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만날 수 없는 만큼 준후는 다현을 더욱 품에 안았다. 학교에서 의식적으로 시선을 피하는 만큼 다현을 더 눈에 담기 위해 시선을 마주했다. 다현도 준후의 몸을 놓치지 않으려는 듯 그의 등에 손톱을 박았다. 준후는 온 힘을 다해 다현을 가졌다.
그의 품속에 다현을 가둘 때면 준후는 더욱 공허해졌다. 갈증이심한 병이라도 앓고 있는 것 같았다. 참고 다스렸던 시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둘은 거칠고 자유로웠다. - P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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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짓 하자.
다현이다. 글자 속에서 다현의 통통 튀는 목소리가 들리는 것같았다. 살짝 아랫입술을 깨무는 준후의 입안에서 침이 고였다.
뭐라고 답을 하면 좋을까. 준후는 다현만큼이나 위트 있는 문자를 보내고 싶었다. - P15

더이상 다현의 웃음을 볼 수도, 사과 향이 나는 머리칼을 만질 수도, 따스한 살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는 사실에 폭발할 것 같은 분노가 일었다. 누가 그런 잔인한 일을 벌였는지, 반드시 그 얼굴을 보고 싶다. 다현의 시신을 처리한 자신 역시 위험해질 수도 있지만 범인을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어차피 자신의 알리바이는 완벽하다. 형사가 알아낼 수 없다.  - P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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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는 유부남의 몸으로 미성년 학생과 관계를 했다. 준후는 믿을 수 없는 눈길로 다현의 시신을 보았다.
사실이 알려지면 파멸이다.
안 될 일이었다. - P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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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거짓말을 수도 없이 되풀이하다 보면 나중에는 어떤 것이 진실인지 모를 때가 있다. 진모가 그랬다. 자신의 말에 자신이속아서 목이 메고 있는 진모.
"이번엔 멜로드라마 작전이구나."
"뭐? 멜로드라마?"
"그래. 신파조 작전이야. 그렇게 해서 윤희라는 애를 확실히 잡아두려는 모양인데 조심해. 가만 보니 그 애 신파를 되게 즐기더라. 너무 재다가 진짜 네 말대로 요조숙녀 되는 수도 있어. 그러면다행이긴 하지만 내 동생이 좀 안됐잖아? 온갖 폼 다 잡았는데."
- P247

남김없이 다 솔직해버리면 사랑이 누추해지니까. 사랑은 솔직함을 원하지 않으니까. - P250

몇 달에 한 번, 혹은 몇 년에 한 번 집에 돌아오던 아버지는 저런 모습이 아니었다.
슬픈 일몰의 시간에 어둠을 등에 지고 들어오던 아버지의 쓸쓸한귀가는 그 풍경 속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매혹이 있었다. 저녁바람에 날리던 검은 머리칼, 깊숙한 곳에서 형형하게 빛나고 있는검은 눈동자, 구겨진 바지 주름 사이에 숨어있다 아버지가 움직일때마다 아슴아슴 풍겨져 나오던 저 먼 곳의 냄새⋯⋯ - P261

인생은 짧다.
그러나 삶속의 온갖 괴로움이 인생을 길게 만든다. - P272

그러나 나는 그런 김장우의 얼굴에서 문득 아버지의 얼굴을 읽었다. 너무 특별한 사랑은 위험한 법이었다. 너무 특별한 사랑을 감당할 수 없어서 그만 다른 길로 달아나버린 내 아버지처럼. 김장우에게도 알지 못하는 생의 다른 길이 운명적으로 예비되어 있을지 몰랐다. 지금은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알아도 어떻게 할 수없겠지만, 사랑조차도 넘쳐버리면 차라리 모자란 것보다 못한 일인 것을. - P277

죽는 일보다 사는 일이 훨씬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절실히 깨달았거든. 나는 용기가 없어서, 너무나 바보 같아서, 여러 사람이 크게 다치는 대형사고를 만나면 절대 생존자 명단에는오르지 못할 위인이라는 것 잘 알아. 그러니 이 죽음도 뜻밖에 만난 하나의 사고라 여기자 - P284

진진아
너무 빠르게도, 너무 늦게도 내게 오지 마.
내 마지막 모습이 흉하거든 네가 수정해줘. - P285

이모는 그렇게 떠나갔다. 이모가 이 세상과 하직하는 사흘 동안하늘은 내내 음울했고 겨울 끝의 찬바람은 한없이 모질었다. 내머릿속은 모래를 가득 채운 것처럼 부석부석했고, 먹먹한 가슴 한켠으로 쉼 없이 이모의 편지 구절들이 흘러내렸다.
진진아, 나, 이제 끝내려고 해. 그동안 너무 힘들었거든..나도그렇게 사는 것처럼 살고 싶었어 ・・・ 무덤 속처럼 평온하게 말고. - P288

