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이 흐르면 있던 벽도 허물어질 법한데, 없던 벽이 생겨났다는 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얼마나 큰 갈등과 아픔이 이 벽을 세웠는지, 다시 또 얼마나 큰 고통과 아픔이생겨날지 생각하니 마음이 참담해졌습니다. - P36

사실 자신과 타인 사이에 선을 긋고 벽을 세우는 건 인간의 본성입니다. 인간은 성장하면서 ‘나는 너와 다르다‘라는 자의식 속에서 자아가 형성되고 발전하니까요. 하지만 나와 너는 다르다고 구분 짓는 경계 행위의 끝은 어디이며, 거기에서 무엇이 남을 수 있을까요? 양파도 겉껍질만 적당히 벗겨내고 요리해야지, 자꾸 벗겨내기만 하면 눈물만 날 뿐 그 끝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 P40

그러나 현실적으로 유구한 역사 속에 얽히고설킨 맥락을 무시한, 이 같은 단순한 인식으로 그동안 반복해온 관계가 쉽게 나아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두 세계가 믿는 같은 신과 같은 조상이 인류와 후손에게 원하는 바가 이토록 오랫동안 참혹하게 전쟁과 살육을 이어가는 것일까, 하고 묻게 됩니다. 인간이그토록 전쟁과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지키고자 하는 종교적 신념이 결국 동일한 신에 대한 믿음과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라는사실에는 어딘지 모르게 허무한 비애가 있습니다. - P41

나아가 ‘바라봄‘이 늘 타인을 향한 것이라면 타인의 단점, 잘못된 점만 쉽게 보게 되어 결국 상대를 탓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래서 타인을 바라보는 만큼 더 절실히 주의를 기울여 자기 자신을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의 조화로운 질서에 관해 연구하려면 인간은 자기 자신을 보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진실하고 치열하게, 내면을 바라보는 눈앞에 등불을 켜서 들어야 합니다.  - P43

"그런데 이 아이들에게 엄마를 보여주는 일이 꼭 신이 해결해줘야 할 문제인가?‘
그렇지 않나요? 사실 신에게 도움을 청하기 전에, 또 신의 도움이 지상에 미치지 못해도 인간 스스로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 P49

그 부조리함 사이에서 그것을 ‘신앙의 신비 mysterium fidei‘로 믿고 살아가는 인간인 저는 질문하는 인간에게는 분명히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답이 온다는 것을 믿으며, ‘나는 어떠한가‘라는 질문을 해봅니다.  - P54

게 되었습니다. 실패와 실수를 마주하기 위해서는 고통스럽고 괴로웠던 그 순간을 다시 떠올려야 합니다. 한없이 작게 부서지고 무너지는 자기 자신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때는 왜 그랬을까? 그렇게 하지 않을 다른 방법은 없었나? 그게 최선이었던 걸까? 그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고통은 줄어들었을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떻게 할까? - P63

이제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은, 한 번에 잃을 수도 있는 많은 돈이 아니라 실패의 시간을 버티고 살아갈 수 있는건강한 태도와 정서일 것입니다. 실패를 마주할 수 있는 용기와 그것을 바라볼 수 있는 힘도 포함입니다. 그것을 해낸 사람은 자기가약해졌을 때 오히려 강해질 수 있음을 멈춰 섰을 때 더 멀리 나아갈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 P65

유한한 존재인 인간은 영적인 존재를 통해 영원과 소통하기를 갈망합니다. 고대시대부터 생각해보면 그 대상은 때로 나무이기도 했고, 바람이나 태양, 달과 벌이기도 했으며, 또 유일신이기도했습니다. 인간은 언제나 자신의 바람과 갈망, 평화를 기원하고 기도할 대상을 필요로 합니다.  - P72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가고, 로마에서 유학하던 중에도 내내 마치 전장 속에 있는 것 같았지만, 그때도 현실적으로 제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냉정하게 구분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공부만이 유일하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었고, 그 외의문제는 제가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었어요. 무엇보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람‘이었습니다. 가까운 친구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실은나의 마음과 달랐고, 고통스러운 시기에 잠시 기댈 수 있는 가족이없다는 사실이 참 마음 아팠습니다. - P77

합법적인 관계 안에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들, 육체적으로나정신적으로 불편한 사람들, 사회적으로 소외받은 이들처럼 우리사회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어려움과 고통에 직면한 이들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이들을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 두려는 경향이 있어요.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아닙니다. - P84

시인의 수업은 종교인이나 신학자에 의해 비난받지 말아야 함을 알려준다. 왜냐하면 시인의 수업은 비르길리우스 Virgilius 의<파르테니아스Parthenias>라는 제목에서 발췌한 시들의 숨겨진의미를 열어주기 때문이다. (・・・) 사실 시학은 결코 신학에 반대되는 것이 아니다. 이상하게 여겨지는가? 신학은 거의 신에관한 시학이라고 말할 수 있다.  - P87

신에게 드리는 기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신에게 많은 것을 원하고 바라면서 기도합니다. 하지만 자신이 어떤미래를 희망하는지, 어디로 가야 할지 정확히 방향을 모르면 올바른 기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타인에게 무언가를 갈구하기 전에자신이 무엇을 희망하는지, 그 희망의 방향성이 맞는지, 그것을 위해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거기에서 나아가 신에게무엇을 어떻게 청해야 하는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되묻고 성찰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봅니다. - P97

 예전처럼 종교 행사에 참석할수 없는 상황에서 많은 이들이 자기 신앙을 지켜나가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고, 일상에서 전보다 더 내적 평화를 가지고 충만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켜야 할 교리에 매여서 내적으로 자기 자신과 자기의 신앙을 깊이 들여다볼 수없었던 사람에게는 지금 이 시간이 진정한 신앙에 초대된 시간이아니었을까요?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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