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를 춤추게 하라 - 주님의 꿈을 이루어 가는 평화교회 이야기
이동현 지음 / 두란노 / 2013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동현 목사님은 개척도, 경기도 광주 그것도 아주 척박하기 그지없는 역말이란 땅에 개척을 했다. 미신과 기독교에 대한 반목, 훼방과 영적 사막에서 개척을 했다. 여유라고는 전혀 없는 물심양면의 고생, 영적 고립감까지 그야말로 아무것도 기댈 수 없는 곳에서 개척을 했다. 절망 그 자체였다. 사모님의 고생, 도와줄 수 있었건만 부모님의 단호함에 도움을 받을 수도 없었던 개척의 어려움을 철저하게 겪었다. 나도 개척 초기 아는 목사님, 친척들이 야박하리만치 도와주지 않는 것을 경험하면 홀로라는 경험을 해보았다. 내 주변에 부모님의 도움이 오히려 개척에 나약함만 심어준 결과가 된 것을 보면서 홀로서기가 이동현 목사님이나 나에게 하나님의 축복임을 고백한다. 이동현 목사님의 도시를 춤추게 한 현장에 들어가 보자.

 

이동현 목사님은 믿음, 소망, 사랑 목회를 했다고 한다. 믿음으로 10년, 소망으로 10년, 사랑으로 10년을 하겠다는 계획이었다고 한다. 10년은 오직 훈련을 시키고, 스스로도 훈련을 받는 믿음의 훈련의 시기를 겪었다. 이 믿음의 훈련이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소망의 10년, 믿음으로 훈련을 했으니 소망하는, 즉 비전을 세우고 도전하는 시기라는 것이다. 실제로 평화교회는 10년이 지난 후부터 부흥하기 시작하여 소망하고, 부흥을 이뤘다. 사랑 10년, 광주를 사랑으로 섬기는 시기가 되었다. 각종 사역팀, 봉사팀을 만들어 지역을 섬기고 있다. 아줌마축제, 장애우 섬기기, 지역의 개척 및 소형교회 섬기기, 공연 등 문화사역, 경안천 살리기 등등 수많은 사역을 하고 있다. 사역팀만 해도 203개의 평신도 사역팀이 있을 정도다.

 

평화교회는 사도행전1:8절의 사역을 한다. 즉 예루살렘, 유대, 사마리아, 땅 끝 사역이다. 즉 가까이 믿음의 성도, 이웃과 불신자, 더 나아가 멀리 이방사역, 불신자 사역까지 감당하고 있다. 이동현 목사님은 불신자들에 대한 개념을 아직 교회에 오지 않은 교회 밖의 신자로 보고 대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개척 초기부터 자전거를 타고 노인정, 장례식장, 이웃집 잔치, 아픈 성도 심방, 각 집의 담장에 손을 얹고 기도해주기(개척교회 목사가 먹을 게 없어서 뭘 훔치려고 하나 하는 오해를 받아 파출소에 호출을 받기도 함) 등등의 사역을 하였다.

 

평화교회는 아군과 적군 사역을 했다. 적군을 어떻게 하면 아군으로 만들 것인가를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임했다. 아춤마 축제를 열어 눌려 있는 아줌마들의 스트레스를 풀고, 해방감을 누리게 했다. 아줌마 축제를 위해 연초에 저금통을 하나씩 주어서 섬기게 한다. 모든 성도들이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큰 액수로도 섬겨서 수억의 축제를 넉넉히 치러낸다. 특히 참가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동참하여 각종 찬조금, 물품으로 협찬하고 있다.

 

새신자를 붙드는 세겹줄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등록한 교인은 교구 목장으로 배치된다. 두 번째로 203개 평신도 사역팀 중 자신의 은사에 따라 자원한 팀에 들어간다. 세 번째로, 출생년도에 따른 또래모임에 속한다. 전도할 때 “예수님 믿으세요. A교회로 나가세요. B교회로 나가세요” 한다. 지역에 따라 가까운 교회로 나가도록 개 교회 주의가 아닌 모든 교회가 하나다라는 개념으로 목회한다. 은퇴목사님을 섬기는 사역을 통해 은퇴 목사님들을 위로하고 있다. 아줌마축제는 광주시의 명물이 되었다. 300명의 홍보대사(평화교회 교인 200명, 불신자 100명)로 적극 홍보하고, 각종 상을 제정하여 시상한다. 지역의 관공서로부터 추천을 받아 효부상, 장한 어머니상, 모범 단체상등 상금은 200만원이나 된다.)

 

평화교회는 이제 6000명의 성도로 성장하였다. 이 힘이 단순히 이런 행사로 된 것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목사님의 기도와 열정, 고난의 훈련이 있었다. 특히 말씀을 열정적으로 전하다가 후두암이라는 판정을 받고도, 불굴의 믿음으로 전하였고, 전 성도의 기도로 기적같이 수술도 안하고 검사하러 갔다가 암이 다 사라졌다는 판정을 받기도 하였다. 개척 초기는 금요일마다 동네에 방해를 피하여 기도원으로 성도들을 이끌고 밤이 맞도록 기도의 영성으로 지금의 교회가 된 것이다. 또한 사모님의 헌신과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 뒷받침이 되었다. 평화교회의 역사는 기도와 헌신, 지역봉사와 섬김의 아름다운 조화가 된 결과다.

 

교회가 교회다워지는 지혜를 얻는다. 불신자들을 교회 밖 신자라는 개념을 가지고 끝까지 섬기고, 사랑해야겠다. 포기하지 말아야겠다. 지역을 위하여서 노래자랑도, 아줌마 축제 같은 일반적인 행사조차도 망설이지 말고 과감하게 해야겠다. 수많은 다양한 섬김과 사역팀을 가동해야겠다. 이런 교회들만 한국에 존재한다면 전도하는 일은 훨씬 더 쉬워지리라 생각된다. 요즘 ‘가나안 교인’이 많다고 한다. 즉 거꾸로 하면 ‘안나가’교인이라 한다. 이런 저런 이유로 믿기는 하는데 교회는 안 나간다고 한다. 교회가 교회다우면 출석은 물론 헌신적으로 섬기는 교인이 될 것이다. 한국 교회의 교회다움을 위해 머리를 맞대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