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시 옛날 과일들은 나 맛없는 거 아냐? 저번에 복원한 토마토도 좀 별로였잖아."
"21세기 사람들은 우리랑 입맛이 달랐나보죠. 그때 이런 걸좋은 과일로 쳤나봐요."
- P27

해월은 대표적인 폐허 도시 중 하나였다. 한때 한국의 최대 로봇 생산지였고, 분지 특성상 돔을 건설하기 수월해서 더스트 폴직후 가장 먼저 대피용 돔 시티로 지정된 곳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계들의 집단 오류로 도시 전체가 폐허로 변한 이후에는 로봇들의 공동묘지가 되었다가, 재건 이후 몰려온 불법 발굴업자들에게 파헤쳐져 이제는 거대한 고철 쓰레기장이 되었다. 몇 년전부터는 복원 사업을 진행하는 건설업자들을 상대로 운영하는식당과 숙박업소들이 해월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띄엄띄엄 세워졌다.
- P47

 이제사람들에게 과학이란 더스트라는 재난 속에서 인류를 구한 위대한 기적이었고, 재건 이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해줄 도구였다. 그 외의 연구란 보통 사람들에게는 별 가치가 없었다.
그럼에도 더스트생태학을 선택한 연구원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이 분야에 대한 애정도 높았다. 하지만 왜 하필 이미 사라지고 없는 ‘더스트‘와 관련된 생태학을선택했느냐고 물으면 딱히 이렇다 할 이유가 없는 사람이 더 많을 터였다.
- P56

"더스트 시대에는 이타적인 사람들일수록 살아남기 어려웠어.
우리는 살아남은 사람들의 후손이니까, 우리 부모나 조부모 세대 중 선량하게만 살아온 사람들은 찾기 힘들겠지. 다들 조금씩은 다른 사람의 죽음을 딛고 살아남았어. 그런데 그중에서도 나서서 남들을 짓밟았던 이들이 공헌자로 존경을 받고 있다고,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거든. - P63

게까지 거슬러 올라갔고, 결국은 더스트 이후에 태어난 모든 사람에게는 원죄가 있는 것인가 하는, 심오한 생각에 빠져들었다.
- P64

"가만히 들여다보면 재밌지. 정적이면서 아주 역동적이야. 나는 이 정원에 손을 안 대는데도, 자신들만의 균형을 절묘하게 이루고 있지. 참 흥미로운 존재들이야."
- P71

"나도 어느 순간 깨달았지. 싫은 놈들이 망해버려야지, 세계가 다 망할 필요는 없다고, 그때부터 나는 오래 살아서, 절대 망하지 않겠다고 결심했단다. 그 대신 싫은 놈들이 망하는 꼴을 꼭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지."
"성공하셨나요?"
"글쎄. 그런 것 같지는 않아. 그놈들도 아직 잘 살고 있는 걸보면 말이야.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덕분에 살아가며 다른 좋은것들을 많이 볼 수 있었지. 전부 망해버렸다면 아마도 못 봤을것들이지."
- P77

아영은 그렇게 느리고 꾸물거리는 것들이 멀리 퍼져 나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이 좋았다.
천천히 잠식하지만 강력한 것들, 제대로 살피지 않으면 정원을다 뒤덮어버리는 식물처럼, 그런 생물들에는 무시무시한 힘과놀라운 생명력이, 기묘한 이야기들이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아영은 어린 시절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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