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깨에 앉은 아마의 흰 목덜미를 무심코 쓸어보았을 때, 새는 더 깊게 목을 수그리곤 기다리듯 가만히 있었다.
더 만져달라는 거야.
인선의 말대로 나는 그 따뜻한 목덜미를 다시 쓸어내렸다. 마치인사하듯 새가 더 깊이 목을 수그리자 인선은 웃었다.
더, 계속 쓰다듬어달라는 거야. - P141

먹을 칠하는 일은 깊은 잠을 입히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오히려 악몽을 견디는 사람들처럼 느껴지는 걸까? 칠하지 않은 생나무들은 표정도 진동도 없는 정적에 잠겨 있는데, 이 검은 나무들만이 전율을 누르고 있는 것 같다. - P145

속솜허라
동굴에서 아버지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에요.
양치잎 같은 그림자가 벽 위를 미끄러지며 소리 없이 솟아올랐다.
숨을 죽이라는 뜻이에요. 움직이지 말라는 겁니다. 아무 소리도내지 말라는 거예요.
손깍지 낀 그녀의 두 손이 풀렸다가 다시 단단히 매듭지어졌다. - P159

어둠이요.
어둠이 거의 기억의 전부예요.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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