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이 이렇게 잔인했다. 알겠느냐?
"네." 나는 대답했다.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다. 꿈을 꾸는바람에 눈이 침침하고 충혈됐다고, 비명을 삼키느라 목구멍이 아프다고, 밤새도록 잠 못 이루고 하늘 위에서 이동하는 별들만 바라보고있다고.
"이곳에 온 것을 환영한다. 너는 그래도 훌륭한 남자로 성장할 수있을지 모른다." 그가 위로랍시고 한 말이었다. - P41

펠레우스는 코를 문지르며 생각에 잠겼다. "이 아이는 오점을 남기고 추방당한 아이다. 네 평판에 하등 도움이 될 게 없어."
"제게 도움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아킬레우스가 말했다. 거만하게 또는 으스대며 한 말이 아니었다. 그냥 솔직하게 한 말이었다. - P50

알고 보니 그는 보기보다 근엄하지 않았다. 차분하고 평온한 겉모습 밑에 장난기 가득하고 보석처럼 다각도로 반짝이는 면모가 숨어있었다. 자기에게 불리한 놀이를 하고, 눈을 감고서 이런저런 것들을받고, 넘지 못할 높이의 침대나 의자를 뛰어넘겠다고 나서는 걸 좋아했다. 그가 미소를 지으면 눈가가 불 앞에 갖다댄 나뭇잎처럼 쭈글쭈글해졌다.
그 자신이 불꽃인 듯했다. 그렇게 반짝반짝 빛나고 시선을 끌었다. 자다 일어나서 머리는 산발이고 잠기운에 얼굴은 엉망진창일 때조차 매력이 넘쳤다. 가까이서 보면 그의 발은 거의 인간의 발이라고할 수 없었다. 발가락이 시작되는 도톰한 부분은 완벽했고 힘줄은 리라 현처럼 은은하게 빛났다. 발바닥은 분홍색이지만 어디든 맨발로다녔기 때문에 뒤꿈치는 하얗게 굳은살이 박였다. 그의 아버지는 백단과 석류 향이 나는 향유로 뒤꿈치를 문지르게 했다. - P57

 그는고역스러운 인간의 난도질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 그의 아버지가 남들 앞에서 대전을 하지 못하게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세상에 이런 차원이 존재한다면 어떤 인간이 자신의 능력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겠는가. - P60

그렇게 아름다운 인물에게 진 것을 어느 누가 부끄럽게 여기겠는가. 그가 이기는 것을, 그가 발바닥을 번뜩이며 모래사장을 박차는 것을, 어깨를위아래로 들썩이며 소금물을 가르는 것을 구경하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 P64

"응." 그는 잠깐 아무 말 없이 생각에 잠겼다. "글쎄." 그는 결국 했던 말을 반복했다. "화가 났을 것 같아." 그는 눈을 감고 나뭇가지에 머리를 기댔다. 초록색 참나무 이파리가 왕관처럼 그의 머리를 감쌌다. - P65

나는 미세하게 그의 쪽으로 몸을 움직인다. 꼭 폭포에서 뛰어내리는 듯한 기분이다. 그때까지만해도 나는 뭘 할 생각인지 알지 못한다.
내가 몸을 기울이자 우리의 입술이 어색하게 맞닿는다. 부드럽고 둥글고 꽃가루가 잔뜩 묻은 꿀벌의 통통한 몸통 같은 느낌이다. 그의 입술맛이 느껴진다. 뜨겁고 후식으로 먹은 꿀 때문에 달짝지근하다. 내뱃속이 떨리고 따뜻한 희열 한 방울이 살갗 아래로 번진다. 한번 더내 욕망의 강도와 그 욕망이 꽃을 피우는 속도에 나는 충격을 받는다. 나는 움찔하며 얼른 몸을 뗀다. 오후 햇살로 둘러싸인 그의 얼굴과반쯤 하다 만 입맞춤으로 살짝 벌어진 그의 입술을 볼 수 있는 시간이한 순간, 딱 한 순간 주어진다. 그는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뜬다. - P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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