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닌 - 제29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하승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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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외로움이 한편으로 자유를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차별 앞에서 오롯이 성장해 나가는 그 의지의 모습은 ‘소수‘에 속한 모두에게 큰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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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기회 - 파국의 시대에 맞서기 위한 기후 전망과 전략
최재천 외 지음, 녹색전환연구소 엮음 / 북트리거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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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가장 뜨거운 여름으로 기록되었던

2023년의 여름을 보내며,

환경 관련 학자들이 '2023년은 가장 서늘했던

여름으로 기억될 것이다'라며

앞으로 더 가속화될 무더위를 무서운 말로 예고했다.

그 말이 씨앗이 되듯, 2024년은 음력 날짜로는

채 '여름'이라고 부르기도 전부터

이른 무더위에 열대야가 일찌감치 시작되었으며,

열흘 남짓하던 장마는 '최장기간'을 예상하며

벌써 며칠째 무서운 비를 내리고 있었다.

내리는 양도 전보다 많았을뿐더러,

이 비가 무서웠던 부분은 엄청난 양의 비가

단시간에 쏟아부으며 기존의 우수관, 하수처리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다는 점이다.


근처에 하천이나 산도 없고

아파트로만 이루어진 도시에 사는 나조차

같은 집(아파트)에서 20년 이상 살았지만

여태까지 느껴보지 못한 장마의 강도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단시간에 갑자기 많이 내리는 비는

빗소리도 압도적이었지만, 기존의 우수관을

감당하지 못해 고층 거주임에도 불구하고

우수관 근처로 빗물이 새면서

베란다에 물이 고이는 현상이 발생하기까지 했다.

고층에 거주하는 나도 이 정도의 불편함을 겪었는데,

저 층이나 저지대에 사는, 단층 주택에 사는

이들에게는 이 비 소식이 얼마나 무섭게

피부로 다가갔을지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바야흐로 기후 위기의 시대이다.

지구 온난화 시대를 넘어서 '끓는 지구'로 명명되는

지금의 시대는 피할 수 없는 기후 위기의 현실이

우리 삶 한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들끓는 온도로 농업에도 영향이 있을뿐더러

산업, 건강, 경제, 식품 시스템 등

우리의 모든 부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버렸는데,

'위기의 시대'라는 포괄적인 개념은 이해하고 있지만

이게 실질적으로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실천 측면에서는

모호한 부분이 있었다.


이번에 읽게 된 《기후, 기회》는 녹색전환연구소가

10명의 학자, 전문가, 연구자들이 모여

'2024 기후 전망, 10인과의 대화'를 바탕으로

진지하고 뜨겁게 나눈 이야기를 모아 책으로

엮은 것으로 우리가 마주한 기후의 현실에 대해,

또 그것이 각 분야에 펼치게 되는 영향에 대해서

심도 있게 살펴보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할 수 있도록 했다.


크게 '기후 위기가 만드는 세계'

'기후 위기와 경제사회의 대격변'

'대안의 길'로 나누어

10명의 저자들이 준비한 의견을 소개했는데,

기후 이슈에 있어서 농사나 우리가 체감하게 되는

환경적인 문제들만 주로 생각했었는데

팬데믹을 더불어 기후 위기와 건강과의 관계,

경제 및 금융과의 연결,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관련하여

기후 정의의 필요성에 대한 부분은

지금까지 보지 않았던 색다른 시선으로

기후 위기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나 기후 위기와 더불어

정치를 떨어진 문제라고 생각했었는데,

가장 쉬우면서도 참여하기 쉬운 개개인의 실천은,

이러한 시민들의 기후에 대한 의지를

실행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정치인을 뽑는다거나 그를 요구하는 거라는 점에서

무언가 구체적인 방법을 얻은 것만 같았다.

총선이나 대선 등 정치인을 뽑는 데 있어서

'기후나 환경에 대한 부분'을

고려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가?

결국 정치인들은 우리 시민들이 원하고 바라는

이야기를 가장 먼저 꺼내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늘 상기해야겠다고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생망'이라며 이미 늦었다며

이른 포기 선언을 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직접적인 행동을 하든 하지 않든

이미 우리 앞에 기후 위기는 일어나게 되어있다.

우리가 목표로 한 2030년 혹은 2050년의

목표치를 그 시간에 맞추어 달성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조금 늦어질 뿐'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몫을 다하는 것은

지구라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누구든지

후손들을 위해서 해야 할 역할이 아닌가 싶다.

