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과 더욱 밀착된 취재원을 먼저 찾아내는 일에도 경쟁이 불는다. 예시로 들기조차 조심스러운 뼈아픈 ‘보도 참사‘ 사례지만,
4.16 세월호 참사 당시에 나를 포함한 기자들은 꽤 주저하면서도결국 마이크와 카메라를 들고 유족 앞으로 모여들었다.  - P15

당시 CNN은 유족들의 표정을 보여주는 것을 최소화하며, 시신이옮겨질 때 경찰들이 고개를 숙이며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것을보여주는 식으로 방송화면을 편집했다. 적어도 이 태도는 덜 착취적으로 보였고, 한국의 쓰레기 언론들과 달리 윤리적인 보도를 했다는 여론의 평가를 받았다. - P16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영상을 유포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하고,
일부 방송사가 이 현장 영상들을 뉴스에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유는 단지 영상에 찍힌 모습의 참혹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이미지가 끔찍해 보인다는 것이 늘 그 장면을 볼 수 없는, 보면 안 되는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영상에 대한 광범위한 비판에는 피해자들의 초상권과 더불어 촬영자들의 태도가 큰 영향을 줬다고 본다.
구조 인력이 절실했던 상황에서 충분히 도울 수 있는 거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촬영자들이 구조 대신 촬영을 선택했다는 사실이 보는 이들을 괴롭혔다. - P25

소방청 119 대응국장은 참사 열흘 뒤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브리핑에서 "현장에서 많은 사람이 사망자들의 사진을 촬영하는 등 현장 지휘와 질서 유지에 방해가 있었다"고 말했다. - P25

‘아무것도 하지 않는 카메라‘에 관한 오랜 공포가 있다. 찍고 있지만 상황을 냉담하게 기록할 뿐, 상황을 개선하지 않는 카메라.
이 공포는 카메라를 꺼내들어 남의 절박한 고통을 보고 듣고 기록하고 생중계하는 순간부터 시작돼 편집하고 재구성한 뒤 널리 퍼뜨린 이후까지 이어진다. 공포의 근원은 이걸 찍어서 보여준 뒤에도 내가 이걸 본 뒤에도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못할 수도있다는 데 있다. - P28

한 가지 확실한 건 고통의 중개인이 미디어든 개인이든, 남의고통을 궁금해하고 알아내는 일은 도움을 주고 해결해 주기 위해서라는 이유가 아니라면 정당화하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타인의고통을 소비했다는 죄의식은 대개 목격하고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겨난다. - P32

데이팅 애플리케이션처럼 뉴스를 휙휙 넘기며 눈길을 끄는 뉴스에만 반응하는 것 역시 인터넷이 새로 발명한 문제는 아니다.
우리가 남의 고통을 전시하고 구경하고 있지는 않은가, 고통을 포르노처럼 소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오래된 윤리적 고민에 대한답은 어느 정도는 오래전부터 ‘그렇다‘는 것 하나뿐 아니었나 디지털 환경이 ‘정말‘ 바꿔놓은 게 무엇인지를 가려내려면 조금 더들어가야 한다. - P47

이러한 환경에서 사람들의 눈에 들고자 노력하는 뉴스 콘텐츠역시, 저널리즘이 그다지도 피하고 싶어 했던 극단적 주관의 세계안에서만 소비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많은 기자들이 이토록 양극화된 세계에서 저널리즘이 어떻게 기능해야 할지, 양극단에서 횡행하는 가짜뉴스를 어떻게 배격할지 오늘도 고민하고 토론하고 있다. - P54

그러나 거기서 조금만 더 안쪽으로 들어가보면 무엇이 있다.
대중은 벌을 주고 싶어 한다. 얼굴을 보고, 이름을 알고, 망신을 주고, 그에게 사회적 죽음을 선고하고 싶어 한다. 얼굴과 이름을 광장에 매달아 놓는 방식으로라도 사법 테두리 밖에서 한 번 더 징벌하고 싶어 한다. 그러니까 얼굴을 까는 일은 단죄다. 대중은 앞으로 일어날 재판에서 정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 그러기엔 좋지 못한 전례를 지나치게 많이 안다. - P61

얼굴을 응시하다가, 나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피해에 대한 생각으로 돌아온다. 신상 공개의 패턴에 다다르기까지 필요충분조건처럼 거기에 있는 건 피해자들의 돌이킬 수 없는 피해다. 그 피해에는 이유가 없다. 피해자의 탓인 부분이 없다. 그런데도 돌이킬 수 없다. 없던 일로 돌이킬 수가 없다. - P68

