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는 훌륭한 여행 음악이기도 하다. 바흐의 CD 한두 장이 다른 음악 몇 시간을 듣는 것보다 훨씬 더 충족감을 주며, 그 어떤 음악보다 감정적으로 효율적이어서 빈 곳을 채우거나 덧붙일 필요가 없다. 설명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바흐는 내가 어디에 있든, 어떤 삶의 방식을 택하고있든, 일하든 놀든, 잘나가든 간신히 버티는 무기력하게 뒹굴든 모든 분위기에 맞는다. 그의 음악은 해변에서 나를즐겁게 해주는 만큼이나 11월 말의 잿빛 사막 풍경 속에서도 나를 지탱해준다. 그곳에 있는 동안 베토벤, 브람스, 바그녀를 틀지 않을 이유는 백가지도 생각할 수 있었지만바흐를 물리칠 이유는 한 가지도 떠올릴 수 없었다. - P11
심야 뉴스의 어리석음, 날씨 예보 아나운서의 활기참, 살인과 교통과 퍼레이드를 분석하는 예쁜 앵커우먼의 광적인 농담이 어머니의 머리 위 벽에 반사되어어지러운 파란 형체와 관념들로 증류되었다. 불과 몇 미터떨어져 있는 널찍한 평면 스크린을 정면으로 보다 보면, 무한히 멀고 의미 없어 보이는 세계로 들어가는 그 관문을보면, 현실과 묶인 끈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 P12
어머니가 겁에 질린 명료한 정신에서 혼란을 지나 마침내 침묵으로 미끄러져 들어가던 마지막 며칠 동안, 바흐는 내가 들을 수 있던 유일한 음악이었다. 하찮아 보이거나 무미해 보이거나 삶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 유일한 음악. - P12
어린 시절 처음 음악을 발견했을 때 나는 종종 듣게 되는위대한 작곡가들에 관한 신화와 동화를 사랑하게 되었다. 모차르트가 세상에 자신의 죽음에 대한 비통함을 표현하려고 「레퀴엠 Requiem」을 작곡했다는 이야기, 로시니는 아주 게으르면서도 신동이었기 때문에 침대에서 몸을 굴려바닥에 떨어진 악보를 집어 드는 게 귀찮아 아예 새로운서곡을 쓰는 쪽을 택했다는 이야기, 하이든은 청중 가운데 지루해서 조는 속물을 깨우기 위해 「놀람교향곡 SurpriseSymphony」에서 악기들이 느닷없이 요란하게 포르티시모로연주하게 했다는 이야기. 이런 이야기들은 음악을 더 극적으로 들리게 했으며, 음악에 대한 경험을 역사라는 더 넓은 감각과 연결해주었다. - P17
바흐의음악이 슬픈 것은 바흐가 슬펐기 때문이라는 것. - P18
특히 우리가 그 음악에 감정적으로 취약할 때는 우리는 음악이 이야기를 해주기를, 단순히 청각적인 영역을 넘어서서 삶에 말을 걸어주기를 바란다. 우리를 기쁘게만 하는 음악은 거리를 두고 검토할 수 있을지 몰라도 음악이어떤 깊고 압도적인 방식으로 우리를 사로잡을 때는 학자적 양심에만 복종하기가 어렵다. - P18
여러 가지를 물어보다가 내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던 지인과도 진짜로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누고 있는 걸 깨달았다. 부모를 잃는 경험을 공유하면서 우리는 모두 유년의 해소되지 않은 찌꺼기 속으로 들어가 어떤 근본적인 방식으로 다시 아이가 된다. 인생의 거의 모든 것을 경험했다고 생각한 시기에 갑자기 이 한 가지 엄청나고 충격적인 일이 나타나는데 이것은 놀랄 만큼 새롭다. - P20
이상적으로 보자면 부모의 죽음은 우리가 죽는 것을 배우도록 돕는다. 가끔은 명시적으로 통찰을 주고 자신들의 죽음 때문에 슬퍼할 우리를 위로하여,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의 죽음이 올 때 견디기 쉬워질 것이다. - P23
