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첫 난제는 내가 여성이냐, 남성이냐는 거였다. - P127
세상이 이렇게 얼렁뚱땅 생겼다는 걸 엄마를 통해배웠다. 세상은 치밀해 보이지만 사실 대체로 엉성하고 얼렁뚱땅 넘어간다는 것을. - P131
심라현, 엄마 말 잘 들어. ‘원래 그런 건 없어. 당연한 것도 없고, 그러니까 애들이 당연하다거나 네가 이상한 거라고 하는 거 다 듣지 마. 그거 다 너희가 아직어려서 상대방 상처 주려고 하는 말이니까. 알겠지? - P135
사람들은 가끔 이유 없이 누군가를 미워해. 그냥 상처 주고 싶어 해. 그러니까 저 사람이 왜 나에게 상처를 주려는지 네가 생각할 필요 없어. - P136
엄마는 그날 배꼽 외에 더 많은 비밀을 내게 알려주었다. 내게 생식기가 없다는 거였다. 그전까지 나는내가 여자인 줄 알았다. 엄마가 딸이라고 불렀으니까. 하지만 그건 그저 딸이 더 좋다는 엄마의 취향일 뿐이었다. - P138
언니를 만나는 동안은 오롯이 행복했다. 아는 것도없으면서 사랑을 속삭였던 민혁이와의 만남을 제외하고 그렇게 사랑이 행복으로만 설명 가능했던 것은 내인생에서 언니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언니와 헤어지고, 엄마는 언제든 다시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거라고 위로했지만 거짓말이었다. 그런 사랑은 살면서 딱 한 번만 온다. 아예 안 올 수도 있고, 그런 사랑을 했다는 것에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게 인생이다. - P153
내 고민은 오롯이 ‘내 몸에 대한 것이었지만 엄마는 한결같이 그 문제에 대해 심드렁했다. 어쨌든 너는 이 세상에 있잖아, 그런데 무슨 진실이 더 필요해? 엄마의 이런 태도에 짜증이 나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할말이 없었다. - P159
엄마는 세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은 다 이해한다고말해놓고 막상 다른 존재를 마주하면 본능적인 두려움에 도망친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선배는 도망갔다가다시 돌아올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P169
나는 내 몸의 난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어떤 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어느 한순간은 무엇이라도 다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지금은 굳이 나를 무엇으로든 규명하지 않으려고 한다. 나는 무엇도 되고 무엇도 되지 못하고 아무것도되지 않아도 된다. - P173
나는 라오의 비늘조각을 발견한 후에야, 엄마의말을 인정했다. 세상은 다양한데 모두가 다양하지 않은 착하고 있다는 걸 말이다. - P183
내가 처음으로 쓴 시나리오를 읽었던 날에도 엄마는 주인공들이 할 일이없어 그런다며 바쁜 일을 시키라고 했다. 그렇게 엄마말을 따랐다가 미련 없이 갈 길 간 주인공들이 얼마나많았던가. - P193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건 슬픈 일이지만 사실 그렇게슬프지도 않아." 엄마가 갑자기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걸까. "결국,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걸 잊지 말아야지. 그걸잊으면 슬퍼지는 거야." - P194
"썩 믿기지는 않죠? 이해해요. 그게 당연한 반응이에요. 지구의 주인들은 낯선 존재를 오래도록 상상해왔지만 받아들일 준비는 전혀 되어 있지 않죠. 이 드넓은 우주에 사는 생명체 중 지구만 그래요. 폐쇄적이 면서도 기대를 감추지 못하는, 아주 특이한 성향이죠. 그러니까 당신도 믿어도 되고 믿지 않아도 돼요. 믿음에 무게를 부여하지 않아도 돼요.. 답을 선택할 필요도없고요." - P202
라오는 그 말을 묵묵히 들었다. 예전부터 느꼈지만 사분한 사람이었다. 바람 없는 실내에 켜진 촛불 같은 느낌이랄까. 그렇다고 따뜻한 느낌은 아니었다. 온도를 따지자면 너무 차가워서 따뜻하다고 착각하는 정도. - P205
"그게 뭐가 중요해요. 지구의 절반은 외계인이에요.. 모두가 다 사람인 척하고 있을 뿐이라고요." "웃긴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이건 생각보다 중요해요. 그걸 알아야 해요. 이 지구에 같은 인간은 없어요. 모두가 다 서로에게 외계인인 걸, 모두가 같은 사람인 척하고 있을 뿐이라는 걸요." - P207
"라현아, 끊임없이 사랑을 해, 꼭 불타오르는 사랑이 아니어도 돼, 함께 있을 때 편안한 존재를 만나, 그사람이 우주를 가로질러서라도 너를 찾아올 사랑이니까." "응. 그럴게." "너는 지구인이니까. 네가 이곳에서 태어났으니까. 지구인일 수도 있고 외계인일 수도 있지만 그건 걱정마. 이곳에 있는 모두가 서로에게 외계인이니까." "응, 알겠어." "결국 너는 너야. 끝까지 무엇이라고 굳이 규정하지않아도 돼." - P222
이 사랑은 어떤 물질로 이루어진 사랑일까. 나를 꽉끌어안은,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이 미적지근한 온도의 사랑은, 엄마가 내게 마지막으로 알려준 것은 온도였다. 이 온도를 기억하고 있다가, 이런 온도의 존재를 만나야 한다고. - P222
도아는 그대로였다. 떠났을 때 모습과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나는 20년을 기다렸지만 이 애로서는 고작 몇 년 만에 내게 돌아온 것이다. - P240
도아는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었지만 다른 비행사는 혈액에까지 이미 암이 퍼져 있었다. 우주를 함부로 휘젓고 다닌 죄일까. 보통의 즉음보다도 훨씬 지리멸렬하다. - P248
괴로운 순간은 길게, 행복한 순간은 거짓이었던 것처럼 만드는 놈이다. - P248
내가 그토록 간절히 바라던 사람이 돌아왔다. 하필네가 있던 곳이 우주여서 나는 하늘을 바라볼 때마다. 네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내가 숨 쉬는 모든 곳이 네 아래에 있었다 - P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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