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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여신 ㅣ 네오픽션 ON시리즈 36
박에스더 지음 / 네오픽션 / 2025년 7월
평점 :

"이 글은 자음과모음으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
오래전 전설이나 신화 속에 묻어있는
판타지적인 요소를 보면 반사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이야기 속에
무언가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면? 하는 상상은
무엇보다 흥미진진하게 다가오곤 하는데
'알고 있어서 더 무서운 맛'인
여러 신화들을 떠올리게 하면서도
이를 현대의 이야기로 재창조한
완성한 K-오컬트 판타지를 만났다.
달에서 떨어진 달의 여신,
그리고 그녀의 곁을 지키는 산신을 잃은 산군,
어떤 인연으로 이들과 함께 하는 무당 인간까지!
하나의 가족으로 재탄생한 이들이
모두를 암흑으로 몰고 갈 어둠의 위기 앞에서
악귀 사냥을 시작했다!
박에스더 작가의 신작 〈불량 여신〉이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성공과 더불어
'한국적인 오컬트'의 매력에 전 세계가 열광했다.
이런 한국적인 오컬트에는 '恨'이라는
정서를 빼놓을 수 없는데,
한껏 원망스럽고 안타깝게 응어리진 마음은
어떤 응축된 사건을 바탕으로 시작하게 된다.
〈불량 여신〉 속에서 등장하는
보름과 산호에게도 이런 한의 정서가 있다.
사랑이라 믿었던 감정에 배신 당하고,
믿고 의지하던 신의 죽음을 목도하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지난날의 자신에 대한 후회와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는,
상황을 회복하겠다는 강한 의지까지 더해지고 말이다.
의도치 않게 오랜 시간을 잠들어 있다 깨어난
달의 신 보름과 그를 깨우게 한 산호는
인간 세상에서의 삶을 살아남기 위해
잡신을 떼어주는 활동을 한다.
'쓸모 없어진'에 마음을 쓰는 보름은
자신의 처지같이 쓸모를 찾고자 하는 이들에게
마음을 쉬이 떼지 못하고 품고 마는데,
우연한 기회에 만나게 된 연화 역시
그런 이유로 그들과 함께 머무르게 된다.
의심스러웠던 사건들을 파헤치던 중
이 모든 시작을 만든 그날의 '사건'에
모든 뿌리가 향하며 오랜 시간 묻혀있던
어두운 세력의 계획이 점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서로에 대한 마음을 모른 채
투닥거리기만 하던 보름과 산호는
위기의 순간, 서로를 향한 자신들의 진심을 깨닫고
이내 한마음이 되어 마지막 전쟁을 치른다.
영원히 잠식시킬, 어둠으로부터
보름과 산호는 모두를 구할 수 있을까?
글을 읽고 있으면서도 영상처럼
시원스럽게 배트를 휘두르는 보름과
마치 자연스럽게 한 몸처럼 박자를 맞추며
춤추듯 그를 보호하는 산호를 보는 것 같았다.
익숙한 신화 속 마고 할머니나 선문대할망의
등장은 더할 나위 없이 반가웠고,
악의 축이라기에는 애틋하고 비뚤어진 감정을 가진
영원히 죽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현의 모습은
여느 영화나 드라마에서 볼 법한
안타깝지만 너무 멋지고 그렇지만 나쁜
서브 주인공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오컬트 판타지물에서 벗어나
때로는 과거의 시간으로, 때로는 현재로
시공간을 오가는 작가의 이야기는
가장 '한국적'인 포인트로 익숙하면서도
새롭게 다가왔다.
인간과 사랑에 빠진 신,
그런 신을 사랑하게 된 산군까지!
이들의 오묘한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비현실을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몰입하며 바라보고 있었다.
영원한 어둠의 세계로 잠식당할 수 있는
위기의 상황에서
씩씩하게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주인공들의 전투는 그 무엇보다도 멋졌고,
만족할 만한 완벽한 결말까지
제대로 완성형이었던 K-오컬트 판타지였다.
미스터리한 오컬트라기보다는
'한국의 정서'를 바탕으로 한
가장 익숙하면서도 신선한 그런 작품이 아니었나 싶다.
새로운 K-판타지의 장르를 만나고 싶다면
기껏이 이 어둠을 쫓는 달에 함께 올라타기를,
그리고 그들의 악귀 사냥을 만끽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