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한국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델리만주 냄새를 전철역과 결부해 기억하는 걸까 궁금해졌다. - P195

그 경험으로 10대의 나는 두 가지를 체득했다.
1. 검열은 크게 소용이 없다.
2. 어떤 예술은 사람들에게 일부러 불쾌감을 일으킨다. (그것이 의도라면 각오도 단단히 해야 한다.) - P200

세상은 망가져 있다. 어떻게 고쳐야 할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무참히……. 그것을 알면서 여행하는 것은 묘한 일이다. 여행지에 이르러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운데 사실은 아름답지 않다니‘ 중얼거릴때 반대 방향으로 미끄러지는 마음은 현기증을 일으키고 만다. - P203

10시가 넘어서야 해가 지는 서늘한 여름이었고 잡음 없이조용했다. 빛의 제국이란 소리가 없어야 성립될 수 있는 것이구나.
아마추어 감상가로서 가슴 두근거리며 생각했다. 사람들은 일찍 귀가해 발걸음 소리도 자동차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풀벌레도 날개를떨지 않는 깨끗한 무음 속을 걸었다. 직접 감각하고서야 이해할 수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예민한 몸을 끌고 다니는게 싫어 여행을 망설이는 사람도 계속 여행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요소들에 대해서. - P207

여행한 공간이 늘어나고 또 늘어나면 정보를 건질 그물망이 촘촘해져서 책이 훨씬 재밌어지는 게 아닐지, 그렇다면 지금껏 놓친 정보는 또 얼마나 많을지, 종종 허술하게흘려보냈을 반짝임들을 안타까워한다. - P220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단 걸 깨닫고도 끝까지 가야 하는 경우였다. 인생에 대한 비유처럼 들리네, 하고 그 와중에도 웃었다.  - P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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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오스틴을 사랑하는 작가로서, 나는 사랑과 사랑 아닌 것들이 경계 없이 뒤섞여 있을 때 그것을 분리해보는 작업을하고 싶다. 결혼에는 사회경제적 안정성, 속해 있는 집단의 압력, 원가족과의 관계, 신체적 욕구 등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혼재해 있으니 말이다. - P2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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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까지 가서 혀만 담그고 오네. 너한테 독일은 낭비다!"
친구들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평소에 없는 알코올 분해 효소가여행지에서만 잠깐 생기는 것도 아니니 별수 없었다. - P149

모두가 쉴 때 쉴 수있게, 일하다 병들거나 죽지 않게 조금씩 불편해지는 것도 감수하고싶은데 변화는 편리 쪽으로만 빠르고 정의 쪽으로는 더뎌서 슬프다. - P150

죽고 없는 사람들이 한때 머물렀던 장소에 찾아가는마음이란 지도 위를 투명한 점선으로 뒤덮는 것과 비슷하지 않나 싶다. 보이지 않는 것들이 쌓여서 천천히 그려지는 것들이 있다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한다. 완벽하지 않은, 지나간 사람들의 바통을 건네받아 나도 쓰고 싶다고 중얼거렸던 듯도 하다.  - P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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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것, 언뜻무용해 보이는 것, 스스로에게만 흥미로운 것을 모으는 재미를 아는 사람은 삶을 훨씬 풍부하게 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수집가만큼 즐거운 생물이 또 없고 수집가의 태도는 예술가의 태도와 맞닿아 있다. 항상 다니는 길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사람들, 자신이 사는 곳을 매일 여행지처럼 경험하는 사람들이 결국 예술가가되니까. - P95

겪어본바, 대부분의 서브컬처 향유자들은 다정하고 기발한데, 가끔 몇 년 전에 읽은 책 한 권이 마음에 안 들었다고 집요할 정도로따라붙으며 잔인한 말들을 하는 이를 맞닥뜨리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정말 어렵다. 마음속의 저울이 잘 작동하는 사람들과만 가까이 지낼 수 있는 것 같다. 마음속의 저울은 옳고 그름, 유해함과 무해함, 폭력과 존중을 가늠한다.  - P107

