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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낙천적인 아이 ㅣ 오늘의 젊은 작가 50
원소윤 지음 / 민음사 / 2025년 7월
평점 :


'건강한 웃음'을 선보인다는 코미디는
나이, 성별에 관계없이
온 가족을 하나로 모이게 하는 힘이 있다.
다양한 프로그램이 방송되는 채널 선택권이 있지만
유일하게 누구나 구분 없이 함께 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코미디 프로그램!
때로는 말로, 때로는 행동으로
때로는 보이는 모습만으로도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고
그렇게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코미디언들은
TV에 나오는 사람들 그 어떤 사람들보다도
가깝고 친숙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코미디를 보며
웃지 못하게 되었다.
"이러니까 개콘이 망하지"라는 자조 섞인 말처럼
웃픈 상황들은 우리들의 일상 속에 넘쳐났고,
그저 웃기기 위한, 웃음을 탈탈 쥐어짜는
탈수기 같았던 그것은 개그라는 이름으로
코미디와는 다른 장르로 다가왔다.
어떤 사람을 웃음의 소재로 삼았을 때,
그 당사자가 웃을 수 있어야
비로소 진정한 코미디라는 얘기가 있다.
순간 웃고 넘길 수 있는 정도의 선,
그리고 상대를 비하하거나 공격하는 것이 아닌
어떤 현상으로써 바라볼 수 있는 코미디가 사라져서인지
이제는 누군가를 비웃듯이 우스꽝스럽게 묘사하거나
불편한 얘기들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울림을 주지 못한다.
그런 점에서 오리지널 코미디라고 해야 할지,
오로지 마이크 하나만 가지고 자신의 입담으로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스탠드업 코미디는
이런 건강한 웃음의 명맥을 여전히 지키고 있다.
그런 스탠드업 코미디 세계 속에서
'서울대 출신'이라는 독특한 이력이 돋보이는 작가가
한편의 길고 긴 입담을 쏟아낸 듯한
자전적 소설을 냈는데,
분명 소설을 읽었는데 마치 한 회의 스탠드업 코미디를
본 것 같은 느낌이 들고 말았다.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의 근간인
〈꽤 낙천적인 아이〉이다.
픽션의 형태를 하고 있지만,
자신의 이름과 같은 주인공이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쉴 새 없는 유머로 담은 작가는
자전적 소설인 이 작품을 통해
'원소윤'이라는 사람을 하나의 소재로 삼았다.
자신의 뿌리가 된 가족들의 이야기,
그리고 친구와의 사연,
본격적으로 스탠드업 코미디언이 되기까지
그리 웃기만은 할 수 없는 사연 속에서도
웃음이라는 여운을 더하는 작가는
천상 코미디언의 모습을 보인다.
원소윤이라는 사람을 만든 시간을 담아낸 이 작품은
성장소설의 새로운 의미를 정의한다.
'대단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성공했습니다'의
해피엔딩적 결말에 다다르는 보편적인 진행이 아닌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자라나기까지의
웃음 속에 감춰진 슬픔, 상실, 어떤 고민 등을 담으며
비로소 이런 시간들을 바탕으로 이내 웃을 수밖에 없는,
그런 웃음을 다룰 수밖에 없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는 것이다.
그녀는 학교 다닐 때도 조용히 공부를 하는 모범생이자
노는 것에는 관심이 별로 없는 반장이었다.
그런 그녀가 코미디언이라니,
그것도 마이크 하나로 사람들을 웃기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한다니, 사람들은 의아할 것이다.
그런 자신만의 이야기를
그녀는 이야기의 시발점이자 셀링 포인트로 삼는다.
그리고 무한한 자신의 이야기를
재미의 요소로 승화시킨다.
자신의 아픔과 상실 속에서도
꽤나 낙천적인 아이로 자라 온 원소윤이라는 사람은
여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사람들을 웃긴다.
사람들은 소개 글 몇 줄로 묘사되는
이 스탠드업 코미디언의 이야기에 순식간에 몰입되며
웃고 또 때로는 울컥하기도 하지만
이내 그 슬픔을 잊고 다시 웃고 마는 것이다.
슬픔과 죽음이라는 어떤 원죄 앞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법 꽤 낙천적인
원소윤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이렇듯 건강한 웃음을 건넨다.
한 편의 스탠드업 코미디 공연을 본 듯
하지만 조금은 투머치토커의 이야기를 들어
그에 대한 많은 것을 알아버렸지만
그저 웃고 넘어갈 것 같은 그런 감정.
자신만의 색이 가득 담긴 소설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작가라는 이름으로
그녀는 독자들에게 자신을 소개한다.
그녀의 책을 읽으며 생각했다.
어렸을 때 봤었던 모두가 함께 즐길 수 있었던
건강한 웃음을 오랜만에 느낀 기분,
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이토록 흥미진진하게
순식간에 빠져들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고
책을 읽고 나니 마음은 이미
그녀의 공연장 앞으로 향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