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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와 결혼하는 법
소피 어윈 지음, 이미영 옮김 / 마시멜로 / 2026년 7월
평점 :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가정을 이루는 '결혼'
자연스럽게 짝을 이루는 여느 동물들과 달리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게 '결혼'이라는 것은
하나의 제도이자 약속이라는 의미로 다가온다.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은 이상이 반영된
하나의 환상 같은 모습으로 그려진다.
사랑의 결실이자, 평생을 함께 한다는 약속.
서로를 누구보다 아끼며 인생의 남은 시간을
함께하겠다는 다짐으로 그려지는 결혼을 생각한다.
어떤 '조건'을 '결혼' 앞에 붙인다는 것은
사랑에 대한 모독이라고 여기는 것처럼
'신성한 결혼'의 모습만을
참 결혼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수많은 사랑 이야기가 그래왔고,
많은 이들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만 시간을 돌려보면
아니, 시간을 돌리지 않고 지금을 생각하더라도
서로의 '조건'을 통해 결혼을 선택하는 이들도 있다.
우리의 부모님 세대들은 서로 얼굴도 모른 채
상대방의 조건에 맞춰서 결혼을 하기도 했고
자유연애시대라는 말이 우스워진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은 조건 때문에 사랑하지만 헤어지기도,
또 사랑하지 않지만 결혼을 하기도 한다.
조건이 결혼의 평가요소가 되는 게
시대 불문이라 한다면,
그런 조건을 따지는 것이
결코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리젠시 시대를 배경으로
결혼 앞에 가장 현실적인 선택을 한,
가난한 숙녀의 이야기를 담은
〈부자와 결혼하는 법〉은
'여성'과 '시대'라는 한정된 시선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결혼을 '선택할 권리'를 보여주는
주인공 키티의 이야기를 통해
대담하면서도 매력적인 여성을 그려낸다.
모든 것이 열려있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하나의 생존전략으로 '결혼'을 선택하는 그녀가
과연 속물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말이다.
문학을 좋아하는 이라면
혹은 여성문학을 이끄는 제인 오스틴을 아는 이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동경을 품고 있는
리젠시 시대를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뻔하지만 결코 뻔하지 않은,
발칙하면서도 대담한 매력을 가득히 품고 있다.
화려한 파티와 사교계로
시대적인 느낌은 물씬 풍기면서도
시대와 시선에 사로잡히지 않은 채
도도하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누구보다 씩씩하고 적극적인
여성상을 그려냄으로써,
가장 역사적이면서도 역사적이지 않은
포인트를 비틀어 담아낸 것이다.
1818년 영국의 시골마을 도싯셔.
장티푸스로 부모님을 모두 떠나보내고
주인공인 캐서린 탤벗에게 남겨진 것은
네 명의 여동생과 막대한 빚.
약혼자와의 결혼을 통해 집안의 빚을 청산하고
앞으로의 편안한 미래만을 꿈꾸고 있었는데,
더 부유한 여성에게 마음을 빼앗긴 약혼자는
그녀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결혼'을 파기하며
그녀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다.
빚쟁이들에게 돈을 갚아야 할 시간은
4달밖에 남지 않았고,
이대로 가다가는 집도 잃고
동생들과도 뿔뿔이 훑어지게 될 상황 앞에서
'더 부유한 남자와 결혼'을 하기 위해
오래전 연락이 끊겼던 엄마의 옛 친구가 있는
런던으로 향하게 된다.
사교계 진출을 통해 자신의 집과 인생을 구원해 줄
남편감을 찾고자 한 키티.
과연 그녀는 원하는 신랑감을 찾을 수 있을까?
그리고 자신의 생존을 위해 '결혼'을 감행하는
그녀의 모습이 가식적이고 나쁘다고만 할 수 있을까?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
야망을 드러내는 것은
당시의 여자들에게는 허용되지 않았다.
수동적으로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는 삶.
어쩌면 당시 여자들의 삶은 남자들을 위한 보조나
그를 꾸미는 장식품이나 인형 같은
느낌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소설 속의 키티는
주어진 삶에 순응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현실을 벗어나고
더 좋은 미래를 위해 스스로의 운명을
만들어가기로 한다.
그 방법으로 런던을 향하고,
그곳에서 사교계 진출을 통해
자신의 미래를 바꿔줄 남자를
스스로 '선택'하려는 것이다.
자신이 속한 계층과 한계를 넘어
드디어 결혼에 한 발자국
다가갈 수 있을까 싶었던 그때,
그녀의 발길을 가로막는 벽이 하나 생겼으니
바로 그녀의 계획과 속셈을 눈치채고
그녀를 동생에게서 떼어내고자 하는
제임스 드레이시 백작.
서로를 향한 거침없는 말과 행동,
서로 원하는 바를 이루기 위한 협조 아닌 협조를 하면서
점차 얽히고 마는 두 사람.
과연 키티는 꿈에 그리던 남자를 만나
위기에 빠진 집과 자신을 구할 수 있을까?
제임스 드레이시는 키티로부터 동생을 지킬 수 있을까?
화려한 드레스로 치장한 사교가 이루어지는 파티장,
춤을 추며 서로를 간파하고자 하는 남녀,
신분과 계급의 벽이 높은 리젠시 시대의 풍경을
그대로 담아낸 이 소설은
가장 현실적인 로맨스 소설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형적인 여주인공의 모습과는 다른
진취적인 여주인공이 그리는
리젠시 시대의 로맨스는 어떤 모습인지
마치 제인 오스틴이 현대에 소설을 쓴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한 작품이었다.
우리가 생각해 온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생각,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그려왔던
결혼 적령기 여성에 대한 편견을 지우고
새로운 모습의 여주인공을 통해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
결혼은 사랑의 마침표일까?
아니면 하나의 제도에 불과할까?
라는 질문을 던졌던
〈부자와 결혼하는 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