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려서부터 잠자리 친구였다. 처음 만나자마자 같이 잤다. 처음 만난 날부터 아주 달콤한 잠을 잤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그녀는 그를 사랑했다. 처음 만났을 때의 잠자리 기억이 너무나감미로워서 머릿속에 거대한 사탕수수밭이 자랐다. - P25
걱정도 없고 근심도 없는 삶이었다. 거짓말에 인이 박이다 보니 진실을 경계하게 되었다. 가장 어려운 건 자신을 속여 넘기는 일이었다. 자신도 믿을 수 있어야 완전한 사기극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 P31
다. 그는 샤워를 할 때나 머리를 감을 때, 항상 가장 단순하고 향이없는 비누를 썼다. 데오도랑트나 향수, 스프레이, 로션 같은 건 없었다. 체취가 겸손하게 절을 했다. 그가 움직인 후에 이어지는 땀냄새는 죽림에 몸을 숨긴 그윽하고 조용한 나무 집 냄새였다. 그냄새를 맡고 또 맡은 그녀는 잠을 자고 싶어졌다. - P41
"거기 서서 그렇게 웃지만 말고 사실대로 말해 봐. 너희 집에거울이 없어서 도저히 내 모습을 볼 길이 없단 말이야. 네가 바로 내 거울이라고." - P41
매번 울 수는 없는 일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다른 몸에 들어가는 거였다. 그는 정액의 성분이 눈물이라서 분출해 내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분출하고 나면 울지 않아도 된다. - P73
거리의 누군가는 아코디언을 켜고, 또 누군가는창틀에 기대어 바이올린을 켰다. 밝고 경쾌한 음색이 가을의 맑고차가운 바람에 여과되어 들려오면 가슴에 시름이 쌓였다. 얼음이나 차가운 음료에 이별을 고하자 갑자기 위장이 소슬해지면서 뜨거운 핫초콜릿을 바라게 되었다. 레드 와인을 따서 한두 모금 입을 적시는 건 그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연기였고, - P74
아이는 앞에 있는 남자아이를 내려다보았다. 아이는 이 남자아이의 냄새가 무척이나 좋았다. 새하얀 와이셔츠 밑에서 옅은흙과 풀밭의 향기가 났다. 여자아이의 눈길이 남자아이의 팔꿈치에 멈췄다. 팔꿈치 주름에 흙이 숨겨져 있었다. 마치 지도 같았다. 대륙도 있고 바다도 있고 섬들도 있었다. 한참을 내려다보다가 손가락을 뻗어 가볍게 남자아이의 팔꿈치를 가볍게 어루만져 보았다. 한참을 그러고 있자니 눈이 빽빽했다. 여자아이는 눈을 비비면서 "잘 자." 하고 인사를 건네고는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남자아이의 잠은 연기였다. 하지만 여자아이는 정말로 잤다. 신속하게 깊은 잠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침대 위에서 두 아이가 자는 장면은 너무나 조용했다. 감독은 하루종일 머리가 아팠는데, 매트리스 위에서 두 아이가 자는 모습을 보다 보니 갑자기 자신도 불을 끄고 자고 싶어졌다. - P82
"안심 매트리스를 만나면 함께 좋은 꿈을 꾸게 됩니다. 하하하. 우리 선생님이 그러는데 어린애가 야한 광고를 찍었대. 남자아이와 함께 침대에 올라갔다면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말이야! 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여기서 말하는 꿈은 춘몽(春夢)이래. 정말창피한 거잖아! 앞으로 누가 이런 애를 데려가겠어! 크크큭." - P102
광고 속 여자아이는 진한 황금빛 꿀처럼 달콤한 잠을 자고 있었다. 광고 밖의 여자아이는 광고가 방영된 뒤로 심각한 불면증에 시달렸다. 침대에 누웠다하면 학교 아이들이 놀리는 웃음소리가 들리고 목에 빨간 발진이번졌다. 엄마와 함께 버스를 기다리다가 버스 문에 자신의 사진이붙어 있는 걸 본 적이 있었다. 누군가 자기 얼굴에 검정 펜으로 괴상한 것을 그려놓았다. 당시 그녀는 그 어설픈 그림 속의 괴상한물체들이 남성의 성기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해할 수 없는건 왜 자신의 얼굴에만 그런 그림을 그리고 옆에 있는 남자아이의얼굴에는 아무것도 안 그리는가 하는 것이었다. 모두 그녀가 남자랑 같이 잔 게 구역질나고 변태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 P104
"정말 대단하다. 이렇게 어린 나이에 예쁜 여학생과 함께 자다니. 선생님이 너한테서 한 수 배워야 할 것 같다." 남자 선생님은 몇 달치 월급을 모아 마침내 안심 매트리스를 샀다. 여기저기 다니면서 맞선을 봤지만 여전히 외로운 잠자리를 지켜야 했고 늙을 때까지 쉬 잠들지 못했다. 그 남자아이는 지금 파리 길거리에서 주워온 매트리스 위에서 잠을 자고 있다. - P108
보니 적지 않은 영화의 결말을 알 수 없게 되었다. 상상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른바 결말이라는 게 정말 있기는 할까. 왜 사람들은 영화를 볼 때 결말을 갈구할까. 사람들은 화해나 파국, 여행의 종점, 도로의 끝, 우기의 끝, 서설의 강림을 기대했다. 지금부터는 즐거움만 있거나 영원히 슬플 수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건 많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인생에선 원래 선명한 마침표가 없다. 종종 작별인사를 건넬 기회를 놓치고, 눈을뜨건 감건 영원히 못 보는 경우도 있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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