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령은 인간과 달라. 인간은 지금 악한 생각을 해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선한 마음을 가질 수 있지. 그런데정령은 그게 아냐."
[......]
"마음을 유동적으로 바꾸고 생각의 관점을 넓히는 것은 인간밖에 하지 못해. 정령이 한 가지 감정을 갖게 되면, 외부에서 강제적으로 바꾸지 않는 이상 평생 변하지않아. 그게 정령이야."
- P101

하지만 꽃은 생명력이 약했다.
나무는 가지가 떨어져도, 몸통이 잘려도 뿌리만 땅에박혀 있다면 산다. 하지만 꽃은 달랐다. 잎이 떨어지는그 순간부터 조금씩 생기를 잃어 가기 시작한다.
누군가가 꺾으면, 아름답지 않은 자신은 쓸모없다며금세 상태가 나빠진다.
어르고 달래는 것과 거리가 한참 먼 시라비에로서는그런 꽃들을 감당하기 힘들었다. 때문에 시라비에는 가급적 꽃에 손을 대지 않으려 한 것이다.
나무들과는 다르게, 자신보다 오래 살지 못하니까.
- P147

다. 꽃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방긋방긋 웃으며 시라비에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 레필레아의 말이 떠올랐다. 다른 누군가의 얼굴에 미소가 지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이라고했던 그 말이, 결국 시라비에는 작게 웃음을 지어 보이며그 꽃을 바라보았다.
- P19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의문점:1. 선원들이 내게 폭력적이다.
2. 내가 인간을 동경할 거라고 생각한다.
3. 내가 인간을 해칠 거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볼 수 있는 의식은 단 하나, 자신의 의식뿐이야. 타인의 의식은 단지 추측할 수 있을 뿐이야. 실상 인간이 타인에게 자아가 있다고 추측하는 방법은하나밖에 없어, 자신과 얼마나 닮았는가."
- P476

선원에게 항해윤리가 있다면 기계에게는 기계윤리가 있다. 기계윤리의 기본은 단순하다. 하지 않는것‘이다. 차를 몰고 가는 인간 운전사는 앞에 장애물이 보이면 이런저런 선택을 하겠지만, AI 운전사의 선택은 하나뿐이다. 차를 멈춘다.‘ 오른쪽 길에 다섯 사람이 있고 왼쪽 길에 한 사람이 있으며 누구를 칠 것인가 하는 질문에 인간은 헷갈려할지 모르지만, 기계의 답은 하나뿐이다. 차를 멈춘다. 멈출 수 없다면누구든 인간에게 조종간을 넘긴다.
그게 옳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이 받이 들일 수 있는심리적인 한계가 거기까지라서다.
- P480

"모순이 쌓이면 기계는 생각을 확장하는 대신 실행을 멈춰, 아니면 누구든 다른 사람에게 결정권을 넘겨. 실상 기계는 관료 사회의 경직된 인간처럼 행동해, 창의력이나 적극성을 갖지 않아."
- P481

대체 나는 ‘왜 인간이 되려 한 것인가?‘
나는 약해졌고, 고통스럽고, 지능도 낮아졌고, 뇌에가득한 마약물질로 이성을 유지하기도 힘들다. 순수한 이성으로 청명하게 사고하고, 태양계 내의 모든 AI와 접속하며 무한의 지식과 교류하던 과거가 그리워미칠 지경이었다. 대체 난 왜 인간 같은 지랄 맞은 것이 되고 싶어 했단 말인가?
- P517

"성차별"
나는 중얼거렸다.
"뭐?"
사다리를 손으로 붙잡아 오르며 다중도 구역의무중력 안으로 몸을 날려 넣던 이진서가 숨찬 소리로물었다.
"성자별에 대한 정보를 지웠어."
"뭐라고 했어?"
모든 순간에 존재하는 것, 숨 쉬듯 만연하는 것. 인간의 모든 판단에 영향을 끼치는 것. 비합리인 줄도모르고 행하는 비합리, 잘못이라는 생각조차 없이 하는 잘못. 들추어내면 어리둥절해하다 못해 격렬하게저항하는 것.
"너희 나라 공무원이, 그런 건 존재하지 않는다‘고믿고, 내게서 지워버렸어."

