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벌레들의 동서고금 종횡무진 - 책에 살고 책에 죽은 책벌레들의 이야기
김삼웅 지음 / 시대의창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십 수년 전에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라는 영화가 있었다. 기억이 정확한 것은 아니지만 그 영화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배를 곯으면서도 참고 소리 공부를 하는 송화를 보고 그 동생이 '소리를 하면 쌀이 나와, 밥이 나와!'하고 불만스럽게 소리치자, 그 아비가 '꼭 쌀이 나오고 밥이 나와야 소리를 하냐. 제 소리에 제가 미쳐서 득음을 하면 부귀공명보다도 좋고, 천금만금보다 좋은 것이 이 소리 속판이여, 이놈아!'라고 대답한다.

 

아마 책을 읽는 것도 이와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책을 읽는 것이 꼭 무엇을 위해서, 무엇이 얻어지기 때문에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책이 좋아서 책을 읽는 것이다.

동서고금의 여러 책을 읽다 보면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 글을 쓴 사람, 그 책에 나오는 사람들, 그 글과 얽힌 역사적 사람들 등. 책을 읽는다는 것은 곧 시공을 초월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인생은 한정된 시간과 일정한 공간을 벗어날 수 없다. 그러나 책이라는 창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고금의 시간을 통달하고, 동서남북의 공간을 초월할 수 있게 된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책을 읽는 본원적 즐거움이며 진정한 깨달음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에는 수많은 '책벌레'라고 일컬을 수 있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책과 책읽기에 대한 생각과 글쓰기에 관한 주장들이 실려있다. 그들을 엿보자면 태산처럼 우뚝하여 감히 곁에 서볼 수도 없을 것 같다.

 

'책을 대할 때는 하품을 하지 말고, 기지개를 켜지도 말고, 졸지도 말아야 하며, 만약 기침이 날 때는 머리를 돌려 책을 피해야 하며, ... 그리고 책을 베고 자서는 안 되며, 책으로 그릇을 덮지 말고, 권질을 어지럽게 두지도 말고,...'

 

이 글은 연암 박지원이 책을 대할 때의 자세에 관해 쓴 글이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웃음이 나오면서도 괜히 마음이 꺼림직해지면서 부끄러웠다. 책 앞에서 하품, 기지개는 예사로 하고, 베고 자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컵라면 덮어놓기는 책만큼 좋은 것이 없잖은가. 컵라면을 먹으려다가 문득 이 부분이 생각이 나서 슬그머니 책을 내려놓고 접시를 가져와 덮었다. 이것도 이 책을 통해 한 가지 배운 것인가!

 

이 책의 한 장인 <책 읽는 사람의 얼굴은 다르다>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사람의 얼굴은 변한다. 사람들의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의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 그것은 책을 읽으면 말을 알게 된다는 뜻이다. 보다 많은 책을 읽으면 보다 많은 말을 알게 되고 보다 깊은 인생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깊이 있는 생활에서 깊이 있는 얼굴이 나타난다.'

'남녀를 막론하고 아무리 잘생긴 얼굴이라도 꾸준히 책을 읽고 교양을 쌓지 않으면 천박하게 변해간다. 바꿔 말해서 지성미가 없는 미인은 진정 잘생긴 얼굴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책을 읽고 특히 느낀 점이라면, 바로 '지성미'가 풍기는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책 안의 수많은 인물들의 노력과 천재성은 따라할 수가 없겠지만,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 책을 사랑하고, 책읽기를 즐겨한다면 그 만큼의 지성미가 얼굴에 풍기는 '작은 책벌레'가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