범죄가 일어나도록 방조하는 사회 구조는 물론이거니와, 얼굴 공개라도 하지 않으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하게 하는 사법 시스템을 가리켜야 한다. 믿지 못하는 대중보다도 범죄의 무게에 걸맞지않게 가벼운 처벌을 일삼는 사법부가 더 큰 문제여서다. - P69

날씨가 간편히 뉴스가 되는 데는 암묵적인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바로 날씨는 스펙터클의 좋은 재료라는 것이다. 영상이나 사진으로 보여주기 쉽고, ‘그림이 될 만한‘ 재난의 가능성도 도사린다.  - P77

 그런데 궂은 날씨의 스펙터클이 선하고 아름다운 의도를 꽤 이상하게 오염시키거나, 비틀어버릴 때가 있다.
약자의 고난은 구경거리로 보여지고, 재난 현장은 대상화되어 정치적 포토월로 전락한다. - P80

죽음이나 부상 따위의 불운한 일이 지나갔다는 걸 모두가 잘아는 채로 입을 닫아버린 착 가라앉은 고요함이다. 한마디를 들으려고 해도 쉽지 않고 관계자들은 이리저리 내빼거나 입을 다물기 일쑤다. - P92

사고 당사자와 그의 가정에는 측량할 수 없는 고통이고 비극할 것인데, 사회적으로는 사고의 과정에서 특이점이 크지 않으니 기사의 가치가 높지 않다고 잘라 말해야 하는 기우뚱한 불균형에서 오는 갸웃함이었다. - P94

그러나 뉴스는 자주 이색적인 구석이 있는 죽음에 더 크게 반응하고,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흔한 고통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산업재해가 침묵의 고통이 되는 두 번째 이유다. 2022년하반기에 SPC의 계열사인 제빵공장에서 노동자가 끼임 사고로숨진 뒤 초기에 미디어가 크게 반응하지 않자 오히려 대중이 나서서 이슈가 되었던 다른 죽음들과 비교하며 분노했던 현상 역시 미디어의 관성에 대한 공분이다. - P95

장 씨는 50대에 급성백혈병으로 죽었고, 죽음과 함께 소멸되어 버린 질병은 서류 몇 장 위에만 남아있다. 25년 이상 2만2900 볼트의 고압 전류가 흐르는 전기선에서 작업하며 유해한 자기장에 노출돼 백혈병에 걸렸다고 쓰인 채로. - P98

산업재해가 흔하게 퍼져있는 일이다 보니 시청자들이 이 뉴스를 그저 지나쳐 버리지 않을까 하는 노파심 어린 걱정 역시 훼손된 신체를 빠짐없이 묘사하도록 한다. 다양한 감수성의 정도를 지닌 개개인으로 구성된 집단을 향해 이쪽을 바라봐 달라고 던지는, 수류탄과도 같은 묘사들다. 무엇이 효과적인 반응을 이끌어낼지 모르니 최대한 쓸 수 있는 장비는 다 꺼내서 쓰는 식이다. - P99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를 홀로 고치다 숨진 김군 태안화력발전소에서 홀로 작업하다 석탄 이송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하청 노동자 김용균 씨 우리가 기억하는 이름은 얼마 되지 않는다.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산업재해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하루에6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고 있다. - P100

고통을 이해하기 위해 나를 틀로 쓰자는 뉴스의 제안은 얼마만큼 유효한 기획일까? 실제로 ‘나‘의 고통은 뼈저리게 생생하다.
남의 고통보다 훨씬 더. 이따금 끔찍한 사건을 취재하고 난 뒤에나나 가족이 피해자가 되어 같은 사건을 겪는 악몽을 꾸곤 했다.
그럴 때면 식은땀이 범벅이 된 채로 깨어나 몸서리를 쳤다. 취재를 하며 피해자의 말을 듣고 이해하려던 순간보다 꿈에서 스스로피해자가 된 순간이 훨씬 고통스럽게 여겨졌다는 점이 끔찍했다.
가짜 고통, 가짜 겪음일지라도 내 몸을 통과하니 진짜보다 더 진짜처럼 여겨진다는 게 괴물 같았다. - P147