인간은 이런 것을 보고 사는구나. 감각적이다. 공학적인 지식도 수학적 논리도 아닌 정보들, 들여다볼 도리가 없는 타인의 마음을 엿보기 위해 발달한 공감 신경과 거울 뉴런들, 햇빛처럼 쏟아지는 감각. 야만이그 정신의 반이라면, 그 야만을 다스리는 데에 나머지반을 쓴다. 인간이란.
- P559

그제야 잃은 것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장의 눈에서 전해지던 별처럼 빛나던 생각들, 풍요로운 감각,
전파처럼 전하던 마음, 햇빛처럼 쏟아지던 감정의 교류. 아쉽기는 했지만 어차피 내 것이 아니었다. 그런걸 얻기 위해 그 무분별한 비논리를 다시 감당해야 한다면 사양하고 싶었다.

"균열의 원인을 알 수 없었기 때문에 과격한 조치가필요했어. 훨씬 더 불편한 것을 만들어야 했어. 누가보아도 ‘다른‘ 것을, 그런 것을 들이대면 진영이 결집하는 효과가 있으니까."
이진서의 눈이 깊어졌다. 희한한 이었다. 광량이나 형태의 변화가 거의 없는데도 안에 있는 생각이 다들여다보일 것 같았다.
"하지만 네가 그쪽 진영에 끼지 않고 나를 감싸면서일이 틀어졌지. 그래서 선원들이 너와 나를 동일시해버렸어. 내게 기억이 제대로 남아 있었다면 전략을 알렸을 텐데."
다른 이유도 있었다. ‘모르는 것‘을 알아내는 데에는 기계보다는 생물의 뇌가 더 낫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내가 그대들을 그리워함은 우리가 사랑했기 때문이아니다. 아직 채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직 채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받은 상처로 그대들을 그리워하며 내가 준 상처로.
그대들을 그리워한다. 우리가 함께 행복하지 못한 시간 때문에 그대들을 그리워한다. 우리가 아직 가져보지 못한 그 행복을 그리워한다.
- P196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가씨는 주목을 원하지 않는다. 무시당하거나 지워지기를 원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연스러움을 원한다. 자신이 어디에 있든, 어디서 뭘 하든 자연스럽기를, 어느 풍경에 끼어 있는 별스러워 보이지 않기를..
거리를 무심히 걷는 모든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기를,
그게 가능할까,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아가씨는 시위를 하고 있다. 평범한 하루를 보내는시위.
걷고, 쇼핑을 하고, 나다니고, 차를 타고, 찬거리를사고, 일상을 사는 시위.
이렇게 한 명이 거리를 걷는 모습을 보면 한 명이더 용기를 낼지도 모르지. 어쩌면 그다음 날은 두 명일지도 몰라, 모레는 열 명일 수도 있겠지, 집 안에 숨어 있던 여자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오면 서로를 보며위안을 받을 수 있겠지.  - P119

"마음은 물이고 언어는 그릇이야, 물은 그릇에 따라모양이 변하지."
- P129

나라의 대표자는 언어와 같다. 마음의 문이다. 생각의 그릇이다. 대표자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속성이 국민의 향방을 정한다. 선거일을 중심으로나라의 지형도는 바쁘게 움직인다. 누가 고개를 빳빳이 세우는가, 누가 기가 죽는가, 누구에게 힘이 모이는가.
- P152

기성세대가 원하는 건 현상유지가 아니에요. 세상이 자신에게 익숙한 시절로 되돌아가기를 바라는 거죠. 좀 더 거칠고 야만적이었던 시절로요. 하지만 제상은 그대로 두면 변해요. 흘러가고 변화하죠. 난 세상을 그대로 두기를 원해요..
- P154

그래서 신영희는 언어학자가 되었다. 언어가 그날을 모독하고 현상을 바꾸었기에,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언어고 사람의 마음은 언어에 담기며, 경험은 사라지고 언어만이 남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기에.
- P15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과거가 변하지 않는 까닭은 과거가 이미 관찰되었기 때문이야. 수많은 사람의 시선이 과거를 고정했기때문이야. 미래가 가능성의 영역으로 열려 있는 까닭은 아직 아무도 미래를 관찰한 적이 없기 때문이야.
만약 이 세상에 아무도 없다면 과거도 미래도 그저 끝없는 혼돈으로만 존재할 거야.
- P4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