, 전쟁 발생 등의 내면에는 인구 과잉 문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시행하는데, 이 문제에 대해 센은 '여성에 대한 교육'을 거론하고 있다. 여성이 교육을 기반으로 자기 개발하고 사회와 경제 생활에 참여하면 자연히 출산률이 낮아진다는 것이다.

 

마무리로 번역자의 말을 옮겨보면, "센이 강조한 인간의 안전보장은 가난한 나라, 민주주의가 발달하지 못한 국가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선 한국사회의 내부에도 인간의 생존과 일상생활, 그리고 존엄성을 위협하는 물질성장의 그림자가 깊숙히 드리워져 있다."

 

현 정부 들어와서 한국에서 목도되는 '무슨 짓을 해도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것이 얼마나 기만과 허구에 싸인 말인가를 알게 해준 책이었다. 그 주장에 의해 다시 살아나고 있는 '한국적 민주주의'의 괴물의 그림자가 보인다. 똑바로 눈 뜨고 볼 일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중톈 제국을 말하다 - 중국 제국 시스템의 형성에서 몰락까지, 거대 중국의 정치제도 비판
이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08년 5월
평점 :
절판


1911년 거대한 청나라는 힘없이 무너졌다. 왜 그토록 강대한 제국이었던 청나라가 외세에 속수무책 침탈을 당해야 했고, 내부적으로도 혼란에 시달려야 했는가?

이 책은 이 질문에서 대한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의 대답은 정치, 사회 제도의 차이에서 패했다고 말한다. 즉 중국의 제국 정치 제도의 패배라는 것이다.

 

진시황제가 전국을 통일하고 이 전의 봉건제를 혁파하고 군현제를 실시하면서 권력을 중앙집권화하였다. 그리고 법률, 문자, 도량형, 수레바퀴 폭 등을 일률적으로 통일하였다. 이것이 중국에서 제국의 시작이다. 이로부터 청나라가 무너지기까지 2천 여년 동안 이 제도가 시행되었다.

 

그렇다면 왜 제국은 결과적으로 그 허약성을 노출하고야 말았는가?

저자의 주장에 의하면 문제는 '민권'과 '민주주의'의 부재 때문이라고 하였다. 만인지상의 1인 황제의 의도와 명령에 따라 나라의 정책이 좌우되고, 그 아래 관료는 오직 황제의 입만을 바라보게 된다. 또 그 아래 관료는 그 상관의 표정만 눈치를 보게 된다. 다시 말하면 인민들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는 것이 아니라 황제를 위한 정치를 하게 된다. 윗사람에게만 인정을 받으면 되는 구조가 되기 때문에 인민들을 맘껏 수탈하고 인권을 짓밟아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부정부패가 싹트게 되고, 국가, 사회의 효율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죄의 원흉이 바로 제국의 제도 자체라는 점이다. 중앙집권을 위해 제국은 권력을 통해 자원과 재부를 약탈하고 점유할 수 있다는 기본 원칙을 규정했다. 또한 권력을 통해 약탈하고 점유할 수 있는 것은 단지 민중들의 재산권뿐만 아니라 그들의 인신권도 포함된다. 사실 제국은 이러한 약탈과 점유를 통해서만 통치를 시행했다.(p.267)"

저자의 이런 주장은 그야말로 폐부를 찌른다.

 

중국의 역사를 보면 내재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많은 노력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북송 왕안석의 변법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당시 황제인 신종의 전폭적인 지지와 왕안석의 도덕성과 추진력이 결합했음에도 결과적으로 변법은 실패했다. 또한 청나라 말기 양계초, 강유위 등도 실패했다. 왜냐하면 제국이라는 정치제도 자체를 개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모든 원죄는 황제와 제국에 있는데, 이것을 그대로 두고서 하는 노력은 공중누각일 따름이다.