더구나 개인의 프로필을 중심으로 한 소셜미디어를 주축으로뉴스의 소비가 극도로 개인화되고 에코 체임버echo chamber 효과(폐쇄된 환경에서 유사한 의견을 가진 사람끼리 소통하며 기존의 신념을 증폭하거나 강화하는 현상)에 갇히게 된 시대다. 나에게 심리적으로 또 물리적으로 와닿지 않는 뉴스는 점차 존재하지 않는 뉴스나 마찬가지가 되어가고 있다. - P148

알고리즘과 구독에 갇힌 나의 타임라인 밖으로 빠져나와 다른삶의 존재를 알아채는 것. 모든 연민에 ‘나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을 매달지 않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대로를 아는것. ‘나‘를 중심으로 뉴스를 떠먹이려는 뉴스의 매개자들이 의도치 않게 왜곡하고 있을지도 모를, 나와 연관되지 않은 일 역시 중요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 P154

걸려 넘어지는 부분은 늘 비슷한 지점이다. 우리는 사회 변화의 수단으로 고통을 전시하고, 그 전시를 위해 피해자를 설득할때가 있다. 어떤 이슈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 제대로 조명받지못했던 이슈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일 자체는 더 나은 사회를만드는 데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이를 위해 개인인 피해자들이맡아야 하는 역할에 의심이 드는 것이다.  - P161

그날 수업에서 영상을 보여주어야 하는지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지를 두고 달아올랐던 논쟁 끝에는 이런 질문들이 남았다. 
고통을 언제 보여줘야 하고 언제 보여주지 말아야 하는가? 우리는 어떤 고통에서 눈을 떼지 말아야 하고 응시를 참아내야 하는가? 고통을 얼마나 보여주고, 또 가려야 하는가? 보여주기의 윤리와 보여주지 않기의 윤리는 누구를 지키는 것이며 누구를 위한 향한것인가? - P167

했다. 2023년 8월, 여전히 성범죄의 원인이 피해자에게 있지 않음을 애써 입증해야 한다. 피의자가 밝힌 범행 동기는 ‘강간이 하고 싶어서‘였다. - P199

그렇다면 이대남과 이대녀라는 이름을 붙이고 부르는 건 누구의 목소리인가, 젠더 갈등을 보도하는 기사는 누구를 위해 복무하는가.
언론에 성별이 있다면 무엇인가. - P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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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가 남편에게 이 소식을 전하면 남편이 금화 세례를 퍼부을 테고 그러면 나만 빼고 모두 행복해질 것이다.  - P10

원래 돌이었으니 당연히 맥이 느릴 수밖에 없지만나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냥 뉘우치는 동시에 귀담아 듣는 것처럼 으으으으음, 하기만 했다.  - P12

"좀 걸으면 한결 나을 것 같아요."
의사는 말했다.
"그러기에는 몸이 너무 약하세요. 그러다 다치기라도하면 제가 부군을 뵐 면목이 없지 않습니까?"
"나는 원래 돌이었어요. 그러니까 걷는 정도로다치진 않아요."
"그만하세요." - P12

수도 있다. 따지고 보면 내 덕분에 부자가 됐지만 남편은 내가 그렇게 얘기하면 싫어한다. 첫째로는 여신의능력, 다음은 자신의 능력 덕분이라고 한다. 자신이 대리석을 깎아서 나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내가 탄생된이후에 사실 탄생된 건 아니지만 달리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 P15

"살아나라, 살아나라, 내 생명, 내 사랑이여.
살아나라."
나는 바로 이 순간, 이슬을 머금은 새끼 사슴처럼눈을 떠 마치 태양처럼 나를 내려다보는 그를 보고 경외와 감사가 담긴 탄성을 조그맣게 터뜨려야 한다. 그러면 그가 나를 따먹는다. - P19

 그랬으니, 내가 살아 숨쉬기를 바랐을 때, 그는 따먹을 수 있을 만큼 따뜻해지기만을바랐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까지 생각하지 못했다니어리석지 않은가. 어떻게 내가 인간인 동시에 여전히석상일 수 있을까. 태어난 지 11년밖에 안 된 나도 그럴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아는데. - P26

"나한테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군."
그는 이렇게 말하며 나를 침대에 눕히고 횃불을 들어 내 목에 남은 벌건 자국과 팔과 가슴에 자주색으로남은 자신의 손자국을 비춰보았다. 멍이 아니라 얼룩이라도 되는 듯이 그걸 문질렀다.
"색이 완벽하네. 이것좀 봐."
그가 말하며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여주었다.
"당신처럼 귀한 캔버스는 없어." - P33