하지만 어머니는 불행했고, 불행한 채로 죽었다. 성취감을 느끼지 못했고 자신의 삶이 낭비되었다는 생각에 분노했다. 그녀는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었으며, 내가 어릴 때는 내가 피아노를 칠 때 함께 바이올린을 연주하곤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바이올린을 그만두었는데, 이것은 어머니가 버린 많은 것들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고, 말년에는 이 악기를 언급하기만 해도 혐오감에 얼굴을 찌푸렸다 - P25
너의 외할아버지가실제로 딸의 꿈을 짓밟았다고 말했다. 나는 외할아버지를한번도 만난 적이 없고, 나에게 그는 주로 어머니가 구축한 신화적 인물이었지만, 마치 그가 초대도 받지 않고 불쑥 방에 들어온 것처럼 갑자기 그에게 불같은 증오를 느꼈다. 그 뒤로 어머니의 삶은 결혼과 가족 돌보기에 바쳐졌는데,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사는 여자로서는 어쩔 수 없었다. 사십대가 되어 원하는 대로 할 자유가 있었을 무렵에도 어머니는 원한과 분노를 품은 채 더럽지도 않은 집을청소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 P25
음악은 기껏해야 삶에서 더 고통스러운 것들로부터 눈을 돌리게 할 뿐이다. 우리가 음악의 힘을 위로와 혼동한다면 그것은 엉성한 사고 때문이다. - P27
바흐는 「샤콘]에서 어떤 위로도 목표로 삼지 않는다. 형식은 아치 형태로 완성되어야 하며 음악은 단조로 돌아가고 화성은 더 엉기고 텍스처terture는 더 복잡해진다. 후퇴는 없고 음악적 목적은 더 강화될 뿐이다. 음악은 어떤 화성적 꾸밈도 없이 단음 레로 끝난다. 아무것도 필요없다. 이 음악의 많은 선율은 암묵적이든 노골적이든 최종의 통일, 즉 하나의 음에 자리를 내주고, 이음은 나무 위에 팽팽하게 당겨진 33센티미터의 양 창자 또는 금속선 위에서 진동한다. - P29
피아노는 절대 어머니의 악기가 아니었다. 그 덕에 나는 숨 쉴 여지가좀 생겨 피아노를 배우고 사랑하게 되었다. 십대가 되었을때 내 피아노 솜씨는 어머니의 바이올린 솜씨보다 나아졌고 음악은 그녀의 삶보다 내 삶을 훨씬 많이 차지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내가 음악을 하도록 격려했지만, 어느 지점을 넘어서면서 나와 함께 연주하는 것을 중단했고, 그것이나는 늘 슬펐다. 결국 어머니 또한 바이올린을 치워버렸다. 연주를 요청하면 어머니는 조용한 분노의 눈으로 자신의왼손을 보았다. 마치 손이 그것만의 어떤 의지로 알 수 없는 고통을 일으키는 바람에 자신이 음악 연주와 멀어지게되기라도 한 것처럼. - P36
나이가 드는 것에 관해 합리적이고 성숙한 태도를 갖추면우리는 꿈을 버리게 된다. - P40
질 수밖에 없는 죽음과의 싸움에서는 우아하게 물러나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지만 음악은 우리 나이가 어떻든 터무니없어 보이는 끈기를 통해서만 배울 수 있으며, 인생에서 끈기는 열쇠이기도 하다. - P42
어머니가 죽은 그해에 나는 음악을 연주하는 것은 거의 포기했다. 음악을 들었고 콘서트에 갔고 새 녹음이 나오면 찾아 들었지만 몇 달 동안 피아노는 치지 않았다. 단지 바쁘다 아니다의 문제가 아니었다. 사실 ‘인생‘ 탓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 P51
바흐를 공부하는 것은 셰익스피어를 공부하는 것과약간 비슷하다. 예술적 유산의 깊이와 폭에 비할 때 믿을만한 전기적 증거는 빈약하기 짝이 없기 때문이다. - P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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