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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리어
한지수 지음 / &(앤드) / 2026년 6월
평점 :

"이 글은 넥서스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흔히들 인생을 여행에 빗대곤 한다.
새롭고 낯선, 때로는 익숙한 장소로 떠나
그곳에서 즐거움과 기쁨,
때로는 슬픔과 어려움도 함께하며
미처 몰랐던 나라는 사람에 대한 발견을 하면서 말이다.
인생을 여행이라 한다면,
캐리어는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
박완서 작가의 <다만 여행자가 될 수 있다면>에서는
캐리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옷가지를 비롯해 선물로 샀던 각종 기념품 등을 담았던
여행 가방을 잃어버린 후,
그것을 열어보게 될 타인에서의 시선과
부끄러운 민낯이 담긴 자신의 가방에 대한 감정이
솔직하게 담겨있었다.
그렇다. 캐리어는 그런 존재다.
완벽한 여행을 위해 조금은 헝클어지고 엉망이 되기도 한,
일단 넣고 잠그기만 하면 타인에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
나의 치부이자 가장 솔직한 나의 모습,
나라는 사람을 압축한 하나의 덩어리 말이다.
이런 인생의 블랙박스 같은 진실,
그것을 캐리어에 빗대어 여행을 통해
인생을 담아낸 소설이 여기 있다.
이상문학상, 이효석문학상을 비롯해
대한민국스토리공모대전 수상 작가인
한지수의 소설집 <캐리어>이다.
소설집에는 각기 다른 도시를 배경으로 한
7개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다섯 편에는 멀리 있는 도시를
두 편은 우리가 현재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을 만날 수 있다.
도시의 이야기는 제각각 다른 등장인물과
서로 다른 인생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이야기를 통해서 각자 자신의 '과거'로 연결된다.
서로 다른 거리는 왜곡되기도 하고,
오해와 때로는 감춰진 진실을 품고 있기도 한다.
사람들은 비로소 감춰졌던 진실을 마주하며
외면해왔던 자신의 상처 앞에 바로 설 수 있고
이를 계기로 나아갈 힘과 용기를 얻기도 한다.
오랫동안 단절되었던 관계와의 재회,
그리고 공감과 관계도 나누지 못한 채 마무리되고
마음에 남게 되는 상실이라는 감정을 그려낸
《발리, 그 섬에서》
젠더 정체성의 반전과 돌봄과 관계에 대한
윤리적 정체성까지 생각하게 했던
《야夜심한 연극반》
흔한 애도의 서사에서 벗어나
애도의 불가능성에 대해서 얘기하는
상실을 내면화하면서 방황을 지속하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상실한 대상을
끝내 떠나보내지 못하는 인물의 심리를 다룬
《그라나다 유기견》
여행지에서 만난 낯선 존재를 통해
자신의 상실과 상처를 비추어 볼 수 있었던
인물을 다룬 《그녀의 허니문 룸메이트》는
상처의 연대 가능성까지 엿볼 수 있다.
명확하게 판결이 이루어지지 않는
다양한 미투 사건을 다루며 가해와 피해의 도식에 대해
그리고 '중립을 지킨다는 명분' 아래 느꼈던
죄책감을 통해 누군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목소리들》
고문기술자의 생과 가족을 소재로 한
《코드 번호 1021》과
농촌마을의 개발 붐을 다룬 《비상대책위원회》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의 공기를 다루며
깊은 공감과 위로의 세계로 독자들을 이끈다.
인생이라는 여행에는 다양한 여행자들이 있다.
나는 이 여행을 어떻게 즐기고 있는지,
내가 바라는 여행의 모습과 실제 여행의 모습은
어떤 차이를 가져가고 있는지,
우리가 여행에서 마주한 다른 여행자들의 모습은
정말 내가 바라본 모습이 전부인지
풍경 속에 뭉뚱그려질 각 인생의 서사를
막연하게 생각해 본다.
미처 몰랐던 아니면 외면하고 있던 진실을 마주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인생이라는 여행이 그려내는 상처를
정면으로 응시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그리고 타인의 상처를 함께 안을 수 있는
공감과 마음의 여유까지도 가져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여행지에서의 풍경 속에 담긴 서사를
자신만의 문체로 담담하게 담아낸
작가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 자신이 마주해야 할
진실과 평화에 가닿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