기후 위기를 직면하고 마주해야만 바꾸는

어떤 삶의 전환이 아니라,

지금의 흐름을 제대로 직시하고

보다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을

즉각적으로 실행할 수 있는 의지가 무엇보다 필요하다.


길어진 장마 속에서 일상의 많은 것들이

계획과 다르게 틀어지기도, 무너지기도 한다.

당장 내가 맞은 피해가 없다고 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지구 어디선가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피해자가 되어 신음하는 언젠가 미래의

우리 모습이 될 그들을 우리가 구원해야 한다.


"이 글은 북트리거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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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
이문재 엮음 / 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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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는 종교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언가 간절히 바라는 바가 있을 때

두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한다.

무엇을 이루게 해달라기보다는

주로 원하는 것을 행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 포기하지 않을 마음,

혹은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해도

나 자신을 자책하지 않게 해달라는

스스로에 대한 다짐이자 계획 같은 느낌으로

공손히 손을 모은다.


사실 오래된 말씀은 종교적인 색을 떠나

후대의 사람들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어쩌면 그것이 최초의 교육이었을 수 있고,

깨달음에서 비롯된 이어짐 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따금씩 전해지는 기도문들을 보며

힘을 얻기도 하고, 나아갈 방법을 배우기도 하며

반성을 하기도 한다.


그런 기회에 만나보게 된 책은

이문재 시인이 엮은

《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이다.


동서고금의 모든 기도와 기도 시를 모았는데,

작자 미상의 기도를 포함해

우리에게 익숙한 시인들의 작품까지

다양한 시를 통해 간절함을 담고자 했다.


지치고 힘들 때,

먼저 그 시간을 겪은 이들의 마음이 가득 담긴

말을 듣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지만

오히려 해결책이 없기에 더욱 와닿고 좋다.

복잡했던 마음의 조각들이 그들의 말을 들으며

조금씩 풀어가는 과정에서 오는 안도감이 좋다.


과거에는 기도라는 게 나 자신에게 말하는 다짐이었고,

가까운 가족이 떠난 이후에는 그들이 수호신인 양

그들에게 털어놓는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

'나는 이런 마음이고 이런 속상함인데

나는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

어떻게 해야 할까'라고 하지만

그 기도에는 질문도 답도 필요 없다.

사실은 그저 말하고 싶은 것뿐이다.






함께 주어진 이어 쓰기 노트를 통해

마음에 들어온 시들을 차분히 옮겨 적는다.

마치 나를 위한 것만 같았던

'지혜를 구하는 기도'를 시작으로

기도라는 것에 정형된 형태가 없이

눈을 감기만 해도 기도라는 얘기는

종교적인 그것을 초월한 모두에게

들려줄 수 있는 기도이기도 했다.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어떤 욕심도

내가 나를 위한다는 것에 대한 의미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관념들을 내려놓게 해주었다.

기도의 힘이란 무릇 이런 것일까,

나를 다시 돌아보고

알고 있던 것과 다른 세상을 만나는 것일까

시를 옮겨 적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마음에 복잡할 때마다 막연한 외침 같은 기도 대신

이제는 이 책을 펼쳐보려 한다.

간절함을 담은 나의 오래된 기도로

나의 길을 밝혀보려 한다.


"이 글은 달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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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 - 현직 부산지하철 기관사의 뒤집어지는 인간관찰기
이도훈 지음 / 이야기장수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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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일어나 밥을 먹고 학교에 가거나 출근을 하는 등

하루의 시작과 끝, 그 과정에 만나는 교통수단이 있다.

그중에서도 내가 선호하는 건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이동시간 및 소요 시간에 변동이 없고

언제든 타고 내릴 수 있으며

그 속에서 마주 앉은 사람들과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을 눈에 담으며

인생 또한 즐기고 배울 수 있는 지하철이다.


지하로 연결된 긴 통로의 선로를 미끄러져가는 지하철은

매 역마다 타고 내리는 사람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사연을 품고 있는데,

늘 타고 내리기만 했지 그것을 움직이는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지 못했던 찰나에

이 열차를 움직이는 기관사의 시선에서

지하철의 이야기를 담은 책을 만났다.

바로 《이번 역은 요절복통 지하세계입니다》이다.


이 책은 부산시 지하철 2호선을 운행하는

이도훈 기관사가 쓴 책으로

제 11회 브런치북 대상 수상작이다.

