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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시체가 보고 싶은 날에는
구보 미스미 지음, 이소담 옮김 / 시공사 / 2025년 4월
평점 :

삶의 무게는 사람들에게 각기 다르게 느껴진다.
버틸 수 없을 만큼 힘든 일이 주어지는 사람도 있고,
한없이 편하고 가볍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견딜 수 있을까? 싶을만한 어려움이나
문제를 가진 이들도 자신에게 주어진 무게를 짊어진 채
묵묵히 삶을 살아간다.
사람으로 쳐도 60년이라는 시간은
'노인'의 범주에 가까울 만큼 오랜 시간이다.
하물며 60년 된 아파트는 오죽할까?
몇 개 되지 않는 동을 가진 60년이 넘은
오래된 이 아파트는 자살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단지의 주민이 목숨을 버리기도 하고,
외부인이 들어와서 목숨을 버리기도 한다.
낡고 오래된 아파트의 모습만큼이나
이곳은 어둡고 '죽음'이라는 것에
이만큼 더 가까운 듯하다.
세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빠, 그리고 아직 보호가 필요한
초등학생 시절 중학생인 언니와 자신만을 남겨두고
집을 떠난 엄마를 뒤로하고 미카게는
오래된 이 단지에서 언니 나나미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타고난 천식으로 인해 활동도 쉽지 않고
따돌림으로 인해 일반 학교를
더 이상 나가기 힘들게 되자,
집에서 가까운 빵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야간 학교를 다니고 있는 것이다.
어린 동생을 보살피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일찌감치 사회에 뛰어든 언니는
동생인 미카게가 미루어 짐작만 할 수 있는
'밤일'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해 나간다.
오래된 단지, 그리고 규칙적으로 오가는 빵 공장,
야간학교에서 만나는 한정된 친구들 등
좁은 세상에서만 살고 있는 마카게에게는
하나의 꿈이 있었으니 바로
'언젠가 직접 두 눈으로 시체를 보는 것'
그만큼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할 만큼
죽음에 가까이 있기도 했고
제대로 된 보호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나오키상 수상을 한
전작 〈밤하늘에 별을 뿌리다〉를 통해서
상실을 겪고도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었던 구보 미스미는
이번 작품을 통해서 죽음에 가까웠던 어두운 삶
가운데 있던 미카게가 단지에서 마주한
젠지로 할아버지와 친구들로 인해
삶에 대한 희망과 인간과 인간 사이의
따스하고 다정한 관계를 맺는 것을 보여주면서
독자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있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별다른 꿈도
하고 싶은 것도 없이 지내던 미카게는
젠지로 할아버지와 함께 단지 경비원 일을 하면서
단지에 거주하는 타인들을 마주하고,
부족한 자신의 상황 속에서도 타인에게 나누는
기쁨을 느끼면서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한다.
늘 곁을 지켜주는 친구 무짱과 구라하시는
미카게가 변화와 꿈을 가지게 되는데
큰 영향을 주고 말이다.
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인물들에게는
모두 나름의 아픔과 빈틈이 있다.
그들은 서로에게 기꺼이 그 아픔을 내보이면서
서로를 탓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그 빈틈을 자신의 따스함으로 채워주며
그저 '같이' 살아주는 것이다.
귀찮고 왜 하는지 몰랐던 경비 일을 하면서
몸도 마음도 건강해진 미카게가
자신을 위해 희생하고 애쓰는 언니에 대한 고마움과
자신도 언니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겠다는 결심을 하고,
또 나아가 오래된 단지의 철거 소식 앞에서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나서는 모습은
굉장히 큰 반향을 나타내기도 했다.
호기심으로 '시체를 보고 싶다'는 막연함은
미카게의 변화를 유발하는 계기도 된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몰라서 가졌던 그 호기심은
소중한 사람이 생기고 그 마음이 커지며
후회와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데
소설의 끝부분에 마주한 젠지로 할아버지와의
마주함에서는 '죽음'이나 '시체'에 대해 가졌던
미카게의 달라진 성숙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사람과 사람의 온기로 채워진 따스함이
이 각박하고 메마른 오래된 단지에서의 삶을
그리고 한 아이의 삶을 어떻게 바꿀 수 있는지
작가는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말한다.
나 자신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끝나지 않은 임무로 자신의 몫을 다해나가고
새로운 꿈을 향해 나아가는 미카게를 통해
따스함이 주는 변화의 힘을 체감하고
나이를 초월한 그들의 아름다운 우정을
더욱 빛나게 묘사함으로써,
각박한 현대사회의 사람들에게
위로라는 따스한 불씨를 키우고 있었다.
이웃과의 인사나 어울림이 점점 줄어가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 사람이 주는 온기의
소중함을 일깨워 준 따뜻한 힐링 소설이었다.
그런 따스함을 받은 미카게의 내일이
너무나도 기대가 됐다.
"이 글은 시공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후기입니다."