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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슨하게 부지런한 행복 - 출근길의 아득함을 설렘으로 치환하는 힘
김지영 지음 / 포르체 / 2025년 9월
평점 :

"이 글은 포르체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한창 바쁘던 직장인 시절,
한 시간 반 남짓의 퇴근길을 거쳐 집에 돌아오면
아무리 빨라도 7시 반,
저녁을 먹고 나면 시계는 밤 9시를 향했다.
하루를 이대로 끝내기엔 너무 아쉽고
무언가를 하기에는 지쳐버려서
뭐라도 하겠다고 컴퓨터를 켜고 TV를 보다 보면
어느새 꾸벅꾸벅 졸고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바쁜 평일의 피로는 주말에 허리가 아플 때까지
몰아서 자는 취침으로 풀고자 했고,
덥고 추운 것을 느낄 수 없는 시간과 공간의 방 같은
사무실에서의 시간은 순식간에 한 해 두 해 지나갔다.
분명 퇴근하고 맞이한 자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퇴근길 창밖의 풍경을 바라보며
'내가 선택하고 돈을 벌고 있는 일인데
출퇴근하는 사이에서 뭐가 이렇게 아깝고 억울한지"
눈물이 절로 주르륵 흐르곤 했다.
네모난 건물의 네모난 책상에 앉아서
생기라고는 느껴지지 않는 것 같았던
회색 같았던 일상 속에서
다채로운 행복을 찾고 싶었던 마음과의 격차는
짙은 아쉬움으로 그렇게 눈물을 흐르게 했던 것 같다.
언젠가부터 '소확행'이라든가
'아보하'라는 말속에서 나와 맞는 결을 찾기 시작했다.
대단하진 않아도 나에게 잘 맞고 행복하며
나의 삶의 균형을 찾아주는 것 같은
작은 일상의 조각들은 오히려 대단한 것이 아니기에
쉽게 가지거나 행할 수 있었고,
이런 것들은 마음속의 자양분이 되어
나라는 사람을 '씩씩하게' 자라게 했다.
직장을 나와서야 비로소
그것을 발견했다는 것이 아이러니하긴 하지만,
그때의 내가 조금만 더 일찍 나를 아끼고 사랑하며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부지런히 나에게 선사했다면
조금은 덜 힘들고 즐거운 회사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13년 차 직장인이기도 한 작가는
동아일보에서 2030세상이라는 지면에
칼럼을 연재해오고 있다.
〈느슨하게 부지런한 행복〉은
이 지면에 연재해온 칼럼과
새로운 글들을 모아 엮은 책으로,
한 명의 직장인이자 여성으로 지내며
삶이 불안할 때 행해 온 자신의 이야기를
허심탄회하게 털어놓는다.
완벽함과는 거리가 먼 부지런함은
'시작해 봤다'라는 의미로
한껏 부지런함의 문턱을 낮춰준다.
지킬 수 없는 완벽한 루틴 대신에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리듬을 택해서,
마음을 다한 순간순간이 자신의 삶을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줄 거라고 믿는 작가는
지난한 사회생활에 마모된 자신을 위해
작은 행복 만들기 프로젝트를 실행하고
일상을 부지런히 그리고 느슨하게 느끼며
하루하루를 기대감으로 채우는 힘을 만들어 낸다.
그런 작가의 부지런한 움직임이 담긴 이 책은
독자들로 하여금 나의 리듬을 찾을 수 있게 하고,
일상 속에서 행할 수 있는 작은 움직임으로도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안내한다.
일터에서 찾을 수 있는 행복에서 시작해
무기력과 월급의 기쁨 사이를 오가는 밥벌이,
나를 지키는 생활 습관, 관계의 온도를 조율하는 법,
그리고 삶의 끝과 다시 시작을 담은 이별 프로젝트까지
생생한 경험담으로 채워진 각 장은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나이들 것인지'
더 나아가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는지' 묻는다.
그중에서도 3장인 '나를 지키는 일상 프로젝트'의
「혼자의 교실」 부분이 가장 와닿았는데,
매일 출근 전 2시간 일찍 카페에서
나름의 학기제를 운영하며 공부를 하며 느낀
황홀함에 대한 얘기는 '공부'라는 것 자체가
학생 때에만 해당하고 피곤하고 바쁘다는 이유로
자기 계발을 소홀히 할 수 있는 직장인에게
강렬한 자극제로 다가올 것 같다.
배우고 싶었던 것이나 공부하고 싶었던 것들을
적절한 보상을 배치해서 즐기는 그 마음,
누가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닌
기꺼이 나서서 하는 공부란 얼마나 즐거울지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느낄 수 없는 희소성으로
더욱 특별하게 다가왔다.
함께하는 가족, 친구에 대한 애정부터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까지
작가 스스로 말한 것처럼 평범한 이름의
평범한 사람이 쓰는 평범한 이야기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로 다가간다.
나만의 색을 찾아가고픈
무채색의 일상에 지친 직장인들에게
지루한 출근길을 기대감으로 채울 수 있는
힘에 대하여 말하는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