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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도라 허니셋은 잘 지내고 있답니다
애니 라이언스 지음, 안은주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3년 5월
평점 :
영원한 삶이 없다는 건 알지만
어쩐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건
가장 가까운 사랑하는 이들과의 이별일 것이다.
새로운 만남은 기쁨으로 가득하지만,
아무리 먹을 만큼 먹은 나이라고 해도
이별 앞에서 덤덤할 수는 없을 터.
나는 데 순서는 있어도 가는 데는 순서가 없다고 하지만
그래도 보통의 인생이라면 나이 앞에 장사없다고
가족들도 스스로도 인생의 끝에 대해서
생각하는 부분들이 있기 마련인데,
가장 가까운 최근, 내가 알고지낸
나와 가장 가까운 가족인 외할머니와의 이별은
맞이하고 싶지 않아서인지 5개월이 지난 지금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
가벼운 깜박거림인줄 알았는데,
그것을 시작으로 치매 진단을 받았던 할머니.
집에서 모시기가 힘들어져 집 근처 요양원에 모셨는데
코로나가 터지면서 지난 2년간 면회도 손에 꼽고
제대로 얼굴도 보지 못한 채 지내다가,
야속한 코로나 때문도 아니고 갑작스런 이유로
할머니와의 이별을 하게 됐다.
마지막 가시는 날 즈음까지도 제대로 보지도
손도 잡지 못했던 게 여러모로 속상했는데
이렇게 떠나시고나니, 모두를 위한다는 이유로
요양원에 모셨던게 정말 좋은 마무리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유로이 면회가 가능했던 때에
그래도 아직은 우리들을 알아보고 기억하고
기다리던 할머니를 면회가서는 대화를 나눴었다.
외출하시고 싶냐고, 아직은 날이 추워서
조금 날이 풀리면 산책이라도 하자는 말에
할머니는 "여기 이렇게 있는게 좋은건지 나쁜건지도
모르겠다면서, 다들 이렇게 들어왔다가 죽어서야
겨우 나가는거지 뭐~" 하시는데
그 말이 그렇게 맺혔었다.
좋은 죽음, 좋은 끝이라는게 무얼까?
돌보는 사람도 당사자도 힘들지 않고 미안해하지 않으며
원하는대로 살다가는 그런 끝도 과연 가능할까?
할머니는 그 속에서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보내셨을까?
우리들을 원망했을까?
그래도 이해하셨을까? 하는
끝도없는 질문이 이어지고 또 이어졌다.
그러다가 이 책을 운명처럼 만났다.
정말 포장 마저도 선물같았던 책이다.
10~11번째 바뀌는 이웃들의 역사를 오롯이 바라보며
한 집에서 오래도록 살아온 85세의 할머니
"유도라 허니셋"
비록 지팡이를 짚고 걷고,
한번쯤 넘어져서 병원의 신세를 지기는 했지만
매일 꾸준히 수영을 하고, 고양이를 키우며
혼자서도 씩씩하게 살아가고 있다.
그런 그녀에게는 한가지 소망이 있으니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 죽음에 대해서는
본인이 선택하고 싶다는 것!
원치않는 연명치료들로 병원과 집을 오가며
모르는 사람들 사이에서 초라한 삶의 끝을
맞이하고 싶지 않고, 내가 원할 때 내가 정한 끝을
직접 결정해서 맞이하고 싶다는 그녀의 마음은
어쩌면 '죽음'이라는 것이라도 스스로 선택하고 싶다는
강한 의지로 느껴졌는데, 왜 그렇게 주변과 벽을 두고
혼자서 그렇게 외롭게만 지내려 할까?
라는 궁금증이 있었는데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펼쳐지는
유도라 허니셋의 인생은 정말 순탄치 않고
스스로를 포기하고 미루며 무엇하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 없었던 그녀에게 인생을 떠나는 '죽음'이라도
나의 의지대로 선택하고 싶다는 그 마음이 조금은
이해가 가기도 했다.
안락사를 위한 진행을 하면서
담당자와 박사 등과도 꾸준히 이야기를 나누는데
그들이 허니셋에게 부탁했던 것은
"마지막 선택을 하기까지 지금 살고 있는
인생에 최선을 다해서 살아달라는 것,
또한 본인이 결정에 대해서 계속 고민해 달라는 것"
허니셋은 자신만의 비밀스런 자유(?)를 준비하면서도
오랜시간 동안 외로움 속에서 혼자만의 성안에서
지냈다면, 조금씩 허물어지고 낮아지는 벽 넘어
만나게된 새로운 친구이자 끝이라고 생각했던
인생에서 구원자가 되어준 이들을 만나게 되는데,
바로 옆집에 이사온 10살 소녀 로즈와
언젠가 그녀가 길에서 넘어졌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알게된 스탠리 마첨이다.
