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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위의 가마괴
강지영 지음 / 나무옆의자 / 2026년 1월
평점 :

"이 글은 나무옆의자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위험에 빠진 도시를 구하는 영웅.
영화나 드라마에서 등장하는 영웅들을 보면
'아! 우리가 사는 현실에도 이런 영웅들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한다.
하루에도 셀 수 없이 벌어지는 사건들 속에서
피해자로만 남게 되는 피해자들.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가해자들을 향해
서슬 퍼런 눈빛을 보내보지만 달라지는 건 없다.
그런 현실을 시원하게 비웃듯
시원한 복수를 해주는 이들이 있다.
우리 속에 있는 이웃의 모습을 한
평범한 영웅들의 조용한 구원담이 여기 있다.
〈기린 위의 가마괴〉이다.
고담시에 배트맨이 있다면,
도담시에는 까마귀가 있다!
망가진 세상의 안녕을 기원하는
자신만의 서스펜스를 담아낸
강지영 작가의 신작 소설이다.
〈기린 위의 가마괴〉는 특이한 제목으로 한 번,
그리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면
펼쳐지는 몰입감에 한 번 더 감탄하게 된다.
축씨와 완씨라는 서로 다른 성을 가진 남매
민기와 윤지가 사는 도담시에는
매일 밤 까마귀가 날아든다.
아이나 부인, 약자에게 향하는 폭력을 행하는 이들에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폭력을 끊어주는 윤지!
온통 까만색의 옷을 입고 키와 덩치가 큰,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여자'의 이미지와는 다른 그녀를
사람들은 당연히 남자라 생각을 했고,
'까마귀'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었다.
하루에 한두 번씩 혼선되어 112신고전화를
엿들을 수 있는 오래된 2G 핸드폰을 통해
도담시의 문제를 파악하고 밤마실을 나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까마귀 윤지는
마치 배트맨처럼 자신의 도시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윤지의 까마귀 활동도
사실은 엄마인 희연에게서 이어진 것이다.
14개월 전 어떤 사건 이후 사라진 엄마,
돌아가셨다 생각하고 엄마가 하던 '까마귀'일을
자신의 몫으로 이어받은 윤지.
입양 전 어렸을 때 겪었던 가정폭력과
지켜주지 못했던 어른들의 그늘을 똑같이 겪는
아이들에게 특히나 감정적으로 공감을 하고 있다.
그런 윤지와 피는 섞이지 않았지만
커다란 덩치에 묵묵히 자신의 일을 행하는
민기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도담시를 지킨다.
바로 아침마다 지하철에서 기린 모자를 쓰고
"기를 모아주세요. 서로 사랑해 주세요.
정의를 실천하세요. 그래야 평화의 시대가 열립니다."
라고 외치는 것이다.
때로는 놀림거리나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행동으로 보이는 민기의 모습은
다름 아닌 오래전 할아버지 대부터 이어진 것이다.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의 행동.
이로 인해 놀림받았던 순간들이 새겨져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부정했던 민기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부정했던 모자 대감의 업무에
공백이 생기자 기다렸다는 듯이 발생하는
도담시의 불운을 바라보며
'미안합니다. 제가 내일부턴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라며 그 역할을 자처하게 된다.
이런 남매의 분투를 가만히 지켜보며
비밀을 지켜주는 옆집과 마을의 노인들,
그리고 그들의 곁에서 지켜보고 이해해 주는 이웃.
도담시의 평화가 이렇게 이어지나 싶었던 찰나
근면한 9급 공무원 수겸에게 떨어진 민원으로 인해
민기는 기린 모자를 분실하게 되고,
그 사이 쏟아진 폭우로 도담시는 큰 위기에 빠진다.
과연 민기와 윤지 남매는 위기에 처한
도담시를 구할 수 있을까?
잃어버린 기린 모자에게는 어떤 비밀이 있는 걸까?
사회가 지켜주지 못한 이들을
까마귀 윤지는 끝까지 구할 수 있을까?
각자의 사연을 가진 인물들이
위기에 처한 도담시 앞에서 얽혀버렸다.
서로 관계없는 듯싶었던 인물들의 사연을 따라가다 보니
처음부터 떼려야 뗄 수 없었던 관계가 드러나고
사회나 가정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던 이들이
서로 연대하고 지켜주며
새로운 관계로 거듭나는 모습을 통해
'진정한 사회의 역할'을 다시금 생각하게 해준다.
제대로 처벌받지 않는 이들에 대한 분노를
시원하게 잠재울 수 있는
강지영 작가만의 문체가 돋보이는 서스펜스 소설!
뻔한 영웅담이 아닌, 일상 속에 숨어있는
평범한 이웃들의 모습을 통해
'사실 영웅이란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다'라는
얘기를 해주는 것만 같았다.
현실에 영웅은 없다고,
세상을 구원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편견을 가졌다면 〈기린 위의 가마괴〉를 읽으며
그동안 만나보지 못했던
새로운 영웅을 만나볼 수 있기를 바란다.
어두워진 밤거리를 달려 우리를 지켜주는
도담시의 까마귀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