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본다고 믿는 것을 쓰는 게 아니라 믿는 것만 본다. 그래서 보는 것만 쓸 수 있다고. - P11
지평선에 별이 닿아 있었다. 은하수가 흘렀고에 별이 깔려 있었지. 나한테 쏟아지지 않을까 걱정될 만큼, 할 수만 있다면 평생 그렇게 누워 별만 보고싶었다. 마치 나에게 우주가 말을 거는 것 같았어. - P11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말한 사막의 밤하늘보다 그 밤하늘의 별이 우리에게 빛으로 닿을 때까지 얼마만큼 오랜 시간 고독한 우주를 가로질렀는지 따위를 더 생각했다. 이 고독도 철저히 지구에서 바라보는 내 입장일지도 모르지만, 빛은 숨 가쁘게돌아가는 우주를 정신없이 가로질렀을 테지. 이렇게 - P12
인류가 방관하고 들이건 발암물질이 결국 암, 결핵, 뇌종양, 뇌출혈, 심장병 등 다양한 형태로 변이되었으니 체기능부전증이라기보다 모두가 각자의 병에 걸려 죽은 것과 다름 없었다. - P17
약을 꾸준히 복용하는 것과 외출할 때 방독면과 모자를 쓰는 것만이 증상을 지연시키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더는 집베란다에서 창문을 열고 하늘을 바라볼 수 없는 시대가 이토록 빨리 도래할 줄 알았더라면 조금 더 자주하늘을 바라봤을 것이다. - P17
리윙은 그즈음 만났다. 홍콩에서 교환학생으로온 리윙에게 내가 던진 첫 질문은 이랬다. 모국어로 들어도 이해 못 할 물리를 왜 외국어로 배우러 온 거야? 리윙은 유독 뾰족한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홍콩보다 한국의 하늘이 그나마 깨끗하거든. 나는 어이가 없어 웃었는데, 홍콩 하늘이나 한국 하늘이나 도긴개긴이었다. 극지방으로 가지 않는 이상이제 지구 어디에서도 맑은 하늘은 기대할 수 없었다. - P18
우주의 입장에서 보자면 지구는 그 많은 행성들 중어쩌다 생긴 하나에 불과했고, 그중에서도 아주 작은행성이었으며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다고 해도 별 상관 없는 행성이었다. 그리고 인간은 그 안에서 존재의이유조차 알 수 없도록 우연히 생긴 생명체였다. 사랑과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만든 것은 인간이다. 이 땅을외롭게 만든 것은 오롯이 인간의 짓이라는 걸 상기할때마다 나는 그저 이 행성을 떠나야만 그 외로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 P21
리윙은 뒷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별다른 말없이 나를 기다렸다. 하지만 나는 리윙이 기대하는 특별한 이유를 댈 수 없었다. 나는 이유 없이 계속해서우주에 대한 갈증을 느꼈다. 우주로, 지구 밖으로 나가고 싶었고 설령 그 이유가 외계 생명과의 조우라거나 테라포밍을 위한 일이라도 상관 없었다. - P29
외롭구나. 외로움을 이겨낼 수 없을 때 사람이 덤덤해지는구나. - P31
아버지는 도로가 없는 우주를 어떻게 달리느냐고물었다. 정말로 궁금해 물은 것은 아니겠지. 영원히 젊을 것 같던 아버지는 어느새 머리가 전부 새하얗게셌고 얼굴에 검버섯이 가득해졌다. 바다를 항해하는 것과 같아요. 바다에도 도로는 없지만 배가 나아갈 길을 알려주잖아요. - P47
아침 클래식 음악을 듣고 교양프로그램을 시청했으며일주일에 한 번씩은 꼭 전시회를 구경했다. 건강한 정신을 가진 남자만이 아버지가 될 자격을 가질 수 있었다. 아주 예전에는 이런 절차 없이도 누구나 아버지가될 수 있었다고 들었다. 좋은 시절이었을 것이다. 무분별한 시절이기도 했겠지만, 그때 모든 남자는 노력없이 아버지가 될 수 있음을 감사하게 여겼을까? - P51
"당신이 아버지‘가 된다는 서약서에 서명한 자료입니다. 당신의 심장을 더 나이 들기 전에 보관한다면 30년 후 당신의 아이에게 기증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 아이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내걸 수 있다는 서약 "아, 아니! 잠시만요!" 그가 다급하게 소리치며 일어섰다. 그의 행동을 본두 경호원이 총구를 들었다. 저들이 자신을 이 방 밖으로 살려서 내보낼 생각이 없다는 걸 그는 뒤늦게야깨달았다. - P54
"한국 며느리는 식탁을 엎어야 한다는 말이 있어. 대체로 뭘 못 하게 하거든. 그러니까 그냥 식탁을 엎어버리고 나와야 한다는 말이야." - P83
바이러스가 얼마나 교묘하고 재빠르게 몸을 바꾸고 인간을 속이는지, 해마다 얼마나 많은 바이러스가 새로 생겨나고 생명과 함께 살아가는지 사람들은 잘 몰라. 생명의 유전자가 바이러스를 통해 유전체에 들어온 거라면, 그래서 결국 지구의모든 생명체가 뒤섞여 있는 거라면 사실 아주 멀리서바라볼 때 지구 역시 하나의 바이러스에 불과할지도몰라. 더 웃긴 건 도대체 이 바이러스가 언제부터, 어디에서 왜 생겨났는지 모른다는 거야. 그래서 어떤 이는 바이러스가 사는 차원이 우리와 다를 거라는 이야기를 해, 우리보다 더 높은 거지. 그러면 바이러스는우주를 알고 있는 진정한 우주의 주인일지도 몰라." - P101
"우주에는 어쩐 일로 왔어?" 일을 묻는 거라면 승혜가 어떤 역할로 왔는지 주연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연의 질문은 ‘왜지구를 도망쳐 나왔느냐‘ 라고 해석하는 게 옳았다. "지구가 너무 어지러워서." - P103
때때로 말도 안 되는 직감을 하는 이유는무엇일까. 이를테면 네가 죽지 않고 끊임없이 해수면밑으로 떨어지고 있을 거라는 예감. 그러다 돌연 언젠가 다시 만날 거라는 불가능의 확신, 우리의 이별이지구에서만 일어난 일일 거라는, 스스로를 향한 같장은 위안까지도. - P108
남극의 해저에 몸을 웅크리고 잠들어 있을 기주를 상상했다. 아이의 시체를 품에안아보지 못했으므로 그렇게 기주는 살지도, 죽지도않은 존재가 되었다. - P111
레시는 이 바다의 생명입니다. 이곳에 살고, 이곳에서 살아가야 할이 생태계의 주인입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레시를 지구로 옮길 권리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제발 더는 인간이 행성의 주인을 내쫓는 잘못을 저지르지 말아주십시오. 레시는 지구로 간다면 살지 못할 것입니다. - P122
인간은 차츰차츰 잃었던 바다를 되찾기 위해 전력을 다할 것이라밝혔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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