브런치북에서 '마리오네트 지하철'이라는 제목으로

연재되었던 작품이 이번에 책으로 나오게 되었는데,

평소 지하철에서 제일 앞이나 뒤 칸에 탔을 때

열차를 기다리며 마주하게 되는 얼굴인

기관사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매우 흥미로웠다.


기관사석은 승객이 이용하는

일반 객실과는 분리되어 있고,

어지간해서는 얼굴을 마주하기 힘들며

정차를 하거나 이슈가 있을 때에만

방송을 통해서 목소리로만 만날 수 있는 존재다.

매일 같이 이용을 하고 있지만

마주하는 얼굴이 아니기에 '지하철'이라는 교통수단이

'사람의 손이 닿는 사람이 하는 일'이라기보다는

뭔가 기계적인 느낌의 이미지가 강했다.


이따금씩 기관사석과 맞닿아있는 객실에서

문을 통해 들리는 어떤 무전음 같은 것이나

혹은 중간 역에서 교대를 위해 문이 여닫히면서

열차에 타고 내리는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다양한 사람이 타고 내리는 만큼

사연도 사건도 사고도 많은 이 지하철에 대한 얘기는

때로는 뉴스에서 때로는 어떤 방송 사연으로

때로는 SNS나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되기도 하는데,

기관사의 시선에서 바라본 지하철의

다양한 이야기가 기관사의 업무와

또 지하철이 돌아가는 과정에 대해서 궁금했던

부분이 색다른 재미로 펼쳐지고 있었다.


작가는 자신이 기관사가 되기까지 거쳤던

여러 단계의 시험이나 과정에 대해서도

지하철 어벤저스라 불리는 합이 좋은

동료들에 대해서도,

또 지하철에서 마주하는 각양각색의

손님 유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정말 이런 사람이 있어?' 싶을 만큼

다양한 사건들은 단순히 '지하철을 운행한다'라는 것

이상으로 해야 할 몫이 많은 기관사들의

노고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최근 들어 늘어나고 있는 지하철 역사 내에서의

자살 뉴스를 보며 이로 인해 정신적인 트라우마를

호소하는 기관사들의 이야기를 좀 더

가까이에서 들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들 각자의 자리에서

자신의 몫과 책임을 다하고 있지만,

어떤 직업의 경우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나 자신보다는 타인을 생각하고

어지간한 사명감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그런 일들도 있다.

우리가 일상을 무사히 보낼 수 있도록

우리들을 열차에 싣고 옮겨주는 '지하철'이라는

교통수단이라는 이름 뒤에 숨겨진

묵묵한 노력에 감사함을 새삼스럽게 느낄 수 있었다.


당연하게만 생각하는 정시 출발, 정시 도착.

누군가의 하루 시작을 열어주고

누군가의 하루 마지막을 닫아주는

첫차 막차의 감사함 속에

시민의 안전과 편리함을 위해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기관사분들께

열차를 타고 내릴 때 수줍긴 하지만

감사의 인사라도 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재미로 시작한 지하철 이야기의 이 책이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직업에 대한 깊은 애정과

단단한 책임감으로 숙연하게 읽혀나갔다.


유난히 길게 이어지는 비 소식이 계속되는 요즈음

부디 모두에게 안전한 하루가 마무리되기를,

여닫는 문 사이 미끄러움 없이 매끄러운

평탄한 모두의 인생이 되기를 바란다.


"이 글은 이야기장수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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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
김이삭 지음 / 래빗홀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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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씩 주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공포' '두려움' '무서움' 등의 화제로 옮겨지면

'귀신을 믿느냐? 안 믿느냐?'

'혼자 있을 때 느끼는 무서움?'의

질문이 나오기 마련이다.


하얀 소복을 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린 처녀귀신이나

경직된 몸으로 부적을 붙인 채 총총 뛰는 강시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를 묻는 화장실 귀신까지

살아있지 않은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대부분이었던

어렸을 때와 다르게 그때에 비해 많이 알게 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보다는

존재하는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극대화되는 것 같다.


귀신이나 좀비 등을 소재로 한 영화보다는

실제 우리 주변에 있는 사람이 벌이는 현실적인 공포를

소재로 한 영화가 더욱 많이 다뤄지는 것처럼 말이다.


