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약한 몸과 대비되는 풍만한 발등 선은 발레의 세계에서나 아름다운 것이지 일반인에겐 기형적으로 보일 터였다. 높이가 7센티가 넘는다는, 그래서 마지막 동작까지 드라마틱한곡선으로 완성한다는 무용수의 발등 사진을 보며 어린 수미는 제 발등에 눈물 젖은 스펀지를 테이핑하곤 했다. 그러고 보면인간이 평등하다는 건 아름다운 미신이다. 인간은 인간이라는점 외에는 평등하지 않다. 예체능을 3일만 해보면 알 수 있다. 수미는 제 아이들에게는 몸으로 평가받는 일을 시키지 않겠다고 이를 갈았다. - P37
일부 헬스 트레이너들이 마사지에 인생 상담까지 해주며 유사 연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부러울 정도였다. 필라테스는 강사도 고객도 대부분 여성이라 그런 묘한 설렘이나 긴장감으로 영업하긴 어려웠다. 그러니 여성 회원들이 동경할 만한, 마르고 탄탄한 강사의 몸 자체가 사업 전략이자 센터 인테리어 그 자체였다 - P40
도리스 레싱의 소설 속 수전에게처럼 자신에게도 19호실이 필요했다. 요가나 필라테스 같은 정적인 운동은 머릿속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스피커가 터질 듯한 음악을 들으며 정신없이 세트를반복하는 편이 나았다. 그렇게 이 헬스장이 수미의 19호실이되었다. - P40
주니와의 만남은 불가피한 것이었다. 못된 사람은 참아도 지루한 사람은 못 참으니까. 남편은표정도, 취미도 좋고 싫음도 없는 남자였다. 미식과 쇼핑에 관심이 없었고 잠자리는 수미가 눈치를 줄 때만, 그것도 정상위로. - P41
아니, 이익을 주지. 사소한 부도덕은 상냥한 부인이 되게해주니까. 그렇지 않은가. 모두에겐 풀 곳이 필요하다. 풀고 와서 우아하게 처신할 곳도 필요하다. 필연적으로 두 개의 장소와 두 개의 자아가 필요하다. 수미는 손쉽게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 P42
전문가는 그러라고 있는 거니까. 몸은 트레이너에게, 살림은 도우미에게, 교육은 학원강사에게. - P45
석진은 이럴 때의 수미를 좋아했다. 아니, 이런 여자를 차지한 자신을 좋아했다. - P6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