"우리, 밖에 다녀올까?"
"아빠가 허락하지 않을 거예요."
"나도 알아, 그러니까 얘기하지 말고 나가자."
우리는 옆 마을까지밖에 가지 못했다. 다들 우리를알아봤다. 피부가 우유처럼 새하얀 한 쌍이니 눈에 띌수밖에 없었다. - P34

여신이 존재하는지모르겠지만, 존재한다면 저 조각달은 여신이 나를 내려다보며 짓는 미소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 P39

파도가 우리 입을 향해 출렁거렸다. 바로 지금이에요. 제 소원을 들어주세요. 나는 기도했다. - P45

둘이서 물속으로 추락하듯 가라앉는 동안 나는게들이 어떤 식으로 하얀 내 어깨를 넘어 그를 먹으러올지를 상상했다. 해저는 모래가 깔려 있어서 베개처럼 푹신했다. 나는 거기에 몸을 눕히고 잠을 청했다. - P46

 피그말리온의 해피엔딩은 몇 가지 혐오스러운사실을 받아들인 다음에라야 해피엔딩이라는 평가를내릴 수 있다. 착한 여자는 남자를 만족시키는 것 말고는 존재 이유가 전혀 없다는 발상, 여성의 성적 순결에대한 집착, ‘새하얀‘ 상앗빛 피부가 완벽하다는 통념,
여성의 현실보다 우선시되는 남성의 환상.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에서 갈라테이아에게 할애된 대사는없다. 심지어 이름도 부여되지 않고 그냥 ‘여자‘라고 불린다. 그저 순종적인 욕구 해소의 대상으로만 존재한다. 내가 그녀의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다른 자료를 통해서였다. - P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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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정은 세상과 닿는 단면이 놀랍도록 넓은 작가다. 그 면적이 광활하고 비옥한건 기자로서 살아온 시간과 관련이 깊다. 속고 싶지도 속이고 싶지도 않은 사람이기자일 때 방황은 숙명이 된다. 고통을 측량하다가 자주 실패한 자, 취재의 핍진성과 폭력성을 곱씹어온 자가 옮긴 세계는 매끈하지도 딱 맞아떨어지지도 않는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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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날 오후 나 자신의 규칙을 정했다. 어머니와대립각을 세우고, 이따금 보이는 그녀의 친절에 절대 유혹당하지 않고, 중요한 것에 관해서는 절대 어머니와 이야기를 하지 않고, 어머니를 믿지 않기로 했다. 만일 내 삶에서어머니를 뿌리 뽑지 않으면 어머니가 나를 갈가리 찢어버릴 것임을 분명하게 보았다. 나는 올바르게 살 것이고,
의를 지킬 것이고, 무엇보다도 존엄을 지킬 것이다. 하지만나는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 P146

그러나 고전음악 청중이 줄고 또 나이가 들고, 새로운세대 음악가와 음악 프로모터가 위대함이라는 말에서 속물의 냄새가 난다고 느끼기 시작하자 ‘위대하다‘는 말은 냉대를 받게 되었다. 위대함은 고급문화에 적용될 때 점점가부장제나 계급이라는 관념과 결부되어, 이 말을 피하는것이 수백 년에 걸친 위계와 인종차별적 배제에 대한 필수적인 속죄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면서 이 말은 쉽게 대중문화로 이주했는데, [롤링스톤즈」 같은 잡지에서 아무런부끄러움 없이 위대한 아티스트 100인을 선정했으며, 위대함이라는 낡은 개념이 "반드시 읽어야할 책이라거나 오프라의 최애" 같은 위장된 형태로 돌아왔다. -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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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주는 바흐의 작품들의 상당한 부분에서 중요한 자리에 있었다. 위대한 「바이올린을 위한 샤콘]과 [오르간을위한 파사칼리아 (단조)는 변주곡 형식의 기념비적 활용일 뿐 아니라 "유사하게 반복되는 화성적 기초"에 바탕을두고 있다. 바흐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대가의 솜씨를 발휘했던 다성 푸가 fugue 또한 고도로 구조화된 모티프 morif변주의 활용으로, 개별 성부는 화성적 또는 극적 효과를위해 필요에 따라 원래의 선율을 바꾸고, 박자를 압축하거나 늘이고, 핵심 악상을 조각냈다가 다시 합친다.  - P63

이제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상실 후에 찾아오는 어떤 것, 길을 잃고 헤매면서도 동시에 자신이 어디 있는지 아는 데서 오는 혼란이라는 고무줄 같은감각을 희미하게 알려주었다.  - P66

