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가 찢기고 뼈가 꺾여 피를 쏟으며 생의 불꽃이 잦아들고 있는 사람들이 아는 얼굴들과 겹쳤다. 평세는 눈물을 참았고 달출은 고개를 숙였다. - P189

자기 몸에서 나는 시큼한 냄새도 다 사람 사는 냄새였다. 하지만 지금의 피 냄새는 견딜 수 없었다. 그건 사람 냄새가 아니라 정반대의 이취(異)였다. - P190

타자들의 피가 엉겨 만들어낸 기묘한 단일감, 일체감이 모두를 감쌌다.  - P199

죽기 직전 조선인들이 마지막으로 남기는 이 말의뜻을 이해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 어떤 자는 이를 조선인들끼리의 암호일지도 모른다고 의심하기도 했다. - P210

여성들을 강간하고 다닌다는 말은 오직 치안 유지라는 명목을 위해 상부가 고심에 고심을 더해고안해낸 말이라는 걸 교쿠지츠도 이미 알고 있었다. - P219

일본인들을 죽이고 다니느라 온몸이 피범벅이래!
징그럽고 거짓말도 하고 불을 지르고 털이 많대! - P240

목적지는 없었지만 도착해야 할 안전한곳이, 함께 싸우기에 평화로울 수 있는 곳이 자신들을기다리고 있길 바랐다. - P242

어쩌면 살육 당시를 목격해 증언한 사람의 후손일지도 몰랐다. 혹은 어쩌면 그날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지만 죽어간 사람들의 여전히 살아 있는 이야기를 어느 때곤 가만히 들여다보려는 사람들일지도. - P2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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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 후 배에서 내릴 때 평세는 후들거리는 다리로도 있는 힘껏 걸었다. 살러 가는 길이었다. 죽으러 갈힘을 내지 않아 다행이었다. 죽는 길 말고 사는 길로오라고 자신에게 손짓한 이가 달출 형님이었다.  - P89

구호 순서가 돌아오지 않더라도 절도가 아닌 다른 방법을 찾기로 했다. 그래야 이 사회 끄트머리에 매달려 있더라도 이유 없는 수모는 당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고향에서도 그랬다. 약한 사람들이 더도덕적이어야 했다. - P96

"그때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된 시신을모아 마을 서낭당에 모셨다. 하늘님이 되시라고 기도했다. 그동안 우리 마을을 지켜주던 신은 하늘에서 온이가 아니더라. 대대로 마을에서 가장 처참하게 당한사람이더라."
아버지는 나주를 초토화한 일본인들이 훈련받은 군인들로는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자기네 나라에서도궁핍한 형편이라 외국의 전쟁터로 끌려 나온 것 같았다고, 곤궁해 보이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일본인 민간인들이 조선 호남의 민간인들을 섬멸했다고....... - P113

오늘 봤던 잔인한 이야기는 못 본 척감추고 태연하게 말하고 싶었다. 어디나 사람 사는 데는 다 똑같더라고, 어머니가 말버릇처럼 하던 이야기를 자신도 하고 싶었다. 근데 어머니, 사람을 벌레처럼죽이는 것도 어디서든 똑같이 일어나는 일일까요? - P115

다카야는 두 번째 생에서도 말년에 폐암을 얻었다.
죽지 못하는 신세로 죽음과 같은 생을 이어가다 두 번째 100년의 끝이 다가올 즈음 다시 카타콤베에서 눈을 떴다. 200년을 지나며 또 한 번의 시간 루프가 다카야에게 형벌처럼 반복되고 있었다.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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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존재를 피하거나 무시할 수 없다면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었다. 인간의 후각은 생존을 위해선 즉각예민해지고 공존을 위해선 금세 둔감해지기에 축복이었다. - P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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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 커다란 눈송이가 내 손등에 내려앉는다. 구름에서부터천 미터 이상의 거리를 떨어져내린 눈이다. 그사이 얼마나 여러차례 결속했기에 이렇게 커졌을까? 그런데도 이토록 가벼울까.
이십 그램의 눈송이가 존재한다면 얼마나 커다랗게 펼쳐진 형상일까. - 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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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축대에서 떨어졌던 그 밤에꿈을 꿨다고 했어. 다섯 살 모습으로 내가 눈밭에 앉아 있었는데 내 뺨에 내려앉은 눈이 이상하게 녹지를 않더래. 꿈속에서 엄마몸이 덜덜 떨릴 만큼 그게 무서웠다. 따뜻한 애기 얼굴에 왜 눈이안 녹고 그대로 있나. - P81

 만 열일곱 살 아이가 얼마나 자신이 밉고 세상이 싫었으면 저렇게 조그만 사람을 미워했을까? 실톱을 깔고 잔다고, 악몽을 꾸며 이를 갈고 눈물을 흘린다고. 음성이 작고 어깨가 공처럼 굽었다고. - P82

엄마가 어렸을 때 군경이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였는데, 그때국민학교 졸업반이던 엄마랑 열일곱 살 이모만 당숙네에 심부름을 가 있어서 그 일을 피했다고 엄마는 말했어. 다음날 소식을 들은 자매 둘이 마을로 돌아와, 오후 내내 국민학교 운동장을 헤매다녔대.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와 여덟 살 여동생 시신을 찾으려고 여기저기 포개지고 쓰러진 사람들을 확인하는데, 간밤부터 내린 눈이 얼굴마다 얇게 덮여서 얼어 있었대. 눈 때문에 얼굴을 알아볼 수 없으니까. 이모가 차마 맨손으론 못하고 손수건으로 일일이 눈송이를 닦아내 확인을 했다. 내가 닦을 테니까 너는 잘 봐라고 이모가 말했다고 했어. 죽은 얼굴들을 만지는 걸 동생한테시키지 않으려고 그랬을 텐데, 잘 보라는 그 말이 이상하게 무서워서 엄마는 이모 소맷자락을 붙잡고, 질끈 눈을 감고서 매달리다시피 걸었대. 보라고 네가 잘 보고 얘기해주라고 이모가 말할 때•마다 눈을 뜨고 억지로 봤다. 그날 똑똑히 알았다는 거야 죽으면사람의 몸이 차가워진다는 걸. 맨뺨에 눈이 쌓이고 피 어린 살얼음이 낀다는 걸. - P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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