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의 법칙으로 생성되고 자리했을 저 무수한 별이 가상의 선으로 이어져 별자리가 되고 별자리마다 하나 이상의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 별이 이야기의 재료가 되기도 한다는 걸알기 전 어린 태지혜에게 별은 그저 무서운 존재였다.  - P15

언니 눈엔 뭐로 보여?
음…… 엄마에게 돌아가는 아기 오리 셋?
공주님이 물에 빠뜨린 은구슬 세알.
편식하는 네가 찜질방에서 남긴 달걀노른자 세 개.
언니 카페 창틀에 쪼르르 놓여 있는 작은 귤 셋.
나 말고 올케언니가 물려받은 우리 엄마 왕진주 목걸이세 알.
날 손절한 친구가 카톡방에 마지막으로 남긴 말줄임표 점점점.
초음파로 본 내 포궁 속 물혹 세 개. - P20

할머니는 어린 송기주를 받아서 안 그래도 주렁주렁 무거웠던 생을 더욱 무겁게 건너가야 했다. 오래된 동네에서 수십 년간 작은 백반집을 운영한 할머니는 관절염 탓에 밤마다 끙끙 앓는 소리를 내 송기의 잠을 깨우곤했는데 그런 밤이면 할머니가 이대로 죽어 버릴까 너무 무서워 송기주는 할머니 숨소리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곤 했다. 그러다 손이 조금 야물어지면서부터는 저녁마다 할머니 어깨를 주무르고 무릎을 두드리며 주문처럼 기도처럼 속으로 같은 말을 반복했다.
(할머니, 죽지 마.) - P25

가뿐하게 넘으리라. 날렵하게 넘으리라. 기꺼이통과하리라. 송기주는 계속 다짐하며 할머니와 영원한 동반을 꿈꾸었다. 아니, 스스로 명령했다. 할머니가 사라지고 송기주의 생이 암전될 일은 절대 없어야 한다고. - P27

지철은 송기주의 애도가 채 끝나기도 전에 세 번째로 고백했다. 생의 안전망을 잃은 송기주는 지철의 고백에 항복했다.
그렇다. 수락이 아니라 항복이었다. 지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로 마음먹어서 그 고백에 무너졌다.  - P29

 사랑이 자연 발생하지 않는 노력의 산물이라면 미움은 노력과 무관하게 자연 발생했다. - P38

송기주는 그런 시오도 지철도 다 꼴 보기 싫었다. 부모의 보살핌과 사랑을 넘치게 받으면서 있지도 않은 결핍을 드러내는 아이가 징그러울 때가 있었다. 사춘기를 지나면서 유난히 못되게 굴며 부모를 시험에 들게 했고, 고3이 되면서는 대단한 벼슬이라도 거머쥔 것처럼주변 사람을 쩔쩔매게 했다.  - P31

결국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방법은 오직 죽음뿐이라는 말이다. 송기는 할머니가 사준 옛이야기책을 읽으면서 일찍부터 이런 비관적인 결론에 도달했다. 설정 자체가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야기 속 부모나 조부모는 왜 어린 주인공에게 이토록 힘든 일을 시키는가. 왜 이 엄마는 혹은 이할아버지는 죽기 직전 고작 딸기나 복숭아 따위가 먹고 싶은가 말이다. 사랑하는 딸이 혹은 손주가 이 팍팍한 세계에 홀로 남겨지려고 하는데, 겨우. 딸기라니. 복숭아라니.  - P35

그런 송기를 보고 할머니는 착한 사람이 눈물도 많은 법이라고 말해 주었지만 송기주는 자신이 착한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았다. 송기주는 그저 불안하고 불행을 두려워하는 사람이었다. - P36

말투는 권위로 끈적였고 태도는 집요했다. 반지영은 목덜미가 서늘해지는것을 느끼면서도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자신이 고안한 수행평가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 뿐 아니라 대학 전공 시간에 배운 교육공학 이론에 비추어 보면 오히려 양질의 평가라고 맞섰다.  - P46

반지영은 자신의 무심한 날갯짓이어떤 후폭풍을 불러와 수호를 후려쳤는지 비로소 깨달았다.
그해 말 반지영은 수호의 성적을 끝까지 고쳐 주지 않고 휴직계를 냈다. 성적을 고치지 않는 것이 수호를 향한 마지막 예의라고 굳게 믿었다. - P49

아버지는 충성하는 사람이지 사랑하는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 P58

인어 공주는 물거품이 되었지만 사라지지는 않았어.
에너지 총량의 법칙은 모든 세계에 적용되니까.
물거품은 무색무취의 공기가 되었다가 위로 올라가 별이되었어.
오리온의 활이 내려간 자리에.
혹은 전갈이 물러간 자리로,
별은 별자리의 한 점.
별자리는 이야기의 윤곽.
그러니까 별은 이야기의 원소, 사라진 한 단어, 잃어버린한마디.
인어 공주는 백지 같은 밤하늘에서 제자리를 찾았겠네.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되었겠네. 그랬으면 좋겠네.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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