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을 아무리 크게 쉬어도 속이 후련해지지 않아 답답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마도 내가 아주 작은 저수지에 있는 모양이라고, 저 올챙이들처럼. 이 세계 밖에 다른 세상이 있는 거라고. 나는 거기서 왔기 때문에 여기가 답답한 거라고.
- P12

여기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닌 것 같아. 나는 이행성에 발붙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 P13

‘유치하다. 사람들이 대체 어떤 대상에 이 말을쓰는지 한참 고민한 시기가 있었다. ‘유치하다‘는 단어는 감상을 너무나 단편적으로 설명하고 작품을 납작하게 눌러버린다. 열띤 토론을 준비 중이었던 나의전의를 깡그리 소멸시키는 마법의 단어. 요즘은 많이들 쓰기 경계하는 ‘오글거린다‘만큼 막강한 단어인데 인식하지 않아 문제 삼지도 않는, 더 무서운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 P16

작품이 성숙하지않다는 뜻으로 유치하다고 평가하는 걸까? 그렇다면세상에 성숙한 작품이 있다는 것인데, 나는 성숙한작품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 작품은 시대에 따라, 읽는 이에 따라, 해석에 따라 천차만별로 평가되니까.
- P16

그러다 혼자 이런 결론을 내리기에 다다랐다.
사람들은 주인공이 감성 충만한 작품을 볼 때 ‘오글•거린다‘는 말을, 주인공이 완전한 선(善)일 때 ‘유치하다‘는 말을 쓴다.  - P16

혼자 그곳에 가고 싶었다. 아주 훌쩍, 창호지에 구멍을 뚫듯 폭, 세상을 빠져나가고 싶었다. 흔적도 없이. 이제 와 생각해보면 그때 나는 외로움에 대한 복수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 P25

바라보는 시각이 일찍 트였다. 내가 사는 이 동네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 이 동네 밖의 무수히 많은 동네와 나라가 ‘지구‘라는 별을 이룬다는 사실을 일찍 알았다. 공룡시대나 자동차, 레고보다는 지구와 지구 밖을 좀 더 궁금해한 것에는 방랑자 같았던 아빠의 몫이 컸다. - P26

그런 것들에 비해 내가 서 있는 이 집은 너무 작게 느껴졌다. 숨도 조심히 쉬어야 할 것 같았다. 어느 순간부터 하늘이 천장처럼 보였고, 그래서 뚜껑을 열고싶었다. 지구 바깥에 우주가 있다는 걸 알게 된 뒤로는 달과 별이 선명하게 보이는 밤하늘을 볼 때에야 속이 트였다. - P29

지금 되돌아보면 아마도 공황 증상이었던 것같다.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던 그 시절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아무래도 지구에, 이 차원에 잘못태어난 것 같다고, 빨리 탈출해야 할 것 같다고. - P29

고독을 타고난 아이였다(나는 사람마다 특정 감각을안고 태어난다고 생각한다. 수학적 감각, 음악적 감각등의 재능뿐만 아니라 예민한 것도, 깔끔한 것도, 몰입을 잘하는 것도 전부 가지고 태어난 감각의 영역이라 믿는다. 그래서 나의 고독은 사건으로 형성된 것이아니라 내가 가지고 태어난 기질이다. 그저 특정한 시기에 발현됐을 뿐이다. 내 유년의 고독이 아빠나 가족들 탓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때 일어난 일들과 나의 고독은 마치 순리처럼 동시에 이루어졌다. 이건 확실히 밝혀두어야겠다).  - P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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