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중고신입 차윤슬,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김지혜 지음 / 한끼 / 2026년 2월
평점 :

"이 글은 한끼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삶이라는 것은 한 편의 이야기 같다.
쌓이고 쌓인 사람들의 시간이
영화나 드라마로, 소설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며
'이야기'가 되는 모습을 우리는 익히 봐왔다.
그래서일까?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과정은
마치 삶을 살아가는 것처럼
지난하다고 느끼는 것 같다.
이렇게 치열한 일상을 담은,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내일이라는 시간을 선사하는 소설을 만났다.
읽으면서 이것이 소설일까?
아니면 글쓰기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하자는 회고일까?
라는 생각을 하게 했던
〈중고신입 차윤슬, 이야기를 시작합니다〉이다.
소설은 잡지사에서 에디터로 일하다가
잡지가 폐간되며 계열사인 운화백화점에서
중고신입으로 일을 하게 된
윤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했지만 글쓰기도 좋아하고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에는 힘이 있기에
세상을 배울 수 있겠다는 생각에
잡지사에서 일을 했었던 윤슬,
하지만 막상 백화점 자체를 브랜딩 하며
이야기의 힘을 발휘해야 하는 조직이라 생각했던
운화백화점에서의 일은 쉽지가 않았다.
좋은 평가를 위해 종종 거리며 준비를 해야 했고,
나의 의사와 관계없이 회사 내의 정치에 의해
팀이 와해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을 품고 있는 상태에서
신입사원들의 발표인 '슈퍼루키 발표회'에서
백화점 캐릭터 만들기라는 제안을 했다가
쏟아지는 질문에 대해서 답변조차 하지 못한 채
자신감만 잃고 정신없이 발표를 마무리하고 말이다.
하지만 망쳤다고 생각했던 윤슬의 제안이
백화점 40주년 행사의
새로운 브랜딩 전략으로 선정되고,
함께 진행하게 된 팀원들과 함께
'구름'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 만들기에 나선다.
도돌이표처럼 반복되는 회의,
완성되는 듯싶다가도 파기되는 아이디어,
오랜 고생 끝에 준비한 팝업 행사는
비 오는 날씨처럼 처참한 결과를 맞이하고
'나'라는 사람을, 내가 만든 '이야기'를
제대로 증명조차 하지 못한 채 실패를 하고 만다.
이대로 끝인가 싶었던 윤슬에게
기존의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크리스마스 프로젝트를 준비하라는 기회가 주어지고,
어쩌면 마지막 일 수도 있는 상황 앞에서
방향을 잡지 못하고 흔들리는 윤슬 앞에
40년 전에 옥상에 묻어두었던 타임캡슐이 등장한다.
그 속에서 등장한 편지는
프로젝트와 윤슬 모두에게
새로운 전환점으로 다가오는데,
과연 윤슬은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내내 글쓰기를 좋아하던 윤슬이 담고 싶었던
'마음'은 크리스마스 프로젝트에서도
잘 전달될 수 있을까?
회사는 회사니까,
좋아하고 원해서 시작한 일이라고 할지라도
시간이 지나다 보면 무뎌지고
먹고살기 위해 타성에 젖어 행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윤슬처럼 오늘의 우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야기는 마치 백화점을 바탕으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윤슬의 직장인으로서의
성장을 담은 것 같지만,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비로소 마주하게 된 내면의 자신
그리고 자신만의 문장으로 써 내려간
이야기가 전하는 '마음'이라는 소중함을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전작인 〈책들의 부엌〉을 통해서는
책 읽기로 얻었던 위로에 대한 이야기를 전했다면
이번 책에서는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작가 자신이 글쓰기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일 수도 있고
무언가 나만의 이야기를 꺼내고 싶었던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고민해 봤을 포인트들이
윤슬의 사연과 함께 겹쳐져 와닿았다.
글쓰기 교실의 수업을 들으며,
프로젝트에 대한 실마리를 찾았던 윤슬처럼
독자들은 이 소설을 통해서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고 그 속에서
온전히 살아낼 힘과 용기를 얻길 바라는 것이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책들의 문장들은
책 속의 책이지만 실제 존재하는 책들로
또 다른 이야기로 연결이 되며
세계관이 확장되는 것 같았다.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다 보면
정작 내가 품고자 했던 마음들이 흐려지기 마련인데,
마음을 담은 글쓰기를 통해서
이런 자신과 제대로 마주하며
내일을 바라보는 윤슬의 모습을 보니
'나만 그런 게 아니야, 괜찮아'라고
스스로에게도 위로와 응원을 더할 수 있다.
글을 쓰는 사람의 시간을 묵묵히 지켜보는 소설은
책을 읽는 독자들의 이야기를 기다리는
새로운 독자인 것 같았고,
치열한 직장인들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담아낸 묘사는
위트와 함께 공감까지 가져온다.
"끝까지 써보아야 알 수 있는 것이 있다"라는
윤슬의 말처럼 우리의 인생 역시
앞을 알 수 없지만 일단 글을 쓰듯이 살아가다 보면
그 어떤 방향성을 알 수 있는 게 아닐까?
평범한 직장인들의 일상이
책 속에서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살아 숨 쉰다.
멈추지 않으면, 끝까지 써보면 결국 다다르는
'내일'이라는 이야기를 담아낸
따뜻한 마음이 담긴 소설,
〈중고신입 차윤슬, 이야기를 시작합니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