세 음표를 올라가다가 여섯 음표 내려가는 부드러운 선율, 한 번의 가벼운 호흡 뒤의 긴 한숨.
내가 기억하는 것보다 단순해 보였다. 순수하고 어려 보였다. 어린 시절 가족실에 있던 작은 업라이트 피아노로 연습을 할 때는 어머니가 듣고 있다는 사실을 강하게 의식했다. 어머니는 기분이 나쁠 때는 실수를 찾아내며 내가 엉성하게 하거나 선생님이 가르쳐준 것을 무시한다는 증거를모았다. 분노에 찬 상태에서는 나와 피아노가 있는 곳으로달려와 내가 일부러 그런다고 화를 냈다. 나는 어머니를 달래거나 변명을 하려 했다. 물론 그것은 내가 화가 나지 않았을 때이고, 나 또한 화가 났을 때는 싸웠다. 이런 싸움의결과는 그녀에게 달려 있었고 늘 둘 중의 하나로 흘러갔다. 어머니는 내 목과 팔을 때리고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다나를 내 방으로 보냈다.  - P70

세월이 흐르면서 음악에 대한 그녀의 감수성은 가장기본적인 것, 매력과 부드러움이 넘치는 익숙한 고전음악과 간단한 곡들로 축소되었다. 내가 기술적으로 어려운 악구를 습득하거나 예술적 기교를 과시하는 부분을 근육의힘으로 통과해나가려고 노력하면 그녀는 불안해했다.  - P70

이제는 그 목소리의 느낌이 완전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나의 정신은 충실한 개처럼 잘 훈련되어 있어, 어머니가 특별히 좋아했던 방향으로 음악이 아름다워지면 나는지금도 더 부드럽게 치면서 보상을 기대한다. "그거 좋구나, 플립." - P70

그것은 작곡가와 연주자와 감상자를 완벽한 원 안에 함께 엮는, 노련한 예술가의 뛰어난 능력을 젊은 음악가의 활력, 그리고 이상적인 청자의교양과 결합하는 매혹적인 일화다. 작곡가는 연주자를 갈망하고, 연주자는 청자를 갈망하고, 청자는 음악이 바로자신을 위해 연주되고 있다고 믿고 싶다.  - P73

나는 글을 읽기 전에 피아노를 칠 수 있었으니까 네살이나 다섯 살 무렵이었을 것이다. 음악은 언어처럼 무의식적으로 고통 없이 내 삶에 들어왔다. 틀림없이 누나들이집에서 몇 가지를 가르쳤겠지만 기본적인 것은 마이판위에게서 배웠다. 그럼에도 뭘 배웠다거나 가르침을 받았다는 기억은 나지 않는다. 그냥 일주일에 한 번 마이판위의집으로 갔고, 노래하고 건반을 두드리고 웃음을 터뜨리며즐겁게 30분을 보낸 기억뿐이다.  - P79

그 어린 시절 동안 어머니는 자신이 모성의 의무라고알고 있는 모든 것을 다했으며 거기에는 자식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도 포함되었다. 큰 딸들에게는 바이올린을주고 직접 가르쳤는데, 그것은 실수였다. 그녀는 딸들과함께 연주하면서 좌절감과 분노에 사로잡혀 부주의하고서툴다고 야단을 쳤다.  - P79

"피아노 건반을 누를 때 힘을 얼마나 줘야 하는지 아니?" 내가피아노를 너무 크게 치자 그녀가 나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나는 모른다고 자백했다. "허시 바 두 개야." 즉 약 90그램이라는 뜻이다. 한번은 운 좋게 캔디 바 두 개를 얻었을 때,
그것들을 건반 위에 올려놓으면 정말로 건반이 가라앉으면서 조용히 현이 울리는지 보려고 했다. 하지만 캔디 바 두개의 균형을 제대로 잡을 수가 없었다. 결국 지금까지도 샬롯의 말이 옳은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지나치게 적극적으로 연주를 하려고 할 때면 지금도 "허시 바 두 개"라고 꾸짖는 그녀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 P87

그가 실용적인 건반 조언서에서 사용한 비유는 잔혹할 정도였다. "손가락은 말을 안 듣는 작은 생물같아 고삐를 잘 죄고 있지 않으면 약간 유연해지자마자 길들이지 않은 망아지처럼 달아나는 경향이 있다." - P92

새로운 교사를 만나면 그 전 교사가 손의 위치에서부터 연습 방법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엉터리로 가르쳤다는 말을 듣는 것이 드문일이 아니었다. 교사를 바꾸는 것은 종종 종교를 바꾸는일과 약간 비슷하게 느껴졌다.  - P97

