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르는 초록의 불꽃 같은 나무들 사이로 구급차는 달리고, 깨어 있는 언니는 뚫어지게 창밖을 쏘아본다. 대답을 기다리듯,
무엇인가에 항의하듯. 이 소설 전체가 그렇게 질문의 상태에 놓여 있다. 응시하고 저항하며, 대답을 기다리며. - P13

열두 살에 그 사진첩을 본 이후 품게 된 나의 의문들은이런 것이었다. 인간은 어떻게 이토록 폭력적인가? 동시에 인간은 어떻게 그토록 압도적인 폭력의 반대편에 설수 있는가? 우리가 인간이라는 종에 속한다는 사실은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인간의 참혹과 존엄 사이에서, 두벼랑 사이를 잇는 불가능한 허공의 길을 건너려면 죽은자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어린 동호가 어머니의 손을 힘껏 끌고 햇빛이 비치는 쪽으로 걸었던 것처럼. - P20

이 소설의 한국어 제목은 「소년이 온다』이다. ‘온다‘는
‘오다‘라는 동사의 현재형이다. 너라고, 혹은 당신이라고2인칭으로 불리는 순간 희끄무레한 어둠 속에서 깨어난소년이 혼의 걸음걸이로 현재를 향해 다가온다. 점점 더가까이 걸어와 현재가 된다. 인간의 잔혹성과 존엄함이극한의 형태로 동시에 존재했던 시공간을 광주라고 부를때, 광주는 더 이상 한 도시를 가리키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보통명사가 된다는 것을 나는 이 책을 쓰는 동안 알게되었다. 시간과 공간을 건너 계속해서 우리에게 되돌아오는 현재형이라는 것을. 바로 지금 이 순간에도. - P21

학살에서 살아남은뒤, 사랑하는 사람의 뼈 한 조각이라도 찾아내 장례를 치르고자 싸워온 사람. 애도를 종결하지 않는 사람. 고통을품고 망각에 맞서는 사람. 작별하지 않는 사람. 평생에 걸쳐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와 온도로 끓고 있던 그녀의삶을 들여다보며 나는 묻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는 얼마나 사랑할 수 있는가? 어디까지가 우리의 한계인가? 얼마나 사랑해야 우리는 끝내 인간으로 남는 것인가? - P25

찰나 갑자기 깨달았습니다. 나와 어깨를 맞대고 선 사람들과 건너편의 저 모든 사람들이 ‘나‘로 살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저 비를 보듯 저 사람들 하나하나가 비를 보고있다. 내가 얼굴에 느끼는 습기를 저들도 감각하고 있다. 그건 수많은 일인칭들을 경험한 경이의 순간이었습니다. - P34

죽음에서 삶으로 가는 소설. 절반 죽어 있던 사람들이 생명을 얻는 소설. 바다 아래에서 촛불을 켜는소설. 어떻게 보면 좀 이상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 있는데…… 항공기 조종사가 우울증을 앓다가 아주 많은 사람들과 함께 추락해서 자살한 사건이 있었잖아요. 살아 있던 사람들을 아주 많이 살해하며 죽었어요. 그런데 절반 죽은 또 다른 사람이, 그 항공기 사건과는 정반대로, 삶으로 건너오면서 죽어 있던 많은사람들과 함께 살아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물 - P56

『작별하지 않는다』를 쓰던 과정에서 내가 구해졌다면,
그건 목적이 아니라) 부수적인 결과였을 뿐이었다.
글쓰기가 나를 밀고 생명 쪽으로 갔을 뿐이다.
날마다 정심의 마음으로 눈을 뜨던 아침들이.
고통과 사랑이 같은 밀도로 끓던 그의 하루하루가날개처럼, 불꽃처럼 펼쳐지던 순간들의 맥박이촛불을 넘겨주고 다시 넘겨받기를 반복하던 인선과 경하의 손들이 - P57

남쪽으로 비치는 햇빛을 주는 거예요. 거울로 반사시켜서.
그렇게 내 정원에는 빛이 있다.
그 빛을 먹고 자라는 나무들이 있다.
잎들이 투명하게 반짝이고 꽃들이 서서히 열린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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