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이것은 순진한 생각인지도 모르겠다. 때로 죽음은 어쩔 도리 없이 이보다 더 임의적이고 흉하니까. 하지만 할머니는 마지막 순간에 평화롭게 존엄을 지키면서 돌아가셨고, 나는 우리 모두가 마땅히 그래야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러는 사람은 너무 적다고 생각한다.
- P264

과거의 나들, 과거의 불안들, 과거의 삶들이 걸려 있는 옷걸이들, 미니스커트도 10여 벌 있다. ‘나는 정말 초라한 인간인 것 같지만 그래도 다리는 예쁘니까‘ 시절에 입었던 옷들이다. 실크 블라우스도 잔뜩 있는데, 한 번도 입지 않은 것도 많다. ‘나는 옷 입는 재주가 정말 없지만 그래도 소재 취향은 좋으니까‘ 시절에 샀던 옷들이다 - P304

 요즘은 그렇게까진 하지 않지만, 그래도 종중 그렇게 하고 싶은 유혹과 압박을 느낀다. 근육을 혹사함으로써다른 상태가 되고 싶은 바람, 그와 더불어 충분함에 대한 의문으로괴로워하는 마음마저 없애버리고 싶은 바람이다. 운동은 얼마나열심히 해야 충분할까? 얼마나 자주 해야 충분할까? 쾌락을 느끼기 위해서는 얼마만큼의 고통이 필요할까?
- P311

좋은 노 젓기만큼 좋은 것은 여전히 없다. 물이 잔잔하고, 공기가 시원하고, 육체적 수고와 정신적 보상이 딱 알맞게 조합될 만한 조건이 갖춰진 때에 하는 노 젓기. 하지만 나는 운동과의 관계가 지금보다 덜 광적이었으면 좋겠고, 죄책감에 덜 휘둘렸으면 좋겠다. 덜 의무적이었으면 좋겠다. 끔찍한 날? 노를 젓지 말아야 한다. 운동으로 해소될 수 없는 감정들이 들끓는 날? 다른 대처 방법을 찾아봐야 한다.
- P312

사실 나는 걷기를 운동으로 쳐주지 않는 사람이었다. 아파야 운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제 이런 생각이 든다. 아마 처음 떠올리는 생각인 듯한데, 우리의 마음 또한 여러 면에서 하나의 근육이라는 것, 그리고 그것은 체육관에서 운동시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체육관 밖에서도 돌봐야 하는 근육이라는것이다.
- P313

 내가 내 팔에서 느끼는 만족은 전적으로 사적인 것이고, 이 점이 그 만족감을 특히 의미 있게 만들어준다. 몸매에 관한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나 자신의 열정과 어떤 일을 할 줄 아는 능력들에서 비롯한 미적 기쁨, 안에서 나와 밖으로 드러난 아름다움, 날개가 된 나의 팔, 이것이 바로 해방의 정의라고, 나는 믿는다.
- P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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