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단후쿠
김숨 지음 / 민음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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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민음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전쟁 앞에서 무기력하게 관통당하고 마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마치 정해진 것처럼

시대와 장소를 넘어 반복된다.

고통스러운 시간에 대한 섣부른 애도나 공감은

그 피해를 고스란히 겪은 이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기에

항상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는

지극히 역사의 후손이자 관찰자로

어설프게 나의 생각을 담지 않으려 조심하게 된다.


일본이 저지른 전쟁범죄 중 하나이자

일본 제국 정부의 관여 및 묵인 아래 이루어진

전시 강간 등의 성범죄라 할 수 있는

일본인 위안부의 문제는 세상에 알려진지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는 1991년 8월 14일

고 김학순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통해

생존자 중 자신의 피해 사실을 최초로 공개 증언했고

이후 전국의 생존자들이 잇달아

피해 사실을 밝히며 일본인 위안부에 대한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피해자들의 용기 어린 목소리를 통해

국제사회에도 알려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나,

여전히 끝이라고 할 수 없는 그 고통의 시간들은

지울 수 없는 상처가 되어 우리에게 남아있다.


이번에 만나 본 소설은 만주 스즈랑에 붙들린

소녀 요코의 시선을 통해

전쟁에 참혹하게 관통당한 그들의 현실과

고통, 기억을 생생하게 독자들에게 전하고 있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만남을 갖고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로소 마침내 소설로 쓸 수 있었다는 작가는

온전한 이야기로 쓰고 또 쓰며

자신만의 애도를 전한다.


일본군 위안부의 목소리를 담은 소설을 쓴 작가

김숨의 〈간단 후쿠〉이다.


간단후쿠.

간단한 여름용 여자 양장이라는 말의 이 단어는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는 원피스로

일본군 위안소에서 위안부들이 입던

원피스식 옷을 가리킨다.

가족들을 위해 돈을 벌려고

실을 뽑는 공장으로, 총알을 만드는 공장으로,

바늘을 만드는 공장으로, 돈 많이 버는 공장으로,

간호사 양성소로 떠나온 소녀들이

짐짝처럼 트럭에 실려 도착한 곳은 바로 스즈랑.

열두 살부터 많게는 열아홉 살까지

어린 소녀들은 10개의 방으로 분리된 막사에서

군인들을 상대하게 된다.

얼마가 지났는지 언제나 돼야 이곳을 벗어날 수 있는지

'전쟁이 끝나면 끝나기야 끝나겠지'라고

희망과 체념이 섞인 그곳에서

소녀들은 매일 간단후쿠와 삿쿠를 빨래하며

고향을 그리워할 뿐이다.


사는 곳도 성격도 이름도 다른 그녀들은

스즈랑에 도착하며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는다.

이름의 뜻도 의미도 모른 채

그저 그 방을 썼던 이전의 소녀가 썼던 이름을

새롭게 부여받은 채 말이다.


일본군 위안부의 이야기는

여러 매체를 통해 들어왔었지만,

이 소설을 읽는 내내 사실 많이 힘들고 괴로웠다.

책을 한 장 한 장 펼치는 동안

스즈랑의 소녀가 되어 간단후쿠를 입고

그곳의 막사 안에 갇혀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전쟁이라는 이름 아래 수없이 유린당하고 희생당했을

이름 없는 수많은 소녀들의 눈망울이

나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들은 너무 아픈 상처나 복잡한 문제 앞에서

때로는 그 현실을 들여다보는 것이 어려워

외면해 버리는 순간이 많다.

마치 주사가 아파 주삿바늘도

바라보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보지도 듣지도 않은 채

'아무 일도 없었다'라며 고개를 돌려버리고 말이다.


일본군 위안부의 문제 역시 비슷한 느낌이었다.

채 100년도 지나지 않은

아직도 여전히 살아 기억하고 있는 피해자들이 있는데,

우리는 그 아픔을 지금의 관계와 견주어보며

너무 복잡하고 아프다는 이유로

덮어두려고만 하고 있는 게 아닌가 말이다.


작가는 10년간의 만남을 통해

할머니들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그 침묵의 행간을 문학적 언어로 생생하게 옮기며

자신만의 애도를 전하고 치유하려 한다.


상처 하나하나를 내보이듯

그분들의 이야기를 소설 속 요코와

아홉 소녀들에게 담아 독자들에게 보이는 것이다.

자신이 쓴 각별한 답장을 담아서 말이다.


'과거에 피해가 있었다'라는

사실만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들의 잃어버린 시간에 대한 존엄을 회복하고

또 숭고한 모습으로 돌아올 할머니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오늘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왜 지난한 이야기를 반복하는가?'가 아니라

그분들이 그토록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그분들이 그토록 듣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를 생각하면서 말이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중

이제 생존자는 6분 밖에 남지 않았다.

공식적인 사과 없이, 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 앞에서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할 그분들의 시간을 기억에 새긴다.


읽으면서 그분들의 시간에

감히 견줄 수 없는 고통만으로도

수시로 멈칫했던 나의 가벼운 애도가

잊지 않겠다는 나의 다짐이

그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치유로 다가갈 수 있고,

나아가 시간이 흘러 증언이 사라진다 해도

그분들의 고통을 공감할 수 있는 마음으로

남을 수 있기를 바란다.


시대와 전쟁이 만든 피해자,

마땅히 자신의 몫을 살았어야 하는

소녀들의 모든 것을 훔친

그들에게 전하는 하나의 기록.

끝내 부치지 못한 편지가 아닌

흐르는 물처럼 이어질 각별한 답장

〈간단후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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