 

최후로 저자의 주장은 '민주'와 '헌정'만이 근본 해결책이라고 하였다. '그러므로 중국의 실정에 맞는 공화, 민주, 헌정을 건설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의 일관된 주장을 보면, 결국 중국 역사에 대한 통렬한 자기 반성이며, 현재의 민주성에 대한 질책이며, 미래에 대해 방향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과연 우리나라는 이 반성과 질책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몽골 초원에서 보내는 편지 - 평생 잊지 못할 몽골의 초원과 하늘,그리고 사람 이야기
강제욱 외 지음 / 이른아침 / 2008년 6월
평점 :
절판


90년대 초반 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몽골은 우리에게 낯설은 나라였다. 지구 상 가장 큰 나라인 소련과 중국 사이에 낀 나라 정도 인식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한때 대제국을 거설했던 징기스칸의 나라였고 옛날 고려를 침략한 나라라고 알면 그나마 많이 안다고 할 수 있었다. 또한 학교 다닐 때는 몽골을 몽고(蒙古)라고 배웠다. 중국인들이 한자로 표기할 때 그렇게 한 모양인데, 글자 그대로 뜻풀이를 하면 대강 '미련하고 원시적'이라는 뜻일 것이다. 참 간악한 중국 사람들이다.

지금은 많은 몽골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근로자로 들어와 있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몽골에 사업과 관광 등으로 많이 진출해 있어서 더 이상 먼 나라가 아니다. 그러나 그 나라에 대해서 전보다 더 많이 아느냐고 질문한다면 대답할 말이 궁색해진다. 실상은 지금도 징기스칸 말고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이 책은 여전히 낯설은 몽골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단순히 하늘과 맞닿은 광막한 초원과 그 위를 달리는 무리진 양떼나 말떼만이 몽골 얼굴의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우리는 반 세기 전에 외세에 의해 남북으로 갈라져 지금도 고통을 겪고 있다. 몽골도 비슷한 처지에 있다고 하면 언뜻 납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청의 지배를 받다가 청이 망한 후 러시아와 중국에 의해 지금의 몽골과 중국의 자치구로 남아 있는 내몽골로 나뉘게 되었다는 것을 안다면 몽골 사람들이 더 친근하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이 책은 여섯 분이 몽골과 내몽골을 여행하면서 겪고 느낀 점들을 편지 형식으로 서술하면서 직접 찍은 다양한 진을 보여주어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쉽고 재밌게 몽골을 알도록 하고 있다. 그리고 작가의 관점에 따라 몽골의 얼굴을 여러 각도로 보여주고 있다. 한마디로 유익하고 재밌는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가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어서 국가 영위가 쉽지 않다면, 몽골도 역시 러시아와 중국으로 둘러싸여 있어 동병상련의 감을 느낄 수 있다. 아마 몽골인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21세기를 살아가면서 기술과 자본이 풍부한 우리나라와 자원과 영토가 풍부한 몽골이 서로 협력한다면 서로 간에 많은 이익을 얻을 것이 분명하다. 또한 앞으로 남한이 섬처럼 고립되어 있는 것에서 벗어나 북한을 통해 대륙으로 진출해야한다는 당위성에서도 몽골은 매우 중요한 파트너가 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아도 한국와 몽골 두 나라는 서로 더 많이 알고 친숙해져야 할 것이고, 이런 관점에서 이와 같은 류의 책들이 많이 읽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서문에 딱 와 닿는 말이 있다.

"몽골을 감상적으로 바라보거나 단편적인 실리만으로 접근하는 일은 위험하다. 이제 우리는 몽골과 새로운 관계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와 있다. 몽골이 가진 풍부한 자원과 넓은 국토는 우리에게 기회가 될 수 있고, 한국의 자본과 기술은 몽골에겐 미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다시 한 번 세계 국가 건설을 꿈꾸는 몽골과, 세계로 도약하려는 한국. 문화, 언어, 인종적 동질성이 의외로 쉽게 두 나라의 장벽을 무너뜨릴지 모르겠다."

 

얼마 전에 테레비에서 몽골에서 벌어지고 있는 한국인의 추태가 방영되었다. 한마디로 '매춘관광'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7, 80년 대에 일본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했던 바로 그 짓을 똑 같이 우리가 다른 나라에서 하고 있는 것이다. 이로 인해 몽골에서는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었던 민중의 감정이 반한 감정으로 바뀌고 있다고 한다. 참으로 우려스런 일이다. 그리고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해 화가 나면서 참으로 딱하다. 어리석은 사람들이다. 이런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다. 또한 양국에서 강력한 법적 조치를 강구하고 처벌을 가하여 더 이상 두 나라 사람들 간에 위화감이 확산되지 않도로 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가진 자원이 이것말고 또 무엇이 있다는 말인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