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느끼기에 이 섬의 바람은 마치 배음처럼 언제나 깔려 있는 무엇이었다. 거세게 몰아치는 온화하게 나무를 쓸고 가든, 드물게 침묵할 때조차 그것의 존재가 느껴졌다.
- P129

새는 어떻게 됐을까.
오늘 안에 물을 줘야 살릴 수 있다고 인선은 말했다.
그런데 새들에게 오늘은 언제까진가. - P130

산 이유를 알고 싶다는 생각만 하면 불꽃 같은 게 활활 가슴에 일어서 얼어죽지 않은 것 같다고 어머니는 말씀하셨어요. 그때젖은 신발이 끝까지 마르지 않아 발가락 네 개가 떨어져나갔는데,
나중에야 그걸 알았지만 아깝지도 슬프지도 않더래요. - P133

물은 언제까지나 사라지지 않고 순환하지 않나. 그렇다면인선이 맞으며 자란 눈송이가 지금 내 얼굴에 떨어지는 눈송이가 아니란 법이 없다. 인선의 어머니가 보았다던 학교 운동장의 사람둘이 이어 떠올라 나는 무릎을 안고 있던 팔을 푼다. 무딘 콧날과눈꺼풀에 쌓인 눈을 닦아낸다. 그들의 얼굴에 쌓였던 눈과 지금내 손에 묻은 눈이 같은 것이 아니란 법이 없다. - P133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다.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 P134

모른다. 새들이 어떻게 잠들고 죽는지.
남은 빛이 사라질 때 목숨도 함께 끊어지는지.
전류 같은 생명이 새벽까지 남아 흐르기도 하는지. - P135

 칠십 년 전 이 섬의 학교 운동장에서 수백 명의 아이들과여자들과 노인들의 얼굴이 눈에 덮여 알아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암탉과 병아리들이 날개를 퍼덕이는 닭장에 흙탕물이 무섭게 차오르고 반들거리는 황동 펌프에 빗줄기가 튕겨져 나왔을 때, 그물방울들과 부스러지는 결정들과 피 어린 살얼음들이 같은 것이아니었다는 법이, 지금 내 몸에 떨어지는 눈이 그것들이 아니란법이 없다. - P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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