 제대로 기억하지 않으면 나아가지 못한다. 공동체가 죽음을 똑바로 애도하고 기억하고 전하지 않으면죽은 자들을 모욕하지 않는 방향으로 기억을 단단히 굳히지 못하는공동체는 결국 망가지고 만다. 역사교육을 전공하며 공부한 자세한내용들은 많이 잊었지만 그것 하나는 배운 것 같다. 배운 것을 자꾸현실과 비교해보며 다급함에 종종거릴 때가 있다. - P116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지면 가장 순정한 사람들이 희생된다는 것을 외면하는 독선은 얼마나 독한가? - P117

 언어를 다루는 사람으로서 정교함을잃지 않으려고 애쓰다 보면 깎아낸 부분이 남긴 부분보다 많아 심지없는 완곡어법을 쓰게 되고, 세게 밀어붙이는 글을 쓰다 보면 꼭 엉뚱한 사람이 다치게 되어 후회스럽다.일단은 조롱과 비아냥, 일반화를 피하려고 노력한다. 복잡하게얽힌 세계에서 한 사람을 덩어리로부터 떼어내 개별적으로 보고 싶다. - P119

사회적 맥락과 개인을 동시에 온전히 이해하는 것, 내가 쓰는 언어의 요철을 없애면서도 예각을 잃지 않는 것. 그 지난한 두 가지가 포기할 수 없는 목표인 것 같다. 실패하면 그다음 번에 다이얼을 더 잘돌릴 수 있겠지 하는 마음으로 계속한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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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팠던 사람들은 자기 인생을 미래완료형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꿈은 마르그리트 뒤라스처럼 70대에도 활발히 작품 활동을 하며 50권까지쓰는 것이지만, 충분한 수명을 누리지 못한다 해도 요절한 사람이아니라 열한 살에 죽을 수도 있었는데 죽지 않고 있는 힘껏 살았던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 P15

보편적인 개념의 여행을 싫어한다기보다는 다른 사람의 여행을좋아하는 것에 가까웠다. 잘 쓰인 여행 책, 화질 좋은 여행 프로그램,
친구들이 다녀와서 들려주는 이야기와 보여주는 사진들을 즐기며충분히 만족해버리는 편이어서 스스로 여행을 떠나는 편이 아니었다.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지 않다면 말이다. - P17

장르 소설가들이 늘 화가 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내내 부아가 치미는 말들을 듣기 때문일지도모른다. 장르를 모르면 장르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될 것을 왜 그렇게 무례하게들 구는지 모르겠다. - P21

 천부도 겨우 팔렸지만 그때도 강렬하게 지지해주는 독자분들이 계셨다. 책 한 권 없이 몇 편의 단편뿐이었을 때부터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고 말해주시던 분들이..………. 독자와 작가 사이의 사랑은 세상의 그 어떤 사랑과도 달랐다. 어떨 때는 커다란 방패고 또 어떨 때는 완전연소하는 연료라서 한번 경험하면 다시는 그것 없이 살수 없게 된다. 아무것도 아닌 나를 선택해 사랑하기로 마음먹은 분들이 의기양양하실 수 있게 어떻게든 살아남고 싶었다. - P21

 만약에 이 글을 읽는 당신이 나 같은 ‘파이프형‘이라면, 창작물이 안에 고일 때 괴롭고 내보내야 머릿속의 압력이 낮아진다면 당신도 창작을 해야 한다. 그 압력을 무시해서 고장 나는 사람들을 종종 보았다. - P22

 다른 영역의 아티스트들을 사랑한다. 책은 남의 책, 예술도 남의 예술이 최고………. - P39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은 말의 농도가 비슷한 게 아닐까? 어떤 사람들은 만나는 내내 자기 이야기만 늘어놔서 숨이 막히고, 또 어떤 사람들은 좀처럼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상대에게 그 여백을 숨가쁘게 채우게 하는데 말의농도가 비슷한 사람들끼리는 편하니까. 그 농도가 비슷하지 않은 사람끼리 길게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 P63

지구는 45억 년 되었는데, 이 모든 것은 결국 항성과 행성의 수명이 다하면 아무 흔적도 남지 않을텐데, 우리는 짧은 수명으로 온갖 경이를 목격하다가 가는구나 싶었다. 경이를 경이로 인식할 수만 있어도 아무렇지 않은 것들이 특별해질 것이다.  - P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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