 이모는 자신의 죽음으로 자식들의 삶이 완벽하게 지리멸렬해지는 것을 막아냈다. 주리와 주혁은 평생 자기 어머니의 죽음을 반추하며 살아갈 것이었다.
진모는 아직도 갇혀있다. 사방이 벽인 감방에서, 그리고 자신의짧은 생애 동안 공고하게 구축해놓은 우상의 세계에서 - P292

아버지는 이미 오래전에 자신의 인생을 벗어던지고 덤으로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진짜 인생은 자기 혼자 다 즐기고, 덤으로 얹혀질 인생의 시기에 비로소 가족에게 돌아온 아버지는 천진난만그 자체였다. 생의 이면을 보아버린 자의 그 많은 갈등과 괴로움도 단숨에 압축해버리니 별것도 아니었다. 남은 것은 음식에의 탐욕, 그것뿐이었다. - P293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주었다. 이모의 가르침대로 하자면 나는 김장우의 손을 잡아야 옳은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이모의 죽음이 나로 하여금 김장우의 손을 놓아버리게 만들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였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겐 한없는 불행이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면, 남은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 뿐이었다. - P296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귀를 가졌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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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체의 균형감각을 잃기 전에 언제나 먼저 정신의 균형감각부터 무너지는사람이 아버지였다. 그것이 내 아버지의 불행이었다. - P184

나의 불행에 위로가 되는 것은 타인의 불행뿐이다. 그것이 인간이다. 억울하다는 생각만 줄일 수 있다면 불행의 극복은 의외로 쉽다.  - P188

사랑이 아름답다고 하는 말은 다 거짓이었다. 사랑은 바다만큼도 아름답지 않았다. 그럼에도 사랑은 사랑이었다. 아름답지 않아.
도 내 속에 들어앉은 이 허허한 느낌은 분명 사랑이었다. 지금 내옆에서 굳은 표정으로 굴곡 심한 도로를 운전하고 있는 이 남자는처음으로 내게 다가온 사랑이었다. 마음속으로 열두 번도 더 안진진, 괜찮아?‘라고 묻고 있을 이 남자를 통해 나는 앞으로 사랑을배울 것이었다. 때로 추하고 때로는 서글프며 또한 가끔씩은 아름답기도 할 사랑을…… - P199

"그래요. 어제 처음으로 확실히 알았거든요. 내가 지금 사랑에빠졌다는 것을. 그래서 감당하기가 어려웠어요. 사랑은, 힘이 들
"어요"
그에게 거듭거듭 다짐했던 대로 내가 그에게 한 말은 모두 진심이었다. 술이 깬 다음날 아침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잘못을 용서받기 위해 하는 말들이 모두 다 진실이었듯이.
나는 그날 아침 마침내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아주많이 사랑했다는 것을. 어머니를 사랑했으므로 나와 진모에 대한아버지의 사랑 또한 절대적이었을 것임을. 우리 모두를 한없이 사랑했으므로, 그러므로 내 아버지는 세 겹의 쇠창살문에 갇힌 것이었다. 아버지가 탈출을 꿈꾸며 길고 긴 투쟁을 벌인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 P206

사랑이란 그러므로 붉은 신호등이다. 켜지기만 하면 무조건 멈춰야 하는, 위험을 예고하면서 동시에 안전도 예고하는 붉은 신호등이 바로 사랑이다. - P210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다는점에서 우리는 그린 듯이 닮아있는 연인들이었다. 김장우는 내 속에 들어있는 자기를, 나는 김장우 속에 들어있는 또 하나의 나를들여다보며 서로의 사랑을 키워 나갔다. - P216

한번 더 강조하는 말이지만 이모부는 심심한 사람일지는 몰라도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었다. 돌출을 못 견뎌하고 파격을 혐오한다고 해서 비난받아야 한다는 근거가 어디 있는가. 어쩌면 나는이모의 넘쳐나는 낭만에의 동경을 은근히 비난하는 쪽을 더 쉽게선택하는 부류의 인간일지도 모르겠다. 이모부 같은 사람을 비난하는 것보다는 이모의 낭만성을 나무라는 것이 내게는 훨씬 쉽다.
그러나 내 어머니보다 이모를 더 사랑하는 이유도 바로 그 낭만성에 있음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사랑을 시작했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워하게 된다는, 인간이란 존재의 한없는 모순....... - P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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