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제대로 화내고 싶다 - 철학자들이 알려주는 화의 잠재력
오가와 히토시 지음, 이서연 옮김 / 비전비엔피(비전코리아,애플북스) / 2013년 9월
평점 :
절판


나는 어머니에게 이런 말을 자주 들었다. “누가 이씨 집안 아니랄까봐” 즉 화만 내면 집안들 들먹이신다. 우리 조부님부터 아버님, 형님까지 ‘화’를 잘 내는 편이고, 무엇보다 내가 잘 ‘화’를 낸다. 아내도 내가 ‘화’를 내는 것을 아주 싫어하며, 특히 소리 좀 지르지 말라고 한다. 처음 10년은 말도 없던 아내가 이젠 도리어 더 큰 소리를 친다. 그러면 내가 무섭다. 그런데 지난 날을 돌아보니, 특히 아이들에게 큰 소리를 친 경우 아이들이 경각심을 갖고 잘 받았다는 것을 보게 된다. 상처 받고 놀란 일들도 있었겠지만 아이들이 바로 크는 기회도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며 ‘화’는 무조건 나쁜게 아니라 잘 내는게 중요하구나 생각이 되었다. 그런데 그 ‘화’라는게 그렇게 잘 절제되면 화라고 하겠는가? 잘 조절해서 내기가 그렇게 쉬운가? 그렇지만 이 책에 지혜가 있을 것 같다.

 

저자는 화를 대단히 긍정적으로 보면서 화를 접근하고 있다. “화는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다.” 중용이란 ‘가장 바람직한 상태’를 말한다. 화의 관점에서 볼 때 중용은 ‘온화’를 의미한다. 화내는 방법을 바람직하게 여기고 잘 화내는 사람을 ‘온화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화’의 잠재력이란 더 이상 방도가 없다고 생각될 때 단념하지 않고 과감히 난관을 돌파하는 능력이자 마음의 안전지기로서 불합리한 현실에 떠밀려 상처 입은 마음을 안전하게 지키는 능력이다. 권력자는 분노하는 인간보다 순종하는 인간을 원한다. 그래서 교육을 비롯한 계몽 활동을 통해 분노를 거세하고 순종하는 인간을 만들어 내기 위해 애를 쓴다. 안타깝게도 분노라는 정상적인 감정의 일부를 빼앗겨 버린 인간은 다른 감정을 표현할 때도 적잖이 영향을 받게 된다. 기쁨도 슬픔도 즐거움도 일그러진다. 극단적일 정도로 분노를 혐오하는 현대 사회에서는 웃지 못하는 아이나 울지 못하는 어른, 즐기지 못하는 인간이 현저히 늘어나는 ‘이상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로보토미 수술’이라는 만행이 정상적인 의료 행위를 인정했던 때가 있었는데 감정을 관리하는 뇌의 일부를 잘라 내 난폭한 사람을 온순하게 만드는 수술을 했더니 다른 감정까지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

 

‘화’의 진정한 목적은 인정을 획득하는 것이다. 헤겔은 ‘다른 사람을 인정해야만 비로소 자신의 존재도 인정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상호승인의 성립이다. 친구든 부부든 싸우면 싸울수록 역설적이게도 유대가 깊어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진정한 인정이란 무엇인가? ‘상대와 함께 인격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서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의무로 삼는 모든 태도’를 의미한다. 자신의 가능성은 화로 인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로 인해 가능성이 생기고 계기가 마련된다. 화내면 손해라는 사고방식이 싹을 틔우면서 안타깝게도 현대인은 진정으로 화내지 못하는 생물이 되고 말았다. 요즘 젊은이들은 상처받을까봐 두려워 한다. 제대로 상처받은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곱게만 자라 왔다. 학교에서는 체벌이 금지되고 인권보호라는 미명 아래 온갖 공격으로부터 비껴나 있었다. 심지어 부모조차 쉽사리 참견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누군가가 자신에게 상처주려고 하면 거칠게 맞서서 어떻게든 제지하려고 한다. 즉, 이성을 잃는다.

 

‘화’는 드라이버나 컴퓨터와 같은 ‘도구’다. 도구는 바르게 사용되어야 한다. 논의하면서 줄곧 화내는 방법은 현명하지 않다. 중요한 순간에 화내야만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화내야 할 때 적절한 형태로 화내는 것, 그것이 바르게 화내는 법이다. 합당한 사정에 대해 합당한 사람에게 합당한 방식으로 합당한 시간에 합당한 사이에만 화를 낸다. 언성을 높이지 말고, 논리정연하게 화내라. 즉 내용에 ‘물론’, ‘하지만’, ‘따라서’, 등의 접속사를 많이 붙여 사용하라. ‘물론 당신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우선 인정한다. 다음 ‘하지만 이런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비판한다. 이것이 상대방을 설득하는 화내는 방법이다. 나는 내 말에 친구들이 왜 공감하지 않고 들어주지 않는지 이제야 알았다. 나는 첫째, 흥분한다. 둘째, 무조건 내 의견이 맞다고 주장한다. 셋째, 내 의견을 듣지 않으면 큰일 날 것 같이 말한다. 그러니 친구들이 들어주고 싶어도 들을 수 없는 말을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니 어찌 동의할 수 있겠는가?

 

화를 잘 내는 6가지 방법을 보자. 1)의문을 발견하는 방법, 2)문제를 제기하는 방법 3)의견을 제시하는 방법-의견이 다르므로 대립하게 된다. 하지만 어떤 의견에도 일리는 있다. 나름대로 좋은 점이나 올바른 점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양자택일보다는 양자의 장점을 채택하여 더 나은 의견을 구축하면 된다. 제3의 길을 모색한다는 것은 단순히 절충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변증법적으로 더욱 발전시켜 간다는 의미다. 화를 통해 의견을 제시할 때는 그야말로 이런 태도가 요구된다.- 4)논의를 진행하는 방법-냉철한 언어와 논리를 구사할 수 있는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냉철한 태도가 결여되면 주위를 객관적으로 살펴볼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견을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려고 한다. 자신이 먼저 진정해야 한다. 5)결론을 정리하는 방법-자신만 만족하면 아무 의미가 없다. 어디까지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 화내는 목적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모처럼 화냈다면 어떻게든 상대와 발전적 관계를 구축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6)화내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가만히 있어도 문제가 해결될 것 같은 경우에는 조용히 지켜보면서 해결되기를 기다려야 한다. 무조건 화를 내는 것이 좋은 것은 아니다. 상대가 화낼 때에는 그 페이스에 말려들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나를 더욱 성숙하게 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특히 친구 모임이나, 공식 석상에서 논쟁을 하는 방법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늘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라. 인정하라. 충분히 들어주라. 그리고 공감해 주라. 그리고 내 의견을 말하라. 그래야 설득력이 있다. 이제부터 내 말만 옳다는 생각 혹은 주장만 하지 말아야겠다. 늘 나는 나만 옳다는 생각, 나만 똑똑하다는 생각이 강하여 문제가 많은 것 같다. 좋은 책에 도움을 많이 받아 저자에게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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