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자 시호도 문구점
우에다 겐지 지음, 최주연 옮김 / 크래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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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 전하는 진심을 좋아한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고르고 고민하며 쓴 글이라면

그 자체로 무엇과 견줄 수 없는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편지는 특히나 그렇다.

편지에는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 둘만이 존재한다.

여러 사람을 대상으로 쓴 편지라 하더라도

읽는 순간만큼은 단 한 명의 읽는 사람이 존재하고,

쓰고 읽는 순간은 오로지 두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유일한 세계를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타인이 방해할 수 없는 둘만의 소통이 있고,

고르고 고른 말속에 담긴 진심은

무어라 형언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래서 손 편지를 좋아한다.

메일과 메신저 등이 발달했다 하더라도

진심을 담아 말을 고르고 골라

꾹꾹 눌러 담은 정성,

그 정성 때문에 여전히 쉽게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데도

편지지와 봉투를 고르고 손글씨로 편지를 쓴다.


이렇게 편지를 좋아하는 내가 혹하는 문구점이 있다.

용도와 받는 이, 사연을 고려해서

가장 잘 어울리는 문구를 추천해 주는 곳.

문구를 좋아하는 이라면 가슴이 웅장해지는

〈긴자 시호도 문구점〉이다.


1834년 문을 연 이래 쭉 자리를 지켜온 이곳.

고풍스러운 3층 건물은 1층은 다채로운 물건들이,

2층에는 워크숍이 이루어지는 장소로 활용되고

때로는 단골들의 휴식과 문서 작성을 위해 제공된다.

주인인 다카라다 겐의 집이자 가게인 이곳에는

오래된 활판 인쇄기까지 마련되어 있어

시간의 흐름까지 느낄 수 있는데,

문구 전문점인 이곳을 찾아온 손님들의 사연에 맞춰

그에 어울리는 물건들을 추천해 주는

섬세하고도 따스한 주인과의 대화 속에

사람들은 묻어둔 마음속 진심을 털어놓는다.

그리고 가장 전하고 싶었던 말들을 담아

정성스럽게 편지를 작성하게 되는데..


생활용품 제조업계에서 일하면서

사소한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창조하는 작가

우에다 겐지가 1년 이상의

회의를 거듭해 구상한 이 작품은

일본 내에서도 엄청난 사랑을 받으며

4권까지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생활용품을 다루는 일을 해서인지,

책 속에서 등장하는 문구류에 대한

설명도 굉장히 조예가 싶으면서도 능숙했는데,

누구나 한 번쯤 곁에 두었을,

혹은 로망을 가졌을 문구와 엮어

등장인물들의 사연이 다채롭게 펼쳐지면서

그 속에서 따스한 감동을 느낄 수 있어서

힐링 소설이었다.


한국에서 출간된 시호도 문구점의

첫 이야기를 만나보고는

'진심'을 담는 문구라는 점에서

더욱 마음이 동할 수밖에 없었는데,

장마다 각기 다른 등장인물과 이야기가 나올 때면

자칫 흐름이 끊긴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만년필, 시스템 다이어리, 캠퍼스 노트,

그림엽서, 메모 패드 등 익숙한 문구류에 얽

나이와 성별, 직업도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사연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각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었다.


엄마 같은 역할을 해주었던

유일한 가족인 할머니에게 전하는

입사 첫 월급 선물에 동봉할 그리움을 담은 편지,

닮고 싶고 여러 가지 부분에서 존경하는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상사에게

좋은 기회를 마주하고 전하는 퇴직원,

첫사랑의 상대에게 전하는 고백,

세상을 떠난 전 부인의 장례식장에서 읊게 될 인사,

아무것도 가진 것 없던 나에게 새로운 삶을

열게 해준 스승에게 전하는 초대장 등


전하고 싶은 마음은 크지만

어떻게 그 마음을 담아야 할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긴자 시호도 문구점의 주인 겐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어울리는 물건을 추천하며,

이들이 자신의 마음과 마주할 수 있는

여유 있는 장소와 시간까지 제공한다.


마음속에 부유하는 생각들을

보이는 형태로 '적는다'는 자체로도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 된다.

미처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들이

보이는 실체로 나올 수 있도록

그것을 끌어내주는 문구점 주인 겐의 역할은

단순히 문구를 판매하는 것을 넘어

마음을 어루만지는 상담자의 역할 같아서

'이런 곳이 있다면 나도 한번 꼭 가보고 싶네'

라는 생각을 하게 해줬다.


손글씨에 담긴 정성과 시간의 소중함을 아는 이라면,

또 그것을 가치있게 받아주는 사람이라면

이 긴자 시호도 문구점이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진심 역시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나라면, 어떤 상황에서 누구에게

무슨 내용의 편지를 쓰게 될까?

그리고 겐은 나에게 어떤 문구를 추천해 줄지

너무나 궁금해진다.


기록을 하는 사람들은 흘러가는 시간과 추억을

기억하고 남기고 싶어 하는 섬세한 사람들이다.

그런 섬세한 사람들에게 너무나 소중하게 다가온

긴자 시호도 문구점의 다음 이야기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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