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하는 모든 일은 기억이지만 같이 할 때는 추억이 된다는 이야기를 감탄도 투덜거림도, 내적 독백으로 삼킬 만큼 삼켜본 뒤에는 입 밖에 내서 확인하고 싶어진다. - P18
무엇보다 결흔하지 않아서 가장 다행인 점은 누군가의 며느리로 살지 않아도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사랑받는 딸로, 유능한 직업인이자 자유로운 개인으로 살아가던 여자들은 며느리라는 관계에 놓이는 순간 갑자기 신분이 몇 계단은 추락하는 것 같다. 두려운 점은 며느리 노릇을 스스로 신나서 열심히 할 것 같은 기질이 나에게도 내재되어 있다는 것이다. - P50
대출을 얻고 회사를 접는 바람에 시작된 ‘닥치는 대로 일하기‘가 생각지도 못한 곳으로 나를 데려온 셈이다. 여러모로 나에겐 행운을 가져온 집이 아닐 수 없다. - P63
"정말 값진 보석은 사막 한복판에숨겨져 있어도 세상에 나오는 법이에요. 상인들이 어떻게든 찾아 내서 값을 지불하고 손에 넣거든." 여자가 상품이 아니라 자기 의지와 취향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은 그에게 중요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이런 이야기들은 이상하게 면전에서는 반박할 타이밍을놓치고 집에 돌아와서야 혼자 대꾸할 말들이 떠오르곤 한다. 여자가 거래 대상인 물건인가요? 선택의 주체인 인간인데? 이 이야기에서 그 여자의 생각은 어디에 있죠? - P81
훨씬 타격이 컸던 이유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진실을 품고 있기때문이다. 아무것도 못 버리는 호더 할머니가 되어 쓰레기를 끌어안고 사는 모습은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미래의 모습이다. - P95
도울 수 있다는 기쁜 마음에 자발적으로 했던 거지만 마음이 지치자 그 모든 것이 짜증과 분노로 돌아왔다. 사람이 너무 애쓰면 안되는 법이다.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지만 저 깊은 곳에선 상대와 나에게 제 손으로 짐을 지우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 P119
엄마에게 음식이란 단지 가족을 위한 희생만이 아니다. 상대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표현하는 방식이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는 즐거움이고, 부엌을 관리하고 다스리는 고도의 경영이자, 무뚝뚝한 자식과 대화하는 매개이기도 하다. 음식을 싸주고 먹이는 대상이 늘어날수록 엄마의 세계도 함께 넓어져왔다. - P153
"젊은 여자둘이 사는 집이라서 만만했나 보네." 딱히 젊은 나이는 아니지만 결혼해서 아이가 있는 게 아니라는 카테고리로 아마 그렇게 분류되는 걸 테다. 고작 일주일에 네 시간 일을 부탁하면서 감시하는뉘앙스는 주고 싶지 않아서 과일이나 시원한 물을 챙겨드리고 편하게 일하시라 집을 비워뒀는데, 결과적으로 만만하게 보인 걸까하는 자책도 좀 들었다. 혼자여도 둘이어도, 결혼 안 한 여자들에게 세상은 이런 식이다. - P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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