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궁궐 일본 요괴
조영주 지음, 윤남윤 그림 / KONG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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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전에 만들어진 유적지나 유물을 바라보며

막연하게 그때의 어떤 이야기를 상상해 본 경험은

누구나 한 번쯤 있을 것이다.

박물관에 전시된 아주 먼 시간이 떨어진

누군가가 사용했던 물건들을 마주할 때면,

특히나 그 물건의 형태가 아주 잘 보관되어

마치 어제까지 사용했던 것 같을 때는

그 바라보는 시선을 통해서 과거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조선 궁궐 일본 요괴〉 역시 그런 하나의 실마리에서

상상의 씨앗이 자라나 펼쳐진 세상을 담고 있다.


경복궁 경회루 근처에 오이밭 터가 발견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거기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왜 궁궐에 다른 것도 아닌 오이밭이 있었을까?

하는 궁금증은 새로운 이야기 한편으로

그 인과관계를 설명하고, 그를 통해

막연한 상상 속에 있었던 인물들의 우정을

독자들에게 직접 느낄 수 있게 한다.


여러 차례 대규모 공사를 통해

복원되었던 경복궁 경회루,

그곳에서 2000년도 더 된

일본 양식의 작은 접시가 발견된다.

그곳에서 발견된 접시에 대하여

'왜'라는 궁금증은 끝내 해소되지 못한다.


이윽고 이어지는 소설의 시작,

임진왜란이 일어났던 때에

너무 오래 살아 심심함을 느낀 갓파가

조선으로 건너와 왕이 살던 궁에 숨어들었다가

경복궁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이곳에서 머물게 된다.

화재로 인하여 파괴된 경복궁의 경회루 수리를 위해

왕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데,

각기 다른 '소망'이 있는 선조와 갓파는

함께 서로의 '소망'을 위해 함께 어울리다

친구라 할 수 있는 존재가 된다.


나약하고 힘없는 왕의 모습으로 보였던

선조의 색다른 면이 소설 속에서는 보인다.

아끼고 걱정되는 친구 갓파를 위해

그를 위한 오이밭을 기꺼이 경회루 근처에 만들며

다른 이들 눈에는 보이지 않는 갓파와

이야기를 나누는 그 모습은

가장 평범한 한 명의 사람으로서

누리고 싶었던 우정을 왕이 됨으로써

포기하고 있던 선조가 누린 소소한

일상의 즐거움이자 변주 같기도 했다.

화려한 궁궐, 힘없는 왕의 모습 뒤에 숨겨진

서로에게만 내보일 수 있는 진실한 모습은

서로의 모습이나 위치를 떠나

존재 대 존재로서의 가치를 주고받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었다.


아름다운 궁궐의 모습과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하는 그림은

마치 어른을 위한 동화처럼

소설을 더욱 다채롭게 꾸며주고 있었다.

머리에 접시가 있고,

그 접시가 마르면 안 되는 일본의 요괴.

갓파에 대해서 알고 있었던 이들에게는

갓파와 왕의 우정이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고,

갓파에 대해서 모르던 이에게는

경회루와 더불어 일본의 갓파전설까지

찾아보게 되는 시야의 확장을 가져온다.


두 나라의 역사와 전설 캐릭터가 만나 펼쳐지는

마치 '드림팀'같은 느낌의 소설은

허무맹랑한 과장이 아니라

'어쩌면 혹시?' 하는 환상을 가질 수 있는

SF 픽션으로 다가온다.


여느 SF 픽션과 달리,

실제 사실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더욱 탄탄한 토대를 가지고 독자들을 몰입하게 만든다.


'왕'이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나약했던 왕으로, 가장 큰 시련의 시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비난을 받았던 왕인 선조에 대해서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실제로 선조에 대한 평가는 최근에 재조명되기도 해서,

그런 부분까지 포함해서 생각하며 이 소설을 읽는다면

또 하나의 색다른 재미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어른들을 위한 동화 같았던 소설,

'말도 안 돼'라고 하면서도 어딘가 믿고 싶어만 지는

그런 귀여운 역사소설

〈조선 궁궐 일본 요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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