우리에게 있는 모든 그림에서 바흐는 약간 뚱뚱한 남자다. 지금 전해지는 그의 가정과 가족 이야기 대부분에는 활기, 음악, 대화, 주흥이 넘치며 시끌벅적하다. 그러나우리는 그의 젊은 시절의 두 일화로부터 그가 적어도 가끔은 굶주렸고, 음악이 간절했으며, 아마도 이 두 가지가어떤 식으로인가 그의 마음에서 결합되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는 버려진 청어에서 감추어진 돈을 발견 - P109

나는 1악장의 제시를 난도질했다. 클라라는 내가 끝을 낼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냥 일어서더니 말했다. "그만 됐다." 어머니는 굴욕감을 느꼈다.
나는 수치로 얼굴이 붉게 물들었고, 좋은 식사나 외고모할머니가 정열과 재능을 쏟아 그림을 그리고 조각을 하는스튜디오 방문 등이 포함된 나머지 시간에 어떤 즐거움도느낄 수 없었다. 오후 늦게 떠날 때 클라라는 누나와 나와함께 사진을 찍는 데 동의하고는 우리를 바싹 끌어안으며우리가 자신의 육중한 몸을 감추어주면 그렇게 뚱뚱하게나오지 않을 거라고 농담을 했다. 그녀는 다시 경쾌하고시니컬해졌지만 나는 나의 실패에만 빠져 있었고, 그 느낌은 며칠 동안 계속되었다. 차에서 어머니는 나에게 날카롭게 말했다. "도대체 왜 그 모양이니?"
- P122

다음 레슨이나 리사이틀 때 우리를 벌할 분노의 여신들을 달래기 위한 연습이었다. 한때 우리 조상이 아
‘침에 반드시 해가 뜨도록, 계절이 순서대로 이어지도록 어면 제의를 거행하던 것과 마찬가지로 연습을 했다. 그러나기도의 효과는 변덕스러웠다. 우리는 피아노에게로 나아가 스승에게 절을 하고 동료 학생들의 악의에 찬 감시를받으며 흑단과 상아의 신성한 기하학 위에 손가락을 얹고그 순간에 자신이 의무적으로 바쳐지는 제물이 되지 않기만을 바랐다. - P124

그녀는 건반에서 손을 떼고 마음의 눈으로어려운 악절을 보라고 말했다. 오른손이 음표를 연주한다.
고 상상해보라. 모든 근육을 상상해보라, 한 건반에서 다음 건반으로 손가락을 뻗을 때 어떤 느낌인지. 아주 천천히 해서 모든 음이 그 전 음과 완전히 분리되어야 하며 오직 악보에 대한 완전히 의식적인 기억의 허락을 받아야만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다음에 오는 음을 마음속으로 연주하기 전에 머릿속에서 먼저 들어라. 두 손을 허벅지에모으고 소리 없이 해야 한다. 이것은 오로지 한 악절에서한 손이 연주하는 부분을 완전히 습득하기 위한 것이다.
그다음에 왼손을 똑같이 힘겨운 내적 방식으로 상상하고,
그런 다음 오른손의 음악을 연주하는 동안 왼손이 오른손을 소리 없이 반주한다고 상상하고 그런 다음 두 손을바꾸어 이 과정을 반복해야 한다.
- P128

그러나 음악은 우리에게 더 집요하게 요구한다. 음악은 대상이나 물건, 우리가 소유하거나 내줄 수 있는 어떤것이 아니다. 그것은 관계이며, 그것을 우리 삶에서 잘라내는 것은 우리 자신의 어떤 부분을 잘라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음악으로 돌아가는 것은 근본적으로 음악이 희망과또 우리가 삶에서 앞으로 나아가려 하는 끈질김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인생 초반부에 많은 시간 연주했던 바이올린은 끝까지 어머니 곁에 머물렀다. 비록 오래전에 선반으로 은퇴하기는 했지만, 어머니는 바이올린을 생각하면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꼈고 가끔 화도 났지만, 그래도 그것은 어머니 세계의 영원한 붙박이였다. 나에게는 피아노가 그랬다. 내가 지금 몇 년째 씨름하고 있는 골드베르크 변주곡은 그 관계의 중심 장소, 음악과 내가매달, 매년 옛사랑에 새로 불을 지피기 위해 다시 만나는장소가 되었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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