그들과 함께 대화를 나누고, 모임에 참여하고,
저녁 안부전화를 하고, 쇼핑을 하고, 파티에 가고,
회전목마를 타고, 나들이를 가는 등
평범한 일상의 즐거움을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철저하게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었던 허니셋의
빗장같은 인생도 85세에 조금씩 허물어지는 것 같았다.
어떤 책 중에는 그런 제목도 있다.
"죽고 싶다는 말은 간절히 살고 싶다는 뜻이었다" 라고
어쩌면 인생에서 재미나 소중한 사람을 잊고 잃고
지내온 허니셋이었기에 자발적으로 선택한
죽음이라는 요소가 사실은 간절히 살고싶다는
선택이 아니었을까 하고 이 책을 읽으며 생각을 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스스로 선택을 할 수 없을만큼
스러져가는 이들도 있지만,
'삶'이라는 것이 애초에 원하고 선택해서
시작한 것이 아닌만큼 죽음 역시
나는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주어진 시간이 기쁘고 슬프고 힘들고 아쉽든
사는동안 만큼은 최선을 다해서 인생을 살아가는게
모두에게 주어진 한번뿐인 삶에 대한 의무가 아닐까?
"죽음에 대한 자발적인 선택"을 충분히 지지하지만,
그 선택에는 어떤 외로움이나 슬픔으로부터
피하고자 하는 도피처로서의 선택이 아닌
"더할나위가 없다"라는 마침표의 선택이길 바란다.
최근에 동생이 읽던 책에서의 구절을 소개하며
안락사를 허용하는 몇 안되는 나라들이 있는데,
그중에서 우리나라의 경우 소극적 안락사
(예를들면 연명치료 중단이라든가)의 허용으로
이제는 죽음을 정말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좋은 삶, 좋은 인생은 어떻게 판단할 수 있는지
그것 역시 그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인
'나'의 몫이겠지만
최근에 보낸 할머니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무언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이 왔었을 때
자식된 도리로써, 자식으로써의 마음도 좋지만
무엇보다 궁금했던건 "할머니의 마음"이었다.
좀더 멀쩡한 정신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었을 때
그런 얘기들을 나눴으면 좋았을걸,
분명 어떻게 하고 싶다, 나는 어떤 끝을 맞이하고 싶다
하는 그런 생각이 있으셨을텐데
'죽음', '끝'이라는 것을 어렵게만 생각하며
차마 입에 올리지 않고 넘겼던 것이 아쉽곤 했다.
지금은 이따금씩 책을 읽거나 기사 등을 보면서
또 커뮤니티 등에서 여러 사람들의 케이스를 보며
'죽음'이나 '삶의 끝' 이후의 처리에 대해서
엄마아빠와도 한번씩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물론 얘기를 나누면서 괜시리 울컥하기도 하지만,
연명치료를 희망하는지,
한다면 어느정도까지 시도하기를 원하는지,
장례방식이라든가 수의에 대한 부분까지도
자세하게 깊숙하게는 아니어도
인터뷰처럼 Q&A처럼 간단한 질문들로
엄마아빠와 우리들의 생각들을 가족인 서로에게
알려주는 시간이 필요하기도 하고,
오히려 그게 가장 당사자의 의견을 반영하여
가장 원하는 결론으로 갈 수 있다는걸 모두 알기에
그런 대화가 가능한 것 같다.
누구나 한 번은 태어났다가 떠난다.
정해진 끝을 알 수 없지만
누군가는 준비를 제대로 하고 후회없이 떠날 것이고,
누군가는 준비없이 갑작스런 마침표를 찍을 수도 있다.
허니셋의 소설같은 인생을 읽으며 다짐한다.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더라도,
주어진 하루하루가 마치 마지막인 것처럼
나의 감정,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
그리고 '지금'에 최선을 다해서 후회없이
오늘의 행복을 만끽하겠다고 말이다.
우리 할머니가 계시고 아직은 멀쩡 하셨을 때
이런 이야기를 읽을 수 있었다면 할머니의 마음을
헤아린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죽음'에 대해서 무겁지만은 않고 제대로 마주하며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었던 힐링타임 이었다.
"이 글은 한스미디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저의 솔직한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