제목만으로는 전형적인 귀신의 이야기를 다룬

오컬트 물이라고 생각했던

《천지신명은 여자의 말을 듣지 않지》는

비정상 혹은 시대가 정한 중앙에 들지 않아

차별을 받았던 여성들이

그 차별 속에서도 꿋꿋하게 맞선 이야기를 통해

으스스한 호러적 재미뿐 아니라

통쾌한 해방감을 전하고 있었다.


첫 장편소설이 드라마화가 확정되었고,

장편소설, 에세이, 앤솔러지 소설집을 통해서

자신만의 확실한 색으로 다양한 활동을 해온 김이삭이

각기 다른 이야기이지만 하나의 방향을 향하는

작품들을 모아 첫 소설집을 묶어 내었다.


이번 소설집은 5가지 단편이 묶어져 있는데,

데이트 폭력 가해자를 피하여

고택에 머물던 여성의 기이한 체험담 〈성주단지〉,

학교의 금기를 어긴 여성 청소년들이

겪는 학교 괴담 〈야자 중 ×× 금지〉,

옹녀의 시점에서 다시 쓴 ‘변강쇠전’ 〈낭인전〉,

조선 시대를 배경으로 여성 혐오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오컬트 물 〈풀각시〉,

조선 후기 박해받던 천주교 신자들의 마을에서

벌이지는 괴이한 이야기 〈교우촌〉까지

각기 다른 시대적 배경과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통해 차별과 편견을 받아온 여성들이

그 보이지 않는 벽 앞에서 자신들을 어떻게 지키고

서로를 어떻게 지켜내고 있는 그 연대를 담았다.


소설 속에서 그녀들에게 공포로 다가오는 것은

보이지 않는 어떤 불가사의한 존재가 아니다.

그것들이 으스스함을 전하는 것은 분명하나,

그녀들이 두려움을 느끼고

그녀들에게 위해를 가하고자 하는 것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어떤 차별이나 비뚤어진 시선, 편견이다.

소설 속에서 그녀들은 이를 극복해 내는

자신의 이야기를 또한 담담하게 털어놓는다.

우리는 그 차별을 극복해 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후련함이나 통쾌함, 어떤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읽으며 느껴지는 불편한 감정 또한

이 차별에 가해진 불편함과 크게 다르지 않을까?


가부장적인 사회, 유교적인 분위기 속에서

여자라는 이유로 소리 없이 스러졌을 수많은 목소리들,

수많은 그녀들의 목소리는 소설 속의 주인공들을

부단히 강하게 만들고, 도왔으며, 나아가게 만들었다.


다섯 가지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풀각시〉였다.

기억을 놓아가는 할머니와 함께

할머니의 고향을 찾은 주인공.

고향에서는 헤매는 것 없이 평온한 일상을

찾은 할머니는 5개의 살이 모인 곳에서

풀과 갈대를 모아 풀각시 인형을 만든다.


늘 그것을 품고 다니던 할머니는

손녀인 나에게 '언니'라 부르며

자신이 이번에는 꼭 언니를 지키겠다며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곤 한다.

별채에 머물던 그녀와 할머니,

어느 날 뒤뜰에서 발견된 상자 속에서

나온 책자와 인형을 통해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는데,

과연 오래된 할머니의 친정집 그곳과

집안에 숨겨진 비밀은 무엇일까?

읽으며 가슴이 턱 막히기도 했고

높은 벽처럼 가로막히는 현실 속에서

과거의 그녀들과 오늘날의 그녀들이

어떻게 이 현실을 넘어설지 지켜보며

나도 모르게 주먹을 불끈 쥐고 응원을 하게 됐다.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감당해야 하고

넘어야 하는 수많은 장애물들은

많은 시간이 지난 오늘날에도 여전하지만,

그 벽을 부수고 나아간 그녀들의 이야기는

지금의 우리들에게도 '벽을 부수고 넘으라!'라며

힘을 주는 것 같았다.

성별을 지우고 읽어도 '차별'을 받는 존재들,

비정상이라 낙인이 찍힌 이들에게

그들만의 연대로 마주한 벽을 넘어서라는

큰 울림으로 다가갈 수 있겠다.


소설을 읽으며 그들이 처한 상황이 주는 두려움에

함께 으스스함을 느꼈다.

하지만 이겨낼 수 있는 두려움은 더 이상

공포로 다가오지 않는다.

우리들은 그들이 그랬던 것처럼

차별이라는 벽을 부수고 나아가

두려움을 벗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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